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적령기의 남녀 사이에 무엇보다 관심을 끄는 것 중의 하나가 원진살(元嗔殺)인 것 같다. 케케묵은 구시대적 사주 분석 방법인 데도 이 원진살만 들었다 하면 고개를 흔든다. 사랑이나 현실적인 조건이 아무리 맞는다 해도 마음이 흔들린다. 두 사람 간의 사랑이 부족한 까닭이라고 말을 하기도 하지만, 당사자들 입장선 그렇지 못하다. 어느 누가 헤어진다는, 심하면 상대방을 죽게 할 수도 있다하는데 웃으며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인간이란 완전하지 못한 동물이다. 남의 말을 무시할 수도 없고, 언제나 평온한 삶이 이어지지도 않는다. 더욱이 자기에게 나쁘다는 말을 들은 다음엔 사소한 일만 일어나도 그 말을 상기한다. 뇌리에 박혀 사고의 전환을 쉽게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풍수를 예를 들어도 마찬가지다. 부모 묘소를 감정하고 난 다음 그 묘에 살(煞)이 꼈다고 하면, 예컨대 장남이 불행하고 아우가 잘 된다는 감정을 받으면 장남과 아우간의 불화는 이미 시작된 것이나 다름없다. 뭔가 조그만 일이 발생해도 묘 탓으로 돌리고, 형제간에 싸움박질은 일상사가 된다. 시기와 질투로 만신창이가 된다. 형제간의 우애는 물 건너 간 상태가 된다.
주는 것 없이 밉다는 것, 보면 싫어지고 보지 못하면 보고 싶어 한다는 게 원진이다. 비슷한 것으로 정신병자에 많다는 귀문관살(鬼門關殺)이 있다. 두 사안만 틀리고 꼭 같다. 따라서 원진도 정신적인 문제에 귀결된다고 봐도 되겠다.
감정이 없는 사람은 없다. 성인군자라도 어쩔 수 없는 게다. 평범한 부부가 어찌 싸움 한 번 하지 않고 살 수가 있나. 아마도 그런 사이라면 어느 한 쪽은 아마도 속이 곪아 터졌을 것이고, 시꺼멓게 변색되었을 게다. 삶이 삶이 아닌 사람일 게다.
부부싸움엔 각자의 성격과 가치관, 자라온 환경, 무엇보다 처해있는 현실의 차이가 큰 영향을 미친다. 아무리 원진이 무소불위(?)의 힘을 휘두르고 있다고 해도 두 사람 모두 모르면 탈이 없다. 그러나 아무리 사이좋은 부부라도 원진이 있다는 얘기를 들으면 사소한 말다툼도 원진 탓으로 돌리고, 그게 쌓이다 보면 심하면 이혼으로까지 확대된다. 멀쩡한 부부를 헤어지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는 얘기다. 좋은 얘기는 잘 잊어버릴 수 있는 데 반해, 나쁜 말은 한 번 들으면 잊어먹지도 않는다.
또 인간이란 자기회피적인 성향이 강한 동물이다. 자기 탓은 절대로 인정 못한다. 어떻게 보면 그렇게 해서라도 편한 마음이 되고자 하는 까닭일 수도 있겠다. 울고 싶은 데 뺨 맞는 격으로 그때 귀에 쏙 들어오는 말이 원진이다. 마치 구세주과 같은 말이다.
죽고 못사는 연인이 있었다. 그것도 늦게 만나 부푼 꿈에 젖어 있는 사이였다. 어느 용하다는 사람을 찾았단다. 그런데 두 사람에게 청천벽력 같은 예언이 들려오더란다. 원진살이 끼인 사이라는 얘기다. 결혼해봐야 헤어질 게 뻔하다는 결론에 그들 두 사람은 결국 헤어졌고, 아직도 모두들 독신으로 살고 있다고 했다. 벌써 수년째란다. 천만번을 양보해 원진을 인정하더라도 그럴 바엔 차라리 결혼을 하는 게 더 현명하지 않을까. 헤어질 때 헤어지더라도 말이다. 먹고 죽은 귀신이 때깔도 더 곱다고 했다.
원진은 두 사람의 사주에 나타나 있는 글자만을 본다. 그것도 상대방에 한 자씩, 단 두 글자만의 비교다. 단순히 글자 두 개 맞춰 삶을 추론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현실이 배제되고, 타고난 본성도 배제되고, 살아온 궤적도 철저히 무시되는 단순한 글자 맞추기에 불과하다. 이를 천리(天理)처럼 떠들어 대는 사람이나, 이를 또 찰떡같이 받아들이는 사람이나 한심하기는 매 일반이다.
2012. 6. 24 희실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