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기(節氣)
1.입춘(立春)
정월(寅)의 절기를 입춘이라 합니다.
입춘은 봄의 기운인 木기가 발생하고 정월절기가 시작되는 기점이며 시점입니다.
木氣는 따스한 생기입니다.
입춘이면 지구상에 당장에 봄이 오는 것이 아닙니다.
봄기운이 나타나기 시작할 따름입니다.
봄이 오려면 겨울의 한기가 물러가야 합니다.
입동에서 3개월 동안 설치고 판을 친 동장군은 천하장사인데 비해서 이제 막 태어난 봄의 木氣는 여리디여려서 무르익은 겨울水氣와는 감히 맞설 수가 없습니다.
그렇지만 천지 운기의 법칙은 절대적입니다.
일단 입춘이 되면 동장군인 水氣는 철수를 시작해야 하고 봄의 木氣는 전진을 시작해야 합니다.
겨울의 水氣가 한걸음 후퇴하면 봄의 木氣가 한걸음 입성하듯이 봄이 한발짝 들어서면 겨울은 한발짝 물러나야 합니다.
한치의 오차도 없이 동시에 평화적으로 신진대사를 합니다.
겨울이 완전히 철수하는 데는 한 달이 걸리듯이 봄이 완전히 입성하는 데는 또한 한 달이 소요됩니다.
입춘 후 15일 전에는 水가 우세하지만 15일 이후에는 木이 우세합니다.
15일째는 水와 木이 평등하고 막상막하입니다.
입춘은 겨울이 가고 봄이 옴과 동시에 임금인 세군(歲君)이 바뀌는 거구영신의 절기입니다.
달만이 바뀌는 것이 아니고 해도 바뀝니다.
하나는 전진하고 하나는 후퇴하는 일진일퇴를 거듭하면서 겨울은 미련없이 물러가고 봄은 지체 없이 천하를 챙깁니다.
2.경칩(驚蟄)
2월(卯)의 절기를 경칩이라 합니다.
2월부터 봄의 운기는 무르익습니다.
봄의 운기는 木이고 木은 생기(生氣)입니다.
경칩이 되면서 천지간에는 생기가 가득 차고 왕성합니다.
땅 속에서 잠을 자던 온갖 생물이 생기를 얻으면 눈이 떠지고 정신을 차립니다.
이미 겨울이 가고 봄이 온 것을 알게 되면 생물은 저마다 기지개를 펴고 활동을 시작합니다.
겨우내 지하에서 동면하던 개구리 등이 봄의 생기에 깜짝 놀라서 지상으로 뛰쳐나오는 모습을 상징한 것을 경칩이라 합니다.
모든 벌레들이 앞을 다투어서 지상으로 기어 나오는 경칩은 지상에서 봄소식을 완연하게 알리는 현상이요 물상(物象)이라 하겠습니다.
완전무결하고 순수한 봄의 운기는 경칩부터 시작해서 두 달 동안 계속됩니다.
3.청명(淸明)
3월(辰)의 절기를 청명이라 합니다.
입춘에서 발생하기 시작한 봄의 운기는 경칩에서 무르익고 왕성합니다.
얼어붙은 땅덩이에 생기를 불어넣어서 잠자던 중생을 깜짝 놀라게 하고 저마다 봄맞이를 서둘게 합니다.
지상에 생기가 가득 차고 넘치면 파란 새싹이 트고 잎이 피어서 봄의 훈기가 충천합니다.
땅덩이를 생기로 가득 차게 한 봄의 木氣는 마침내 하늘로 치솟아서 음산하던 하늘의 기상을 맑고 밝게 바꾸어 놓습니다.
이를 청명이라 합니다.
경칩은 봄이 무르익는 땅의 모습이요 현상이듯이 청명은 봄이 활짝 열리는 하늘의 모습이요 기상입니다.
4.입하(立夏)
4월(巳)의 절기를 입하라 합니다.
여름이 성큼 들어서는 것이 아니고 이제부터 여름의 운기가 서서히 피어오르는 것입니다.
절기는 천지의 정기(正氣)요 정기는 천지간에 군림하고 삼라만상을 다스리는 군왕입니다.
여름의 군왕이 군림하려면 봄의 군왕이 물러가야 합니다.
나라의 군왕은 하루 동안에 능히 거구영신할 수 있지만 운기의 군왕은 거구영신하는 데 꼭 한 달 걸립니다.
봄기운은 하루에 30분지 1씩 물러가듯이 여름기운은 하루에 30분지 1씩 전진합니다.
매우 평화적이면서 율법이 엄격합니다.
입하가 시작 된지 15일이면 봄기운은 반은 후퇴하고 여름기운은 반을 전진함으로써 봄과 여름이 반반이며 한 달이 되는 날에 비로소 봄은 완전히 철수하고 여름기운이 완전히 입성합니다.
봄은 발생하는 기운인데 반해서, 여름은 성장하고 발전하는 기운입니다.
봄의 木氣는 따스한데 반해서, 여름의 火氣는 뜨겁습니다.
따스한 생기는 삼라만상을 발생시키는 어머니의 품안인데 반해서, 뜨거운 열기는 발생한 만물을 힘차게 기르고 무성하게 번창시킵니다.
5.망종(芒種)
5월(午)의 절기를 망종이라 합니다.
망종이란 익어 가는 보리이삭의 꺼끌꺼끌한 꺼끄러기(꺼럭)를 일컫습니다.
절기의 양상은 먼저 땅(음)에서 나타난 다음에 하늘(양)에서 나타나듯이, 여름의 절기 현상 또한 먼저 땅에서 피어오르고 다음에 하늘로 가득히 충만합니다.
여름을 알리는 땅의 모습은 천이요 만이지만 가장 대표적인 상징은 무르익어가는 보리이삭입니다.
보리가 누렇게 익어가고 꺼끌꺼끌한 이삭이 영그는 5월이면 여름의 운기를 물씬 느낄 수 있습니다.
이제부터 완연한 여름철인 것입니다.
여름은 뜨겁고 무더운 더위가 극성입니다.
더위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기화(氣化)작용을 왕성하게 촉진함으로써 만물의 성장과 발전(변화)을 극대화합니다.
나뭇잎이 만발하고 숲을 이루며 만물이 힘차게 확산하고 번창하며 무성합니다.
6.소서(小暑)
6월(未)의 절기를 소서라 합니다.
땅에 가득 찬 여름의 기운이 하늘로 치솟아서 온천지가 여름의 장관을 이루고 있는 것입니다.
여름의 기상은 뜨겁고 무더운 불덩이 같은 열기입니다.
더위는 대서(大暑)와 소서(小暑)의 두 가지로 나눕니다.
글자대로 풀이하면 대서가 크고 소서가 작은 더위입니다.
그렇지만 더위는 소서에서 극성을 부리고 절정을 이룹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모든 에너지는 운동에서 발생합니다.
운동이 없으면 에너지가 발생하지 않음으로써 변화가 없습니다.
지상의 기온은 원자의 소립자(素粒子) 운동에서 발생합니다.
운동이 빠르면 온도가 오르고 느리면 온도가 내립니다.
소립자의 운동이 빠르면 운동반경이 짧고 작으나 운동이 느리면 운동반경이 길어지고 커집니다.
소서는 입자의 운동이 극대화한 반면에 입자의 운동반경이 극소한 상태로서 열기와 무더위가 가장 극심한 상태를 의미합니다.
7.입추(立秋)
7월(申)의 절기를 입추라 합니다.
여름이 물러가고 가을이 접어드는 거구영신의 환절기입니다.
극성스러운 여름의 무더위는 입추가 되면서부터 한 발짝씩 철수하는 반면에, 신선한 가을기운이 하늘과 땅 사이에서 차분하게 입성합니다.
불덩이 같은 열기는 하루가 다르게 식어가고 시원한 가을바람이 더위에 지친 나뭇잎들을 싱싱하게 흔들어 줍니다.
기진맥진해서 축 늘어진 중생들은 저마다 가을을 반기면서 알찬 성숙을 서둡니다.
가을은 거두는 계절입니다.
저녁은 무르익은 하루의 해를 거두듯이 가을은 성숙한 오곡백과를 비롯해서 무덥고 뜨거운 태양의 열기를 거두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오는 환절의 행진은 꼭 한 달 동안 계속됩니다.
8.백로(白露)
8월(酉)의 절기를 백로라 합니다.
오행은 저마다 색깔을 가지고 있습니다.
봄의 木은 푸른 청색이고, 여름의 火는 붉은 적색이며, 흙의 土는 누런 황색이고, 가을의 金은 하얀 백색이며, 겨울의 水는 검은 흑색입니다.
백로는 가을의 빛과 색깔이 나타나는 것을 상징합니다.
가을이 되면 여러 가지 변화가 꼬리를 물지만 대표적인 것은 하얀 서리 입니다.
서리는 엽록소를 통한 광합성을 차단하기 위해서 내립니다.
생기를 죽이는 살기가 아닙니다.
열매를 거두기 위해서 성숙을 촉진하는 숙기(熟氣)입니다.
서리가 내리면 고추 잎이 시들면서 고추가 빨갛게 무르익습니다.
그것은 하얀 서리와 더불어 가을을 가장 실감나게 상징합니다.
지상에 서리가 내리면서 만물은 성숙과 거둠의 가을의 기색이 완연해지는 것입니다.
9.한로(寒露)
9월(戌)의 절기를 한로라 합니다.
백로 한 달 동안 지상을 가득히 물들인 가을의 기운은 한로가 되면서 하늘로 치솟습니다.
선선했던 가을의 기상이 아침저녁으로 차가운 한기로 변하기 시작합니다.
가을이 무르익어가는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습니다.
서리가 내리고 쌀쌀한 한기가 하늘과 땅 사이에 가득하면 만물은 생기를 잃고 시들어 갑니다.
낙엽이 하나둘 떨어지고 황혼을 붉게 장식하는 단풍이 바람과 함께 사라집니다.
스산한 가을바람이 나뭇가지에 매달린 채 흐느껴 우는 나뭇잎들을 사정없이 내리치고 말끔히 거두어들입니다.
알차게 무르익은 오곡백과 또한 서둘러서 거두어들입니다.
남는 것은 앙상한 가지뿐입니다.
화려했던 옷가지들을 가을이 몽땅 거두어 드림으로써 벌거숭이 알몸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10.입동(立冬)
10월(亥)의 절기를 입동이라 합니다.
가을이 가고 겨울이 오기 시작하는 입동은 한 달에 걸쳐서 거구영신을 이룩합니다.
차디찬 한기로 바뀌는 입동은 조석으로 겨울의 입김이 거칠어 갑니다.
그렇지만 아직은 겨울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가을도 아닙니다.
가을 같기도 하고 겨울 같기도 하면서 가을도 아니고 겨울도 아닌 것이 입동입니다.
가을이 가면 겨울이 오고 겨울이 오면 가을이 가는 환절의 행진은 소리 없이 진행되지만 보름이 지나면 겨울기색이 피부에 완연합니다.
평화적이면서 순리적인 신진대사가 이뤄지는 것입니다.
한치의 과속이 있을 수 없듯이 한치의 지각도 있을 수 없습니다.
천지의 운기는 엄숙하고 준엄한 것입니다.
11.대설(大雪)
11월(子)의 절기를 대설이라 합니다.
이제부터 겨울의 운기가 왕성한 것입니다.
겨울을 알리고 상징하는 것은 눈(雪)입니다.
큰 눈이 펑펑 쏟아지면 겨울의 풍경이 지상에 가득 찹니다.
눈은 알몸이 된 삼라만상을 하얀 옷으로 갈아 입히고 포근하게 감싸줍니다.
모든 것은 눈덩이 속에 갈무리되고 죽은 듯이 동면을 시작합니다.
삭풍에 휘날리는 눈보라는 얼음덩어리와 더불어 온 세상을 불모의 동토로 꽁꽁 얼려버립니다.
생기가 없는 겨울 땅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땅속 깊이 갈무리되어야 합니다.
땅은 눈 속에 갈무리되고 중생은 땅속에 갈무리됨으로써 기나긴 겨울잠에 들게 되는 것이 대설의 지상광경입니다.
12.소한(小寒)
12월(丑)의 절기를 소한이라 합니다.
땅에 가득 찬 겨울의 운기가 하늘까지 충만해서 겨울의 기상이 천지간에 극성을 부리는 계절이 바로 소한입니다.
여름의 소서는 매서운 무더위이듯이 겨울의 소한은 매서운 추위를 상징합니다.
땅덩어리는 꽁꽁 얼어붙어서 생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혹한의 계절이 소한입니다.
무엇이든지 지상으로 나타나기만 하면 사정없이 내려치고 얼려버리는 소한의 추위는 살기가 등등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