一, 程傳(伊川易傳)의 역학이론
象에 말미암아 理를 밝히고 理를 가지고 易을 풀이하는 방법으로 왕필의 노선과 기본적으로 일치한다. 다만 왕필은 無를 근본으로 삼았고 정이는 理를 근본으로 보았다. 理와 象의 관계를 體와 用의 관계, 微와 顯의 관계라고 보아 用인 象으로 體인 理를 밝힐 수 있다고 했다. 易을 읽을 땐 반드시 먼저 개체를 알아야 한다. 건괘의 元亨利貞 4덕 가운데 하나라도 결여하면 乾이 아니다라고 했다. 괘를 事로 보고 효를 事의 時로 보았으며 時에 따라 義를 취한 것이 주역이다라고 하면서 時를 알고 變을 알아 勢의 경중을 알아야 易을 배울 수 있다고 했다. 역사를 주역에 도입하여 남송의 양만리와 명청교체기의 왕부지에게 영향을 미치다.
二, 程傳(伊川易傳)의 철학사상
理를 本으로 하는 體用一源說의 객관적 관념론이다. 理가 있은 후에 象이 있고 象이 있은 후에 數가 있다고 보았다. 만물은 하나의 天理로서 모두 理에서 나온다. 주역의 체제를 수시로 변역하여 道를 따른다고 하면서 道는 동적 과정,법칙,방식이고 理는 정적인 내재 형식 구조이다라고 했다. 道를 무형의 理로 보고 음양을 유형의 物로 보면서 음양 2기가 만물을 낳고 화하는 일이 강유인 理의 체현이라고 보았다. 무형이 유형을 통솔한다는 왕필의 현학이론을 천지의 道가 음양 2기 및 천지의 일을 규정한다는 理本論으로 뒤바꾼 것이다. 理가 있으면 氣가 있다. 陰이 되고 陽이 되는 근본 이유가 바로 道이다. 주역을 해석하면서 음양이 모순 대립하거나 상호 의존하는 관계임을 증명하여 변증법사상을 밝혀 내었다. 봉근계급질서를 강조하는 유가 理學의 특징을 드러냈다. 변화무상이 항상된 道理로 세계가 정지하지 않은 변역운동의 과정임을 확인하여 陽剛을 숭상하는 사상을 드러내면서 왕필(보사), 주돈이(렴계) 등이 靜을 천지의 마음으로 보고 寂然至無를 천지에 널린 만물의 근본으로 간주하였던 현학적 관점을 부정하였다.
*, 하남의 정이천은 쓰노라.
周易 은 괘(卦)·효(爻)·단(彖)·상(象)의 뜻으로 천지만물의 실정(實情)을 드러낸 것이니, 천하후세에 대한 성인의 근심이 얼마나 지극하였는지를 알 수 있다. 이에 천하에 앞서는 사물의 존재의미를 드러냈고, 천하의 뒤에서 그 책무를 완성하였다. 이런 까닭에 그 수(數)를 지극히 하여 천하의 상(象)을 정하고, 그 象(상징성)을 드러내어 천하의 길흉을 구분하였으니, 64괘와 384효는 모두가 성명(性命)의 이치를 쫒아 (역의 근본문제인)선후천 변화의 道를 표상한 것이다. 도가 흩어져 이치에 있으면 만 가지로 갈라지고, 통합하여 도(道)에 두어도 두 가지 이치는 있을 수 없다. “이런 까닭에 역(易)에는 태극(太極)이 있고, 태극은 양의(兩儀)를 낳았다”라고 한 태극(太極)은 도(道)를 가리키는 것이고, 양의(兩儀)는 음양(陰陽)이며, 음양은 도이고, 태극(太極)은 곧 무극(无極)이다. 만물이 태어날 적에 음(陰)을 등지고 양(陽)을 가슴에 안아 태극(太極)과 양의가 있지 않음이 없으니, 인온(絪縕)교감(交感)하여 무궁한 변화가 나타난다. 형상을 갖는 존재는 모두가 한결같이 生을 받은 것이고, 신명은 한결같이 그 지혜를 발하여 참(眞情)과 거짓을 구분할 수 있게 되어 만 가지 단서가 있게 된다. 역(易)은 길흉(吉凶)을 정하여 대업(大業)을 낳게 한다. 그러므로 역(易)은 음양(陰陽)의 도(道)이고, 괘(卦)는 음양(陰陽)의 물건이며, 효(爻)는 음양(陰陽)이 동(動)한 것이니, 괘(卦)는 비록 같지 않으나 같은 것은 기(奇)와 우(偶)이고, 효(爻)는 비록 같지 않으나 같은 것은 구(九)와 육(六)이다. 이 때문에 64괘(卦)가 체(體)가 되고 384효(爻)가 서로 용(用)이 되어 멀리는 육합(六合)의 밖에 있고 가까이는 한 몸의 가운데에 있어, 짧은 순식간과 동(動)하고 정(靜)하는 작은 것에도 괘(卦)의 상(象)이 들어있고, 효(爻)의 뜻이 있지 않음이 없는 것이다.
지극하도다, 역(易)이여! 그 도(道)가 지극히 커서 포함하지 않은 것이 없고 그 쓰임이 지극히 신묘하여 있지 않은 때가 없으니, 진실로 처음부터 하나가 있었던 것이 아니고, 괘(卦)도 일찍이 처음부터 고정된 상(象)은 없었던 것이며, 事 역시 처음부터 다함이 있었던 것이 아니고, 효(爻) 역시 또한 일찍이 처음부터 위치가 정해진 것은 아니나, 일시에 괘(卦)를 찾는다면 변화가 없음에 붙들리게 되니, 역(易)이라 할 수 없고, 한 가지 일로써 효(爻)를 밝힌다면 막혀서 통하지 못하게 되니 이 또한 역(易)이라 할 수 없으며, 이른바 괘(卦)·효(爻)·단(彖)·상(象)의 뜻만 알고 괘(卦)·효(爻)·단(彖)·상(象)의 쓰임을 알지 못해도 역(易)이 아니다. 그러므로 정신(精神)의 운용과 심술(心術)의 움직임에서 터득하여 천지(天地)와 더불어 덕(德)이 합하고 일월(日月)과 더불어 밝음이 합하고 사시(四時)와 더불어 차례가 합하고 귀신(鬼神)과 더불어 길흉(吉凶)이 합한 뒤에야 역(易)을 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역(易)에 괘(卦)가 있는 것은 역(易)이 이미 나타난 것이고, 괘(卦)에 효(爻)가 있는 것은 괘(卦)가 이미 드러난 것이니, 이미 나타나고 이미 드러난 것은 말로써 알 수 있으나, 아직 나타나지 않고 아직 드러나지 않은 것은 명칭으로써 구할 수 없으니, 이른바 역(易)은 과연 어떠한 것인가? 이는 배우는 자가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이다.
출처 : 정이(정이천)의 易(程傳-이천역전) - cafe.daum.net/20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