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음은 친일 행각을 벌였다 지탄을 받는 兪鎭午(유진오) 박사의 명조다 .
甲 丁 癸 丙
辰 巳 巳 午
物各有主(물각유주)須且消停(수차소정)雪裡埋尸久而自明(설이매시구이자명)
= 사물이 각기 主幹(주간)하는 것이 있음이니 모름지기 또한 掃除(소제)를 하고선 그 머무는 곳을 깨끗하게 하여 눈속 같은 것에 그 죽엄의 고요한 현상 시동을 묻은 것처럼 해서는 오래도록 지나서 야지만 스스로 밝아진다는 것으로서 그 修道(수도)精進(정진)하는 것을 가리키는 말일 것이나 그런 원인으로 인하여선 생겨난 사물들은 그렇게 제절로 밝은 운명 속에 산다는 그런 말일 것이리라 그러므로 此(차) 物象(물상)은 좋은 축에 든다 지금 사주 본명이 그렇게 修道(수도)하듯 하여선 저절로 밝아진 현상으로 생겨 있는 모습이라는 것이다
本命(본명) 易象(역상)은 艮爲山(간위산) 初爻(초효)에서 山雷 (산뢰이) 初爻(초효)로 되어지는 모습이다 첫걸음을 떼게 되는 발걸음을 篤實(독실)하게 두어야만 한다는 것으로서 그 兄爻(형효)動作(동작)하여선 官性(관성) 回頭剋(회두극)을 입어선 世主(세주)가 되어지는 모습인지라 자체적 朱雀(주작)官(관)인데 四柱(사주)本命(본명)에 대해서도 그렇게 주작이 動(동)한 모습인지라 소이 比劫(비겁)을 잘 만나선 그렇게 榮華(영화)로 나아가는 官爵(관작)을 얻게 된다는 그런 말이리라 두루 임금님이 계시는 곳 城內(성내)를 밟고 다니니 一千(일천)개의 門戶(문호)가 한꺼번에 열렸다는 의미로서 머리에 御史花(어사화)를 꼽는 場面(장면) 상황인지라 그 과거 급제 좋은 것을 입으로 다 형언하기 어렵다는 그런 말이리라
사람이 살면서 그 處世(처세)를 잘해야지 賤薄(천박)하여지지 않지 그 잇속을 보고선 眼目(안목)이 흐려져선 賤薄(천박)한 행위를 한다면 그렇게 족히 貴(귀)한 행동이라곤 할 수 없다는 것이 그 山雷 卦(산뢰이괘) 初爻動作(초효동작)인 것이라 山雷 卦(산뢰이괘)는 成長(성장)한다는 대서 오는 巽木宮(손목궁) 本宮(본궁)이요 世(세)는 七世(칠세) 四爻(사효)인데 所以(소이) 좋은 그릇이 世(세)를 잡은 현황인데 그 初爻動作(초효동작)은 그 貴(귀)하지 못한 행동 자신의 신령스런 靈龜(영구) 그 연장[남자 연장]을 내버려두고선 그 입으로 꽃에 물주는 행위를 한다는 것은 그래선 陰戶(음호)에다 되곤 턱을 핡느라고 끄덕거리는 모습은 좋은 현상 못된다는 것이로서 귀한 행동 아니라 하는 것인데 그렇게 山地剝(산지박)은 天下(천하)를 象徵(상징)하는데 天下(천하)의 女人(여인)을 얻은 象(상)인데 그렇게 제일 微賤(미천)한 행위 그 장차 재미 보겠다고 그 色情(색정) 무르익으라고 陰戶(음호)를 핡는 행위 소이 꽃에 물주는 행위를 하는 현상이라는 것인데 그런 것은 그 제삼자가 본다면 어떻게 貴(귀)한 행동이겠느냐 이다
所以(소이) 自身(자신)이 選好(선호)하는 것에 빠져선 바른 행실을 할 줄 을 모르는 것을 가리키는 말일 것이다 그래도 天喜星(천희성)이 世爻(세효)에 임하니 吉慶(길경)을 가히 알리라 하는 것을 본다면 상당하게 좋은 것을 알 것이라 다섯 馬(마)가 사귀어 달리니 다섯 아들이 榮貴(영귀)해 지리라 이를 보건 데 그 苦楚(고초)를 겪은 다음 형통하여지리라 하는데 그 상당하게 좋은 것만은 확실한데 그렇게 後世(후세)에 그 行蹟(행적)에 대해 是非(시비)가 있는 모습이라 할 것이다
物象(물상)은 明畵莫愁却來問我 (명화막수각래문아흘) 이라 = 밝은 그림은 愁心(수심)이 없는데 도리혀 내게 와선 무엇 먹을 것 물어 보느냐 하는 것만 보아도 좋은 命條(명조)의 밝은 그림이라 할 것이다
天喜星(천희성)은 寅(인)에 대한 戌(술)을 말하는 것으로서 財性(재성) 世主(세주)에 吉格(길격)을 갖은 것을 말하는 것인데 兩巳(양사)中(중)에 庚金(경금)이 吉格(길격)을 가졌다는 意味(의미)이리라 銜字(함자)鎭字(진자)를 본다면 진압할 鎭字(진자)이지만 그 金氣(금기)가 참으로 진짜라는 의미이라 그러고 사주에 辰午(진오)가 있음에 그렇게 兪鎭午(유진오)로 銜字(함자)를 정했다할 것인데 姓氏(성씨) 兪字(유자)는 점점 그러하다 대답을 그렇게 한다 이런 의미인데 사주가 그렇게 金氣(금기)가 참으로서 午字(오자)를 억제하고 진압하는 것으로서 대답을 한다 하는 것으로 본다면 그 祿(록)줄 午(오)를 水庫(수고)辰(진)이 金氣(금기)의 힘을 얻어선 制壓(제압)을 함으로서 영화로 나아간다 所以(소이) 官性(관성)이 比劫(비겁)을 抑制(억제)함으로서 영화로 나아가게 된다는 그런 의미가 된다 할 것이다 四柱(사주) 庚金(경금) 天喜星(천희성) 世主(세주)에 그 環境(환경)이 밥인 印性(인성) 應爻(응효) 性分(성분)인지라 時柱(시주)를 아주 잘 만났다는 것이리라
水庫(수고)에 根(근)을 박은 甲木(갑목)이 잘 日干(일간)을 받쳐주면서 그 財性(재성) 먹이가 되어주는 모습은 此(차) 운명을 영화로 나아가게 한다는 것이리라
甲辰(갑진) 丙午(병오) 갈라 치기 하고선 그 隔角(격각) 中間(중간) 乙巳(을사)를 貴人(귀인)을 삼은 命條(명조)이다 그 사중 庚金(경금)이 참으로 진짜 金氣(금기)라는 財性(재성)이다
그렇게되면 三巳(삼사)가 천을 귀인 亥(해)를 騷動(소동)해 오는 모습이라 할 것이고 이미 丙丁(병정)이 들은 것만 보아도 丙丁(병정)猪鷄位(저계위)天乙(천을)이 임한 것을 알 것이다 丙丁(병정)이 있음 天乙(천을)이 임한 것은 확실한데 그 構造(구조)가 어떻게 잘 짜여져 있는 것에 따라 貴人(귀인)跋扈(발호)가 제대로 이뤄진다는 것이리라 모든 四柱(사주)가 다 그렇게 天乙(천을) 귀인 임한다고 해선 좋은 것만은 아닌 것이고 그 귀인 활동이 잘되게끔 환경이 이뤄진 命條(명조)라야만 그렇게 귀인 跋扈(발호)가 된다는 것이리라
姓氏(성씨) 兪字(유자)를 破字(파자)해본다면 八字(팔자)를 볼 것 같으면 하나의 달이 두 새[鳥(조)]나르는 모습 그 表現(표현)은 그렇게 달이 메아리쳐선 퍼지는 모습을 그리는 것인데 所以(소이) 그 사주 팔자 생긴 것을 본다면 하나의 달이 그렇게 메아리 퍼지듯 한다 所以(소이) 달빛이 婆娑(파사)하게 퍼져선 이뤄진 그런 모습이라는 것으로서 그 太陰(태음)을 象徵(상징)하는 말인데 태음 달은 햇살이 퍼지게 되면 自然(자연) 그 빛을 잃게되는 것으로서 幕(막)을 내린다할 것이다 이반면 全斗煥(전두환) 命條(명조)는 그 號(호)가 日海(일해)라 하여선 해가 부서진 모습 소이 햇빛이 찬란하게 대지를 비추는 모습 그러다간 時運(시운)이 다해 西山(서산)으로 沒落(몰락)하는 그런 命條(명조)가 된다할 것인데 與黨(여당)總帥(총수)나 그렇게 大權(대권)을 쥐는 자를 太陽(태양)이라 하고 그 野黨(야당)總首(총수)나 그 呼兄呼弟(호형호제) 이렇게 막중지세를 이루는 것을 太陰(태음)이라 할 것이다 유진오,도 역시 야당총수를 하였다 할 것이다
소설 쓰는 사주가 眞僞(진위)가 不分明(불분명)하다하는 것을 말할 것이 없는 것이고 거 占辭(점사)만 맞으면 그 운명에 해당하는 占法(점법)이 된다 할 것인데 아 - 全斗煥(전두환)이가 癸未(계미)생이든 甲申(갑신)생이든 박정희가 戊寅(무인)시 이든 辛巳(신사)시 이든간 그 점법만 맞으면 무슨 기둥을 세우던간 다 그에 적절한 맞는 것이 된다 할 것인데 아- 박정희가 辛巳(신사)시 라 한다고 해서 戊寅(무인)시로 풀은 占辭(점사)가 그 맞지 않으라는 법은 없는 것이 그 日辰(일진)에 무게 중심이 실리고, 또 그렇게 해석하라고 사람들이 이미 입으로 쥐어짜선 만들어 논 모습은 곧 그런 방향으로 그 운명을 해석 해야 만이 그 운명에 맞는 논리다 이렇게 鬼神(귀신)이 측량치 못 할 것을 添加(첨가)해 논 것인줄 누가 알겠는가 이런 내 논조다 그 易象(역상)을 풀어보면 戊寅(무인)시라 하여도 지극히 당연한 귀결을 내어놓기 때문이다 아 -전두환 이가 癸未(계미)년이라 한다면 분명 日海(일해) 해가 부서지는 象(상)의 四柱(사주)가 아닐 것인데 그렇다해도 그 全(전)대통령은 太陽(태양)역할 하지 않았다 곤 할수 없는 것이라 할 것임에 그 日海(일해) 所以(소이) 해가 부서져선 드넓은 바다처럼 햇살이 퍼졌다고 아니하지는 못 할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무슨 사주가 맞니 안 맞니 할 것이 없다 할 것이다 그 새겨 듣는 분들이 그 참고 할 사항만 있으면 되는 것이다
아 - 박정희 운명의 점법이 戊寅(무인)時(시)로 풀어야만 易象(역상)으로 맞게되어 있는 것이 雷地豫卦(뇌지예괘) 三爻(삼효) 豫悔遲(우예회지) 有悔(유회)이기 때문에 그렇게 사람들 입으로 戊寅(무인)시라고 쥐어 쫘 놓게되는 것인데 이런 것은 다 자연 저절로라 할 것인데 이것은 무관이 눈을 치켜 부릅 뜨고선 무서운 얼굴을 하고 있는 상인 것이고 血流(혈류)방망이가 壯丁(장정)健壯(건장)하듯그 동량감을 다듬는 짜구 연장이 되다시피 하여선 母宮(모궁)을 향하여선 저돌적으로 나댄다는 것인데 그 더딜 遲字(지자) 쉬엄 쉬엄 갈 字(착자)로 奴僕(노복) 심부름군 所以(소이) 이것은 세상이 그렇게 받들어 선 적재한 모습을 말하는 것인데 세상의 운행 흐름이 사람들의 머릿 속에는 그렇게 천천히 가는 모습, 낮과 밤이 아무리 팽이처럼 돌아간다 하여도 사람들의 머릿속 생각에서는 천천히 가는 것으로 느껴지는 것이지 그렇게 정신 팽그르르 돌 듯 가는 것은 아닌 것이다 그런 위에 그 무슨 글자인가 하면 코불소 '지자'인데 코불소라 하는 넘이 얼마나 저돌적으로 나대는 것인가 이다 세상에 그렇게 강폭한 자가 되선 제 세상 만났다고 활동한다는 것이고 그 글자가 또 표주朴(박)을 상징하는 글자 표주박 이라 하는 瓠(호)의미의 글자인 것이다 아- 그러니 그
박정희를 가리키는 말이 아니고 무엇인가 그래서 설사 辛巳(신사)시라 하여도 그 戊寅(무인)시라 하고선 民心(민심)天心(천심)하여선 사람 입에 오르 내리게 하여 논 것이고 그렇게 해서만이 그 해석하는 占辭(점사) 弄斷(농단)이 그럴사 하게 돌아간다는 것이다
유진오 명조 풀다간 엉뚱한 것 까지 이야기한 것 같다할 것이다
甲 丁 癸 丙
辰 巳 巳 午
함자를 풀어보면 兪[유]자 사람은 하나인데 달은 둘이다 ,또는 들었는데 팔자에 하나의 달에 빛은 둘이다 , 아마 여기서는 甲辰(갑진)의 辰(진)이 그 푸른 정기의 달이 되는데[* 여기선 그 戊字(무자)形(형) 戌(술)을 도충해 오는 달 역할을 한다는 것이리라] 그 빛을 내게 하는 햇살 巳(사)는 둘이다는 것인데 이것은 곧 마누라가 둘이라는 의미가 된다 필자가 선입견에서 그래 생각 하였더니만 분명 부인이 둘이었다
辰巳巳午(진사사오) 가 역시 太陰(태음)이 늘어나는 모습으로 달을 의미하는데 , 하지만 午(오)는 眞(진)太陽(태양)이라 그 四寸(사촌) 巳(사)는 햇살로서 달을 비추어 달을 빛나게 한다 할 것이라 이러한 두 햇살이 달을 비춤에 달빛화 하여 甲(갑)에 精氣(정기) 銳氣(예기) 丁(정)이 癸字(계자)의 도충을 맞아서는 매우 크고 화려하게 빛난다 할 것이다 癸(계)가 丙字(병자)를 겸하여 갖고 있음에 그 투충의 역할을 한다할 것이라 그래선 그 癸字(계자)에게 잘 보이기 위하여서 丁字(정자)가 매우 커진다는 것이리라, 丙午(병오)는 순수한 태양이다 巳巳(사사)는 그 근사치 사이비라는 것이다 이러므로 모방이나 흉내를 잘 낼것이며 그 곱지 못한 관찰의 대상이 된다 할 것이다
鎭字(진자)는 巳中(사중)庚(경)金(금)이 거짓과 참이라는 뜻이고 그러니깐 재성이 둘이라는그러한 말이고 午字(오자)는 그냥 年支(년지) 午(오)를 가리킨다 해도 되고 사람이 十(십)을 올라탄 모습도 된다
玄(현)民(민)이라는 號(호)는 역시 검은머리 백성이라는 겸허한 뜻의 號(호)인데 역시 癸字(계자)와 巳字(사자)의 의미를 지닌다 할 것이다
그래도 매우 좋은 조인데 대정역수 艮爲山卦(간위산괘) 초효는 그 발걸음을 독실하게 떼어 노아야 한다는것 첫걸음이 바르어 야지만 끝까지 돈독해진다는 말이리라
그의 약력은 고대총장 신민당 당수를 지내는 등 매우 화려하다
아래와 같다
* 유진오 [兪鎭午, 1906.5.13~1987.8.30]
요약
한국의 법학자 ·문인 ·정치가.
호 현민(玄民)
활동분야 정치, 법학, 문학
출생지 서울
주요수상 학술원 공로상, 문화훈장
주요저서 《헌법해의(憲法解義)》,《창랑정기(滄浪亭記)》
호 현민(玄民). 서울 출생. 1929년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예과 강사를 거쳐 보성(普成)전문학교 법학교수가 되었다. 1927년경부터 소설을 쓰기 시작, 《조선지광(朝鮮之光)》 《현대평론》 등에 작품을 발표하면서 문단에 등단하였다. 프롤레타리아문학 전성기 동반작가(同伴作家)로 《갑수의 연애》 《빌딩과 여명(黎明)》 등의 작품을 썼고, 1938년 장편 《화상보(華想譜)》를 《동아일보(東亞日報)》에 연재하기도 하였다. 1948년 정부 수립을 위한 제헌헌법을 기초하고, 초대 법제처장을 역임하면서 1951년 한일회담 대표로도 활약하였다. 1952년 학계로 돌아가 고려대학 대학원장을 거쳐 총장에 취임하였는데, 1953년 국제법학회 회장에 피선, 1954년 학술원 종신회원이 되었다.
5·16군사정변 후에는 국가재건국민운동본부장 ·유엔 한국협회장이 되었으며, 1964년 대한교육연합회장 등을 역임하고, 1965년 법전편찬위원에 선출되었다. 1967년 정계로 들어가 신민당(新民黨) 총재가 되어 그해 제7대 국회의원에 당선, 1970년 신민당 고문에 취임하였다. 1974년 고려중앙학원 이사에 취임하고, 1980년 통일원 고문 ·국정자문위원에 위촉되었다. 학술원 공로상 및 문화훈장을 받았다.
저서에 《헌법해의(憲法解義)》 《헌법강의(憲法講義)》 《민주정치의 길》 《젊은 세대에 부치는 서(書)》 등이 있고, 문학작품에 《유진오(兪鎭午) 단편집》 《김강사(金講師)와 T교수》 《창랑정기(滄浪亭記)》, 수상집에는 《구름 위의 만상(漫想)》 《젊은 날의 자화상(自畵像)》 《양호기(養虎記)》 등이 있다.
출처 : 야당 당수 를 지낸 兪鎭午(유진오) 박사의 명조 - cafe.daum.net/dur6fk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