병(病)
노쇠가 심하면 몸이 허약해지고 건강에 이상이 생깁니다.
건강이 정상적이면 몸이 건전하고 아무 이상이나 탈이 없는데 반해서 건강이 비정상적이면 몸이 불건전하고 이상과 탈이 발생합니다.
건강의 비정상적 이상 상태를 병이라고 합니다.
늙고 병들면 육체적으로 불편하며 정신적으로도 불안합니다.
언제 무슨 변을 당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막상 병이 들면 병원에 입원하게 됩니다.
사회와 가정과 격리되고 혼자가 되는 것입니다.
인생이 무상함을 처음으로 실감합니다.
친구와 가족의 그리움을 비로소 깨닫습니다.
인정과 우정이 얼마나 고마운가를 새삼 뉘우칩니다.
문병 차 찾아오는 손님이 그렇게 반갑고 기쁘며 고마울 수가 없습니다.
먹을 것을 가지고 오면 더더욱 즐겁습니다.
환자가 되면 다정하고 다감하며 감상적입니다.
유아독존이고 안하무인이며 기고만장하던 기개가 눈 녹듯 사라지고 어린이처럼 순하고 착하며 다정하고 의지하려 합니다.
음식을 먹어도 같이 먹고 여행을 해도 같이 하려 합니다.
환자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고독입니다.
혼자서 병실에 누워있고 방치되는 것이 가장 불안하고 고통스럽습니다.
고독을 면하려면 누군가가 있어야 합니다.
더불어 이야기를 하고 기쁨과 즐거움을 나누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고 행복합니다.
사람을 보면 그렇게 반갑고 고마울 수가 없습니다.
늙고 병들면 문병 오는 사람이 최고인 것입니다.
사람이 병들면 걱정이 많습니다.
집안일 세상일이 궁금하고 불안합니다.
장사는 잘되는지 아이들은 잘 노는지 이래 걱정 저래 걱정입니다.
그것은 환자의 노파심입니다.
음악을 즐기지만 감상적입니다.
슬프고 조용해야 합니다.
시끄럽고 떠들썩한 것은 질색입니다.
하찮은 일에도 신경을 곤두세우고 화를 내는가 하면 서러워하고 신경질적입니다.
일지나 월지에 병이 있는 사람은 병과 인연이 있는가 하면 다정다감하고 고독을 싫어합니다.
회식과 동반 여행을 즐기고 사람과 어울리는 것을 즐깁니다.
병과 인연이 많은 직업인은 의사와 간호원입니다.
일반적으로 의사와 간호원 중에는 병의 운성을 타고난 사람이 많습니다.
병의 운성을 가진 의사나 간호원은 선천적으로 다정다감하며 환자에 대한 인정과 애정이 많습니다.
천부적인 천직입니다.
그러한 의사나 간호원을 만난 환자는 운이 좋고 다행한 것입니다.
병의 십이운성은 어딘가 병적인 면이 많습니다.
문병을 좋아하고 모임을 즐기며 남을 위해서 도와주고 인정을 베푸는 것을 아끼지 않습니다.
신경이 세밀하고 걱정과 불안이 많으며 지나치게 감상적인 동시에 건강 때문에 직업상 문제가 발생하기 쉽습니다.
의료계통에 진출하면 천직인 동시에 건강도 잘 관리함으로써 일석이조입니다.
병의 운성을 타고난 사람은 어려서부터 감상적이고 다정다감합니다.
혼자 있는 고독을 제일 싫어합니다.
입원했을 때 병의 운성을 가진 간호원을 만나면 아주 다정다감하게 돌봐주므로 호강합니다.
만일 간호원이 관대의 운성을 가지고 있으면 환자를 대하는 것이 사납고 불친절합니다.
주사를 놔도 살살 조심스럽게 놓는 것이 아니고 쿡 찔러버립니다.
이러니 십이운성이 얼마나 재미있습니까!
사(死)
병이 만성화되고 육신이 지나치게 노화(老化)되면 육체적인 활동이 어려워집니다.
정신은 형체가 없는 氣로서 늙고 병드는 것이 없으니 몸은 불건전해도 정신만은 건전합니다.
육신대신 정신으로 생명을 유지하고 생활하는 과정을 死라 합니다.
죽은 것이 아니고 죽음에 임박한 상태를 말합니다.
늙어서 할 수 있는 생산수단은 지식과 예능과 기술입니다.
학술을 비롯하여 예술과 의술과 점술 등은 늙어서도 한 몫을 할 수 있습니다.
고희가 되면 죽음이 가까워짐을 점차 느낄 수 있습니다.
철이 든다고 할까?
인생관이 달라집니다.
사후의 세계를 생각해서 종교와 철학에 관심을 갖는가 하면 그동안 즐겼던 일들을 한번 더 되풀이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합니다.
등산을 하고 싶고 낚시를 가고 싶고 야구를 비롯한 여러 가지 운동을 구경하는가 하면 요산요수(樂山樂水)하고 세상을 두루 여행하기를 원합니다.
부귀영화를 즐기기보다는 인생을 즐기고 싶은 마음이 간절한 것입니다.
부러운 것은 부귀가 아니고 젊음입니다.
다시 한번 젊어질 수 있다면 얼마나 다행일까?
하지만 그것은 불가능하고 부질없는 생각이요 꿈이니 어찌 하겠는가?
죽음은 인간의 마음을 비우게 합니다.
젊어서 욕망과 야망으로 가득 차 있던 마음을 비운다는 것은 새빨간 거짓말입니다.
비울 내야 비울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늙어지고 죽음에 임박하면 저절로 비워집니다.
욕망이나 야망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마음을 비우면 아무런 욕망과 야망이 없으니 마음이 편하고 안정되며 인생과 세상을 비로소 올바로 발견하고 뉘우치며 깨닫게 됩니다.
사(死)는 무엇이 진리고 도(道)며 인생인지를 가르치고 깨닫게 하는 스승이요 부처님이며 하느님이기도 합니다.
일지나 월지에 死가 있으면 어려서부터 생각이 깊고 침착하며 정신적인 꿈이 많습니다.
학술, 의술, 예술, 점술 등에 소질이 있고 탁월합니다.
독창적인 창작은 어려우나 전통적인 지식을 연구하고 답습하는 데는 능합니다.
종교와 철학에도 적성이 맞으며 천성이 담백하고 사색적입니다.
적극성과 진취성이 부족한 반면에 연구성과 탐구력은 대단합니다.
학자를 비롯해서 예술과 의술과 점술과 종교인 내지 철학 등에 관심이 많고 인연이 깊습니다.
돈을 벌고 치부하며 벼슬하고 출세하기에 앞을 다투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관대와는 지극히 대조적입니다.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와 같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死의 운성을 타고난 인생이 표본적입니다.
욕심과 야망을 성취하기 위해서 머리를 짜고 생각하는 게 아니고 인생 자신을 알고 발견하기 위해서 생각하고 탐구하는 것입니다.
死를 타고난 사람은 철학분야에 관심이 크고 종교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으므로 이런 분야로 진출하면 크게 성공하고 빛을 볼 수 있습니다.
아무나 종교가가 되고 철학자가 되는 것이 아니고 타고나야 합니다.
사의 운성을 타고난 사람이 야심과 욕심이 있는 장사를 하고 정치를 하면 안됩니다.
내 아들이나 딸이 일지나 월지에 사를 타고났다면 어려서부터 미술, 예술, 음악분야에 타고난 소질이 있으므로 그런 분야로 인도하면 빛을 보게 됩니다.
아무나 미술하고 예술하고 의술하면 되는 것이 아니니 선천적으로 타고나야 합니다.
그 대신 육체적인 방면이나 물질적인 방면에는 어렵고 독창적인 창작은 무리입니다.
학문하는 사람은 욕심이 없고 야심이 없어야 합니다.
死의 운성을 타고난 사람이 학자가 되고 철학자, 종교가, 예술가가 된다면 천부적인 적성을 만난 것입니다.
출처 : 음양오행(陰陽五行) - blog.naver.com/zingongs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