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렌 버핏 사주풀이
워렌 버핏은 비즈니스와 숫자에는 탁월한 재능을 갖고 있었지만 나머지 부분에서는 평균에서 한참 떨어지는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그는 일상생활에서는 다른 사람의 도움이 없이는 지내기 어려운 인물이다. 이는 천재에게서 흔히 나타나는 특징이다. 그는 지금도 집안의 조명 스위치를 켜는 데도 서투르고, 잔디깎이도 사용할 줄 모르고, 팩스기 사용도 서툴러 상대에게 팩스를 보내는 데 애를 먹고 있다.
"아버지는 잔디 깎는 기계조차 다룰 줄 모른다. 나는 아버지가 풀을 깎거나 울타리를 손질하고 세차하는 것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어릴 때는 아버지의 그런 점에 짜증이 나곤 했다. 나이가 들고 시간의 가치를 이해하고 나서야 나는 아버지가 왜 그랬는지 깨닫게 됐다. 아버지의 시간은 가치가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워렌 버핏의 장남 하워드 버핏)
이런 남자에게는 이해와 배려심이 깊은 배우자가 필요하다.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그런 여성을 만났다. 바로 첫 번째 부인 수잔 버핏(Susan Buffet: 결혼 전 이름 Susan Thompson, 1932~2004)이었다. 워렌 버핏은 "수잔이 없었다면 나는 성공할 수 없었을 것이다"라고 고백한 적이 있다. 워렌 버핏과 부인 수잔 버핏과의 관계를 보면 이 말이 과장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수잔 버핏은 워렌 버핏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 주기에 딱 맞는 정신적 소양과 감성을 가졌다. 수잔은 문화적 감성이 풍부한,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여성이었다. 1952년 4월 19일 워렌 버핏은 고향 오마하의 던디 장로교회에서 수잔 톰슨과 결혼식을 올렸다. 수잔은 20세로 워렌 버핏보다 두 살 아래였다.
당시 워렌 버핏은 오마하에서 아버지의 사업을 돕고 있었다. 결혼 1년 전인 1951년 컬럼비아대를 졸업하고 그레이엄에게 입사 제의를 했다가 거절당하자 오마하로 귀향한 터였다. 수잔은 워렌 버핏의 동생인 베티(로버타 버핏 비아렉의 애칭)의 대학 기숙사 룸메이트였다.
1950년 베티는 노스웨스턴대 기숙사 룸메이트로 알고 지내던 수잔을 워렌 버핏에게 소개했다.
아담한 체구에 갈색 머리를 가진 이 여대생에게 버핏은 첫눈에 마음이 끌렸다. 그가 보기에 수잔은 '주식에 대해 전혀 모른다는 점을 빼놓고는 아무런 단점을 찾을 수 없는' 아가씨였다. 그러나 수잔은 워렌 버핏에게 아무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남자답지 않게 수줍음을 많이 타는 데다, 입만 열면 주식 이야기만 하고, 특히 여자 앞에서는 허둥대고 불안한 모습을 보이는 사내에게 이 매력적인 여대생이 호감을 가질 이유가 없었다.
당시 워렌 버핏은 심각할 정도로 사교성이 부족했다. 그도 자신의 단점을 잘 알고 있었고 이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카네기재단이 운영하는 스피치 학원에도 다녔다. 이 학원의 수강료는 워렌 버핏의 입장에서는 거액인 수백 달러에 달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워렌 버핏은 돈을 아끼는 일에 관한 한 양보하는 법이 없었다. 그럼에도 그가 이런 '거액'을 털어 넣은 것을 보면 얼마나 이 문제로 고민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수잔의 무관심을 확인하고도 버핏은 물러서지 않았다. 그는 전략을 바꾸었다. 수잔에게 직접 다가서는 대신에 윌리엄 톰슨 오마하대학(현 네브래스카대학) 심리학 교수에게 접근했다. 수잔의 아버지였다. 톰슨 교수는 딸 수잔이 유대계 러시아인 2세인 밀튼 브라운이라는 사내와 교제하고 있는 것이 영 못마땅했다. 밀튼 브라운은 수잔과 마찬가지로 시카고 노스웨스턴대에 다니고 있었는데, 집안 형편이 좋지 않아 학비 조달에 애를 먹고 있었다.
톰슨 교수는 열렬한 공화당원이었다. 당시 공화당원이라는 것은 소수인종이나 유색인종에 대해 배타적이고 백인 우월의식을 갖고 있다는 말과 동의어였다. 오마하는 유색인종에 대한 차별이 강한 곳이다. 톰슨 교수의 눈에는 밀튼 브라운은 러시아 소수인종 출신의 가난한 집안 청년이었다. 톰슨 교수는 워렌 버핏이 마음에 들었다. 그가 순수 백인인데다 명문대학을 나왔다는 사실에 호감을 가졌던 것이다. 그에게 워렌 버핏의 성격적인 단점은 오히려 순수함으로 비쳤다. 게다가 워렌 버핏의 아버지 하워드 버핏은 연방 하원의원이자 골수 공화당원이었다. 하워드 버핏은 공화당 내에서도 극우보수 세력을 대변하는 단체로 알려진 존 버치 협회의 회원이었다.
톰슨 교수는 딸의 미래를 밝게 해 줘야 한다는 책임 의식을 느꼈다. 때마침 수잔과 사귀던 남자 친구 브라운이 노스웨스턴대의 비싼 등록금을 감당하지 못하고 아이오와대학으로 학교를 옮겼다. 톰슨 교수는 워렌 버핏을 초대해 딸 수잔과 자연스럽게 같이 자리를 하도록 배려했다. 그렇지만 둘의 관계가 바로 결실을 맺지는 않았다. 워렌 버핏은 1951년 추수감사절 휴가에 수잔, 그리고 수잔의 부모와 함께 풋볼 경기를 관람하고 식사를 같이 했다. 그러나 식사가 끝나기도 전에 수잔은 선약이 있다며 서둘러 자리를 떴다.
워렌 버핏도 사귀던 여자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워렌 버핏은 미스 네브래스카 출신의 바니타 브라운과 교제하고 있었다. 바니타는 볼륨감 넘치는 몸매에 이웃집 소녀의 얼굴을 가진 매력적인 여성이었지만 문제는 바니타가 정서적인 기복이 심하다는 것이었다. 유년 시절에 어머니의 정서 불안으로 여성에 대한 공포를 갖고 있던 워렌 버핏은 바니타에게 더 가깝게 다가설 수 없었다(버핏은 자서전 『스노볼: 워렌 버핏과 인생 경영』에서 어머니와의 관계가 좋지 않았다고 고백하고 있다).
한편 수잔은 워렌 버핏과 자주 얼굴을 마주치면서 이 남자를 다시 보기 시작했다. 수잔은 워렌 버핏이 자신만만한 특권층의 아들이 아니라 소심하고 불안한 내면을 가졌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숫자와 비즈니스가 화제로 나오면 완벽한 몰입 증상을 보이지만 나머지 일상생활에서는 부적응 상태를 보이는 그에게서 모성애와 보호본능을 느꼈던 것이다. 마침내 두 사람은 1952년 4월 19일 결혼식을 올렸다. 워렌 버핏은 수잔에게 의지하고 싶어 했고, 수잔은 그런 그를 감싸 안았다. 훗날 수잔은 워렌 버핏을 가리켜 자신의 '첫 번째 심리 상담 환자'라고 표현했다. 워렌 버핏은은 신혼여행 기간에도 벤저민 그레이엄의 『현명한 투자자』를 읽고 또 읽었다. 수잔은 그런 남편을 너그럽게 이해하고 북돋아 주었다.
버핏 부부는 신접살림을 오마하의 허름한 임대 아파트에서 시작했다. 돈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당시 워렌 버핏은 아파트를 사기에 충분한 금액인 1만 달러가량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투자의 원리를 완벽하게 깨우치고 있었던 그는 그 돈을 아파트 구입에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수잔에게 "이 돈은 목수의 연장과도 같다. 목숨과도 같은 연장을 팔아 치우는 목수는 없을 것이다"라고 설득했다.
이리하여 허름한 임대 아파트에서 신접살림을 시작했고, 종잣돈 1만 달러를 주식 투자에 사용할 수 있었다(워렌 버핏은 이 돈으로 가이코 주식을 매입했다. 정확히 말하면 가이코 주식 1만 282달러어치를 매입했고 1년 뒤 1만 5,259달러에 팔았다). 다음은 1952년 워렌 버핏이 가이코 주식을 팔기 직전의 투자 포트폴리오이다. 가이코의 평가액은 매각 가격 1만 5,259달러보다 약간 낮게 책정돼 있다.
워렌 버핏의 1952년 투자 포트폴리오.
워렌 버핏의 1952년 투자 포트폴리오.앤드류 킬패트릭, 안진환·김기준 옮김, 『워렌 버핏 평전 1·2』, 윌북, 2008.
주식 수 |
종목명 |
업종 |
평가액(달러) |
포트폴리오 비율(퍼센트) |
350 |
가이코 |
자동차 보험 |
13,125 |
67 |
200 |
타임리 의류 |
남성 정장 |
2,600 |
13 |
100 |
볼드윈 |
악기 |
2,200 |
11 |
200 |
그레이프 브라더즈 |
선적용 컨테이너 |
3,650 |
19 |
2,000 |
디모인 철도 |
철도 |
330 |
2 |
200 |
소어코프 |
휴대용 전동공구 |
2,550 |
13 |
|
합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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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7 |
|
*은행융자 5,000달러 포함.
버핏 부부가 자신들의 집을 마련한 것은 결혼한 지 6년이 지난 1958년의 일이었다. 네덜란드풍으로 지어진 이 집을 3만 1,500달러에 매입해 지금까지 거주하고 있다. 워렌 버핏은 이 집으로 투자자를 초청해 투자 설명회를 가졌고, 투자 사무실로도 사용했다. 워렌 버핏이 자택의 거실에서 손님들에게 투자의 원리를 설명하면, 부인 수잔은 조용히 주방을 오가며 이들에게 손수 만든 커피를 대접했다.
워렌 버핏은 하루 종일 서재에 틀어박혀 투자에만 몰두했다. 그는 책 한 권과 책을 읽을 수 있는 전구만 있으면 행복해 하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러나 남편으로서, 가장으로서의 역할은 뒷전이었다. 그런 남편을 수잔은 인내하고 북돋아 주었다. 워렌 버핏이 투자자를 모집하고 성공적인 투자 인생을 열어가는 데는 이처럼 수잔의 내조와 희생이 있었다. 1966년 워렌 버핏은 36세의 나이에 약 800만 달러의 재산을 가진 부자가 돼 있었다. 투자조합이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두었기 때문이다.
수잔은 오래전부터 워렌 버핏에게 800만 달러를 벌면 가정에 충실하라고 요구했었다. 그러나 그에게 주식은 운명이었다. 워렌 버핏에게 주식 없는 인생은 상상할 수 없었다. 결혼 25주년이던 1977년, 결국 두 사람은 각자의 삶을 찾아 서로 떨어져 살기로 합의했다. 수잔은 가수의 꿈을 이루기 위해 샌프란시스코로 거주지를 옮겼다. 수잔은 심리학, 문학, 음악에 대한 감수성이 풍부한 여성이었다.
수잔은 이때 자신이 곁에 있지 않더라도 남편 워렌 버핏이 충분히 투자가로서의 삶을 성공적으로 열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던 것으로 보인다. 세 자녀는 이미 성장했고, 무엇보다도 워렌 버핏은 꿈에도 그리던 부자가 돼 있던 시기였다. 수잔은 2004년 7월 29일 와이오밍 주 코디에서 향년 72세로 세상을 떠났다. 그녀는 구강암 진단을 받고 수술과 투병생활을 했다. 시신은 화장됐다.
워렌 버핏은 현재 17세 연하인 두 번째 부인 애스트리드 맹크스와 살고 있다. 맹크스를 워렌 버핏에게 소개한 사람은 바로 수잔이었다. 맹크스는 1946년 독일에서 라트비아인 부모에게서 태어나 6세에 오마하로 이주했으며, 1976년 수잔이 공연했던 오마하의 한 카페에서 요리사 겸 소믈리에로 일한 적이 있다. 소믈리에란 포도주, 와인 등에 대해 전문 지식을 갖고 고객에게 추천하거나 서비스하는 사람을 말한다.
수잔은 1977년 샌프란시스코로 떠날 무렵 맹크스에게 "워렌 버핏을 돌보아 달라"고 부탁했다. 워렌 버핏이 여성의 보살핌 없이는 정상적으로 생활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언뜻 차가워 보이는 외모와 달리 동정심이 많았던 맹크스가 수잔의 부탁을 받고 워렌 버핏의 자택을 방문했을 때 그는 폐인이나 다름없었다. 그는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수잔에게 전화해 "돌아와 달라"며 울먹였다. 수잔에 대해 자책감을 느꼈던 듯하다. 워렌 버핏은 "수잔을 샌프란시스코로 떠나게 한 것은 내 평생 가장 큰 실수"라고 회고한 적이 있다. 수잔이 샌프란시스코로 떠난 1년 후인 1978년부터 맹크스는 워렌 버핏과 함께 지냈고 결혼식은 2006년에 조촐하게 치렀다.
행복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정의할수있다.
내가 바로 그 표본이기때문이다.
나는 일년 내내 좋아하는 일만 한다.
좋아하는 일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할뿐 내속을 뒤집어 놓는 사람들과는 관계할 필요조차없다.
일을 하면서 유일하게 싫은것이 있다면 3,4년에 한번씩 누군가를 해고해야 한다는것이다.
그것만 빼면 문제될게없다.
나는 탭댄스를 추듯이 일터에 나가 열심히 일하다가 가끔씩 의자에 등을 기댄채
천장을 바라보며 그림을 그리곤 한다.
이것이 내가 행복을 느끼는 방식이다.
워렌버핏
투자의 살아있는 전설, 2008년 세계부자 1위,
신문배달등으로 번돈으로 열한살때부터 주식투자를 시작해 이미청소년시절에
스스로 번돈에 대해 납세신고서를 작성했으며
큰부에도 불구하고 소박한 집에서 수십년을 여전히 살고있고
가진 재산의 대부분을(한화로 43조정도) 기부 그것도 투명하게 하기위해서
빌게이츠의 재단에 기부함.
워렌버핏에 대해서 별로 아는것이 없는 상태로 사주를 찾아봤을때
조금 의외였다.
申월 壬일간의 편인격에 편인이 지지에 줄줄이 깔리고 년간으로 투간까지해서
편인이 굉장히 강한 사주인데,
이런 사주는 성격이나 심리가 그렇게 사회적이고 활발하고 그런 사람이 아닐텐데싶어서
워렌버핏에 대해 찾아 읽어보니 역시 사주가 맞다.
년지 정재가 지나친 편인의 세력을 제도해주고있고
식신이 월간으로 투간까지 해서 편인투식 구조로 편인격중에선
가장 성공할수있는 공식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해도 이정도로 강한 편인은 쉽게 말해서 절대 평범한 사람이라고 말할수가 없다.
평범하지않다는것은 성격이 사회성이 심하게 결여되어서
보통사람들처럼 평범하게 살수없는 성격이라는 말이다.
위에 복사해 붙인 워렌버핏에 관한 얘기를 읽어보면 지금의 이런저런 위대한 인물이라는 수식어 다 떼고보면
'주식과 비즈니스에만 관심많고 천재적이며 그밖의 일상은 스스로 할수있는것이 거의 없는 사람'이라고 나와있는데
바로 그런 의미이다.
집안에 불켜는 스위치도 잘 못찾고 잔디깎기 기계도 다룰줄모르고
(마당있는 집에 사는 미국인 가장이 잔디깎끼 기계 다루는건 한국으로치면 진공청소기돌리는 정도수준)
팩스보내는것도 잘 못하는 사람,
결혼생활도 내내 집안에 서재에만 틀어박혀 투자에만 몰두하고 남편으로서 아버지로서의
역할은 전혀 하지못했고 결국 이혼할때도 오죽하면 부인이 직접 다른 여성에게
버핏을 돌봐주라고 누군가의 도움이 아니면 살수없는 사람이라고 했을정도였을까.
부인이 떠나면서 버핏을 돌봐주라고 부탁한 여성이 버핏을 찾아갔을때 그는 폐인처럼 살고있었다고한다.
그리고 바로 그 여성과 재혼을 한것도 우연은 아닐것이다.
편인이 지나치게 강한 사주가 문제가 되는것이 '식신'이다.
편인은 그 역할자체가 식신을 극하기때문에 편인이 과도하게 발달한 사주는
식신에 해당하는 성향과 능력이 남보다 많이 떨어질수밖에없다.
식신이라는것은 자신의 생각 느낌을 바깥으로 표출하는것이고
사람들과 어울리게하는 활동성이고
타인에게 서비스하는 마인드이며 눈치이기도하고
특히 남자에게 있어서는 여성을 끌어당기는 매력이나 능력이라고도 할수있다.
그래서 식상(식신상관)이 없거나 심하게 극당하는 사주는
가장 드러나는 특징이 사교성 활동성이 떨어진다는점이다.
자신의 마음을 잘 표현할줄도 모른다.
눈치도 떨어진다.
여성을 꼬실 능력도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버핏도 첫부인과 결혼하게된것도 윗글에 나와있지만 본인능력으로 하지못하고
장인의 눈에 들어 어른들이 밀어주어 결혼하게 된경우고
두번째 부인도 첫부인이 보내줘서 만나게된 여성이다.
여성을 꼬시지 못하는 이유는 쉽게 말해 말빨이 떨어지기때문이다.
여자는 웃겨주는 남자를 좋아하고 남자는 웃어주는 여자를 좋아한다는 말이 있는데
이말이 사주명리하고도 정확하게 맞아떨어진다.
남자에게 여자는 재성이고 재성을 생하는것은 식상이다.
그러니 식상이 없는 남자는 재성 즉 여자를 잘 만들지못한다.
그때 말하는 식상이라는것이 여자를 웃게해줄 능력이라는것이다.
여자를 웃게해준다는것은 눈치가 빨라서 여자의 마음을 헤아리고
말을 잘하고 재미있다는것인데 이런 것들이 모두 식상의 영역이다.
여성의 사주에서 남자는 관성이고 관성을 생하는 것은 재성이다.
여기서 재성이란 잘 웃어주는 능력을 말한다.
재성이 발달된 여성은 굳이 대단히 꼬리를 치고싶어서 그런것은 아니지만
남자들과 대화를 할때 상대에게 굉장히 잘 웃어주고
상대가 별같잖은 말한마디해도 크게 호응해주고 웃어준다.
얼마전 남자가 고백못하는 이유 라는 글이 화제가 된적이 있었는데
1. 거절당할까봐
2. 거절당할까봐
3. 거절당할까봐
가 그 이유라고 한다.
남자들도 사실 거절당할까봐 많이 두려워한다.
남자라고 누구 맘이 가는 여자가 있다고 누구나 돈키호테처럼 달려들어 고백하는것은 아니다.
그런데 재성발달 여자는 남자가 살짝 조금만 말해줘도 웃어주고 호응해주니
남자가 용기백배해서 다음단계로 더 나갈 확률이 높고
그러다보니 재성발달 여자는 연애성공률이 높아지는것이다.
암튼 워렌버핏은 편인이 지나칠정도로 발달한 사주라 식상은 영 꽝인 사주라고할수있다.
서비스정신도 많이 떨어진다.
사업을 하기에 부적절한 성향이다.
사업이란것은 일단 상대방이 뭘 원하는지 눈치가 빠삭해서 원하는걸 해줘야 돈이 댓가로
들어오는법인데 식상이 꽝이면 본인이 아무리 노력해도 상대가 뭔 생각을 하는지
뭔 마음을 먹고있는지 도무지 알 재간이 없을뿐더러
싹싹하게 남에게 서비스할 마인드 자체가 없는사람이다.
상대를 위하는 마음이 없는것은 아니다.
그러나 상대를 위해서 사소하게 이것저것 챙겨주고 하는것은 못한다.
아무리 남자는 능력이라고하지만
현실에선 능력도 없고 외모도 별볼일 없는 남자가 미인과 결혼하고
자신보다 훨씬 스펙좋은 여자와 잘도 결혼하는데
그런 사람들은 보면 백퍼 식상발달 사주들이다.
데이트할때 같이 식사를 한끼해도 상대가 음식을 씹으면서 맛이있다고 생각하는지
없다고 생각하는지 표정만 보고도 알아서
물어보고 챙겨주고 오만것을 다 챙겨주니 그런 남자를 만나고있는 여자는
자신이 완전히 VIP가 된듯한 공주가 된듯한 느낌을 받는다.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말로 표현하는것도 너무나 좋아라 하는 식상인지라
무식상 남자가 상대를 사랑하면 속으로만 사랑하지만
식상발달 남자가 상대를 사랑하면 입으로도 사랑을한다.
하늘만큼 사랑해 보고싶어 죽겠어
길라임씨는 몇살부터 이렇게 이뻤나등등
각종 드라마에서 일반 남성들 손발 오그라들게하는 모든 멘트를
자발적으로 쉬지않고 날려주는 사람이다.
식상이 굉장히 발달한 남자와 연애를 하다가 깨진 여자는
헤어지고 폐인이되는경우가 흔하다.
아무리 다른사람을 만나봐도 그렇게까지 자신에게 관심가져주고 챙겨주고
사랑을 늘 표현해주는 남자는 찾기어렵기때문이다.
암튼 워렌버핏은 이쪽과는 정반대의 저쪽에 있는 남성이다.
편인발달 남성은 그래서 연애재주가 별로없다.
결혼생활도 해로하기가 쉽지않은것이 결혼을 하고나서도
부인에게도 자녀들에게도 자상한 모습이라고는 거의 없는 사람이라 그렇기도하다.
편인이 강할수록 그리고 제하는 재성이나 식상이 없을수록 이런 성향은 더욱 심한데
제화도 받지못하고 편인성만 극도로 강한 사주는 아예 평범하고 정상적인 사회생활자체가 어려울정도이고
흔히 말하는 머리깎고 산으로 들어갈까 하는 식의 은둔자 도피자같은 모습도된다.
편인은 직업도 뭔가 '생산적인'일이나 육체노동이 들어가는 일은 하지않는다.
머리만 쓰는일이나 말만 하는 일을 하거나,
워렌 버핏처럼 기업을 경영하진않고 가만앉아서 기업에 투자하는 일만한다.
직장 안가지고 집에서 늘 주식투자만 하는 사람들의 사주도 이런식으로 편인이 강한경우가 많다.
그런데 머리쓰거나 말만하거나 투자만 해서 먹고살수있는 사람이란 어떤 사람일까?
신은 공평하신건지 팔자가 공평한건지 원래 모든것은 다 일장일단이 있는법이다.
사회성 활동성은 떨어지는 대신 신은 편인에게 천재적인 두뇌를 옵션으로 주셨다.
편인강한 사주를 가진 사람들은 보통 사람들보다 머리가 매우 좋은 극소수에 속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제화를 받지못하고 운도 따라주지못하는 편인은
좋은 머리로 세상에서 내 자리를 얻지못하고 홀로 집안에 틀어박혀 혼자 생각만하고 공부만하는 타입이고
재나 식상을 보아야 일단 세상에서 써먹을수있다는것이고
운도 돕는 운으로 흘러야 성공이란것도 가능한것이다.
워렌버핏에 관한 글들 찾아읽다보니까
그는 천재가 아니고 노력파였다고 하던데,
사주로 볼땐 그는 천재가 맞다.
뛰어난 머리도 그에따른 노력도 어느정도 팔자에 있어야 하는것이다.
머리를 타고나지 못한사람이 주식투자비법 책 쌓아놓고 열심히 읽어서
버핏만큼 될수는 없다.
아예 공부안한것보다야 낫겠지만..
편인의 뛰어난 두뇌라는것은 남들이 아무도 시작해보지않은것에 대해
원리를 꿰어 이해하는 능력이 뛰어나다는것이다.
또한 그 두뇌회전 속도가 아주 빨라서 번득이는 재치가 말로할수없고
특히 기회포착을 굉장히 잘한다.
주식투자에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는 능력이라고 할수밖에.
버핏이 가진 재산의 거의 대부분을 빌게이츠의 재단에 기부한것은
편인 강한 사주가 원래 물욕이 적기때문이기도하다.
뭔가 이룬다는것 좋아하는 분야의 공부 좋아하는 일 자체에 빠져서 그냥 하는 사람이지
그거하면 연봉이 얼마가 되고 얼마짜리 집을 살수있고
무슨 차를 끌수있고 그런거에 관심이 있어서 하는 사람이 아니다.
세계1위부자가 미국 평범한 중산층이 사는 주택에서 이사한번 하지않고
몇십년을 내내 산다는것은
아예 새집 새차 좋은 물건 이런것에대한 욕망자체가 거의 없다는 말이다.
그런 물욕은 재성인데 편인과 재성은 극과극의 성향이고
년지에 정재한글자 있긴하지만 너무 약한정도로
물욕자체가 원래 없는 사람이다.
물욕이 많은 사람 즉 재성이 발달된 사람은 옷장에 옷이 가득해도
철바뀔때마다 계속 새옷을 더 가지고싶고
뭐살때 한꺼번에 두가지이상씩 사며 하다못해 식사를한끼해도
탐욕스럽게(?) 맛있는것들을 좀 늘어놓고 즐기면서 먹는다.
수행 도닦는거 이런면에 죽을때까지 안될사람이 재다사주들이다.
듣고싶은 노래도 많아 먹고싶은것도 많아 갖고싶은것도 많아
하고싶은 사랑도 많아 만나고싶은 이성도 많아 이게 재성발달이고,
버핏처럼 편인발달에 재가 약한 사주는
옷 안떨어졌으면 입으면 되지 왜 자꾸사나
신발 아직 있는데 지금 살고있는 집도 좋은데 도대에 왜 자꾸 사는거야 라고 생각한다.
내아들은 재성이 약하고 나는 재성이 발달한 사주인데
나는 늘 안입고 안쓰는것 버리고 철철이 새로사는 성격이고
내가 뭔가 버릴때마다 아들은 투덜거리면서 버린 물건 도로 들여온다.
엄마 에코노미제해야지.(절약하라고)
하도 입어서 무릎이 뻥 뚫어져나간 잠옷도 버리려고하면
꿰매달라고 입겠다고 ㅋㅋ
버핏처럼 재성이 약하고 편인이 강하면 생각 개념의 수준이
저기 먼 달나라를 보고있는 사람과같다.
허공에 발을 딛고 서있는 사람과같다.
물욕도 없고 이상을 추구한다.
첫번째 부인은 예술을 좋아하는 사람이었으며 내조잘했다는걸로보아
보나마나 재성발달 사주일텐데 이런 분과 살기가 얼마나 힘들었을지
충분히 공감하는 1인으로 심심한 위로를 ㅠㅠ
세계1위 부자남편을 두고 황혼이혼을 할정도면 더말할 필요도 없는거겠지.
편인격에 식신을 천간에 띄운 편인투식사주는 편인격으로서 어떻게보면
세상에 가장 잘 풀릴수있는 구조라고할수있다.
오히려 편재를본경우보다 더..
편인이 강한 사주는 어릴때 양육환경이 불우한경우가 대부분이다.
실제로 일찍 부모와 이별을 하든가 그렇지않으면 함께살면서 정서적으로
충분한 보살핌을 받지못하거나이다.
식신을 극하기때문에 그런데 식신이 바로 어릴때의 충분한 보살핌을
뜻하기도하기때문이다.
집안은 아버지가 의원이었을정도로 상류층 집안이었지만
어머니가 정서불안정으로 심리적인 문제가 있어서
그로인해 어린시절을 몹시 불안하게 지냈다고한다.
대운이 이십대부터 삼십년을 비겁대운을 지나왔고
이후로는 식상대운으로 흘렀다.
편인강한 사주는 비겁대운에 강한 편인을 설기를 시켜주어서
그때 상당히 발전이 크다.
식상운은 용신운이니 말할것도 없고..
단지 운에서 시실 편인격에 식신있는경우는 건강의 문제가있다.
내가생각할때 아직까지 중병안걸리고
84세인데도 장수하는것은
워낙 기부를많이했기때문이 아닐까싶다.
기부를 하고 남을 돕고 착한일을 하는것은 운명을 바꾸어주는 힘이 있다.
요범사훈이라는 책을 읽어보면
3000개정도의 좋은일을하면 죽고사는 문제까지도 바뀔수가 있다고하는데
평생 그렇게번돈을 좋은일에 엄청나게 기부했으니
그 복이 어떻게 적을수가 있겠나.
내가 생각하는 좋은 팔자 좋은 인생이란것은
뭐든 한가지만 잘하는것 있고 그 잘하는것을 직업삼아 살수있는 인생이 아닐까한다.
지난해 여름에 이사온 우리집 마당에 별의 별 다양한 나무 관목들이 있는데
한해를 이렇게 지나보니까 그냥 밋밋하게 생긴 잎만있는 나무인줄만 알았던것들도
한가지도 빠짐없이 때가되니까 다들 향기 기가막힌 꽃들을 피워내더라는..
그런거보면서 든 생각이 사람도 누구라도 뭐한가지 재주나 장점없는 사람은 없다는것이다.
단지 잘하는 그거 하나를 찾아서 활용해서 직업까지 삼아 사는 사람이
더구나 한국에는 요즘에 매우 드물다는것이 문제다.
특히 우리 한국사람들은 자신 개성대로 생긴대로 살생각을 안하고
너무 남의 눈치 세상눈치를 본다.
직장이 어느정도 남앞에 꿀리지않을정도는 되야하고
무슨 조건은 되야하고 돈은 얼마가 되야하고
이런거 저런거 끝없이 계산만하면서 정작 자신이 가진 재능
본인이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한번 생각해보지도않고사는것같다.
특히 미국에서 워렌버핏이나 스티브잡스도 그렇고
아주 개성이 강하고 튀는 평범하지않은 성격에 개성을 가진 사람들이
그렇게까지 성공할수있었던것은
모두가 똑같아질 필요는 없고 자신의 만족이 가장중요하다는 미국사람들의 사고방식때문이 아니었을까.
요즘 한국 젊은이들이 취업을 못하고 앞날이 보이지않아 절망에 빠져있지만
그중에 몇이나 스티브잡스처럼 본인하고싶은거 찾아서 학교중퇴후 좋아하는 강의 도강하며
밥은 노숙자들 밥주는데 하루 꼬박 걸어가서 먹어가며 살거나
웨렌 버핏처럼 초등학생 나이에 신문배달을 해서 스스로 돈을 모아
주식을 사보는 사람이 있을까.
이런 사람들이 언제 과외받으면서 명문대 들어가고 학교때는 학점관리하고 스펙쌓으면서
그리고 석사 박사학위따가면서 남들 다하는 방식으로 하루라도 살았을까.
어차피 부모님이든 누구든 대신 살아주지 않는 내인생인데
그냥 하고싶은거 마음에서 우러나서 해보고싶은거에 맨손으로 뛰어들면 안될까.
가수나 배우가 되고싶은 욕구가 계속 있는것은 스스로 아는데
해도맞는 사주인지 물어보시는분들도 있다.
그래서 해도되는 사주라고하면 성공하는 사주냐고 물으신다.
별로 아니라고하면 그럼 마음접겠다고..
성공못하더라도 좋아하는 일은 하기만 해도 즐겁고 행복한건데
요즘 대한민국이란 나라에 태어나서 무슨짓을 하든
어느나라 꽃거지처럼 굶어죽을일은 없는데
돈얼마 모으고 몇살에 결혼하고 집사고 이런거 다 내려놓고
그냥 하고싶은거 돈못벌어도 좋고 성공못해도좋으니까
그냥 하고싶은거 하고 살면 안될까요 라고 나는 묻고싶어진다.
왜 꼭 다른 사람들 친구들 나이들어가는거에 따라서 나도 맞춰서 결혼도하고
부모가 되고 차사고 집사고 살아야 되는 반드시 그래야만 하는 이유같은것은 없지않을까.
원래 성공이란건 성공에대해 생각하지않고
그저 본인이 흥미있고 해서 즐거운일 하다보면 만나게되는것이 아닌가.
사랑하다 나중에 헤어지게되면 그거 슬플까봐 사랑도 안하고
사업하다가 나중에 실패할까봐 걱정되어 사업시작안하고
그런식으로 인생을 산다면
어차피 조만간 죽어 관으로 들어갈텐데 오늘 밥은 굳이 왜먹냐말이지.
영화 한시간후면 끝날건데 뭐하러보고
여행도 갔다가 돌아올건데 왜 떠나나?
워렌버핏처럼 탭댄스추는 마음으로 일을 하면,
1년내내 해서 즐거운 일만 하고살수있다면
돈이 얼마가 되든 성공을 하든못하든 그자체로 행복한 삶이 아닐까싶다.
스티브잡스의 연설문
사랑하는사람을 찾듯이 일도 그렇게 사랑할수있는 일을 열심히 찾아보라는 말처럼
탭댄스를 추듯 일할수있는 일을 찾는데는 시간이 걸리겠지만
그런일을 찾는데에 남보기에 어때야한다 수입은 얼마는 되야한다 등등
어떤 조건도 달지말아야 할것이다.
그리고 좋아하는 분야를 찾게되면 그럴듯한 자리 준비된 자리 나올때까지
앉아서 생각만하지말고 그 언저리에 가서 뭐라도 시작해보는것이 좋다.
기회와 인연이라는게 그동네에가서 뭐라도 하다보면 어떻게 연결될지 모르는건데
집에 앉아 머리속으로는 아무리 오랜시간 생각한다해도
지금당장 딱떨어지는 그럴듯한 직업같은것은 나에게 생기기 어렵다.
브래드피트도 한때는 치킨집에서 닭분장하고 손님끌던 일, 스트립댄서들 실어주는 운전사였던 시절이 있었듯이
뭐라도 해보다보면 길이 어떤식으로 이어질진 아무도 모르는것 아닐까.
출처 : 사주8자 - blog.naver.com/koolleza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