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택의 개요 및 원리

양택 풍수

sunny | 2017-09-30 07:36:59

조회수 : 1,924

제 1 장 양택 풍수 

인간이 살아가면서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 衣食住(의식주)이다. 
그 중에서도 住居(주거) 곧 집에 관한 것은 매우 중요하다. 외부에서 활동 후 하루의 피로를 풀어 줄 수 있는 공간, 평생의 절반을 집이라는 주택공간에서 살아간다. 이러한 의미에서 양택풍수의 성립은 시대를 거치면서 자연스레 성립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집은 사람에게 氣(기)를 주고 사람은 집에게 기를 준다. 이것은 집도 하나의 有機體的(유기체적)인 대상으로 풍수지리에서는 보고있다는 것이다. 
여러분들은 농촌에 가보면 사람들이 모두 도시로 떠나고 비워둔 집이 1,2년 사이에 지붕에 풀이 돋고 마당은 잡풀들로 둘러 쌓여 있고 문짝은 모두 달아난 채로 폐허가 되어 거미줄과 먼지가 수북히 쌓인 집들을 흔히 볼 수 있을 것이다. 사람들이 많이 주거하는 공간이 쉽게 부서지고 사람이 살지 않는 빈 공간이 더 오랜 기간 튼튼하게 원형을 유지해야 되는 것이 일반적인 상식이지만 실제는 그와 정반대의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이는 결국 적당한 크기의 건축물에는 적당한 사람의 기가 존재할 때 건축물이 살아 숨쉬고 더 오랜 기간 보존될 수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陽宅風水(양택풍수)란 사람이 주거하기에 가장 편안한 집, 사람과 자연과의 중간에서 조화롭게 중간자 역할을 해주는 것이 양택풍수의 목적이다. 집은 어머니 품속같이 가장 안정되고 편안한 곳이기에 양택풍수는 이러한 주택의 건축을 궁극적인 목표로 삼고있다고 말 할 수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양택풍수는 자연의 이치를 깨닫고, 자연의 원리에 따라 인간이 가장 행복한 삶을 영위하기 위한 공간을 이루기 위한 인간 본연의 지혜의 결집이라고 보아야 마땅할것이다. 

1) 陽宅風水의 역사 인간이 지구에 존재하면서부터 陽宅(양택)은 출발되었다고 보아도 타당하다. 인류의 시작은 자신이 살아 가야할 의식주를 찾는 데부터 시작되었다. 
의식주중에서 住(주)에 해당되는 삶의 은신처는 추위와 비바람과
동물들의 위혐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가장 안전한 장소를 찾기 시작하면서 양택의 기원은 시작되었다고 하여도 될 것이다. 인류의 역사에서 볼 때, 인간의 최초의 생활공간은 동굴에서 생활을 하거나, 이른바 竪穴式(수혈식) 주거 형태를 이루며 살아왔다.
이는 매우 원시적인 주거 형태로 오늘날의 양택풍수이론으로 설명할수 있는 부분은 아니지만, 최소한 입지 선택에 있어서는 나름대로의 원칙은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구석기, 신석기 시대를 거치면서 입지적인 장소의 선택기준이 설정되었고, 이후 청동기, 철기 시대를 거치면서 비로서 국가적 형태의 구조가 이루어지기 시작하면서 주거의 형태는 크게 발전 되었고, 이에 따른 풍수지리의 역할은 크게 작용되었다. 

2)文獻(문헌)속에 나타난 양택의 기원 일연이 지은 [三國遺事(삼국유사)]에 보면 신라의 4세 왕인 석탈해가 명당 집터를 찾는 장면을 상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석탈해가 아주 어렸을 때 경주의 토함산에 7일 동안 올라 경주를 두루 내려다 살펴보았을 때, 거주할 만한 마땅한 집터를 찾았다. 7일 동안 찾은 결과 초사흘달 형국의 명당의 터를 만났으나 호공의 집이었다. 석탈해는 명당의 터인 호공의 집을 머리를 써서 빼앗아 그곳에 살았다. 마침내 그 명당의 터 덕분으로 훗날 신라의 제 4대왕이 되었다". 
삼국유사에 담겨진 석탈해의 명당의 터찾기 이야기를 미루어 한국 양택풍숭의 기원을 엿볼수 있다. 
이외에 양택명당의 이야기는 역사서속에 수없이 등장하고 있다. 
그 중에 <東史綱目>이라는 古書(고서)에서는 고려 太祖(태조)인 王建(왕건)에 대한 이야기를 적고 있다. 왕건은 개성의 옛 지방인 송악사람이었다. 왕건의 아버지 왕륭은 뜻이 원대하고 포부가 커서 삼한을 평정하고자 하였다. 청주 한씨와 결혼하여 집을 송악산 남쪽에 지었는데 스님인 도선이 문 앞 나무아래에 쉬면서 다음과 같이 감탄하면서 말했다.
" 이러한 곳에서 성인이 출생할 것이다." 이말을 들은 왕륭은 신을 거꾸로 신고 달려나와 도선을 맞이하였다. 무학과 왕륭 두사람은 송악산에 올라가 산수의 맥을 두루 살핀후 스님 도선은 글 한통을 썼다. 그 글을 봉하고 그 겉면에 ' 삼가 이글은 삼한을 통합할 임금이신 대원군자게 드립니다.' 라는 글을 썼다. 스님 도선이 그 글을 왕륭에게 주면서 말했다.
 " 공이 내년에 반드시 귀하신 아들을 얻으실 것입니다. 그 아이가 장성하면 이것을 주십시오" 라고 하였는데 과연 도선의 말대로 왕건이 탄생하여 훗날 삼국을 통일한 왕이 되었다. 

3) 外國(외국)의 양택풍수 한국의 풍수가 현대에 들어와서는 약간은 달라지었지만 음택풍수가 상당한 붐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관심의 대상으로 회자되고 있다. 그러나 일본, 대만, 홍콩, 미국의 뉴욕과 월스트리트의 증권가, 프랑스 사람들은 양택풍수에 많은 관심을 보여주고 있다. 일본은 가상학이란 것을 가지고 정규프로그램을 만드는가 하면 전문대학이 3개나 있고, 홍콩의 최고 책임자의 관저 정면에 칼날같이 날카로운 건물이 보여 좋지 않다고 하여, 직접 홍콩 최고 책임자의 집무실을 옮길 정도로 홍콩이나 대만은 일종의 광적인 관심사가 되고 있다.
홍콩, 대만, 미국의 맨하튼과 같은 곳은 풍수지리, 특히 양택이 극성스러울 정도로 붐을 이루고 있어 아파트나 주택뿐만 아니라 회사나 사업장, 공장의 사무실의배치에 까지도 풍수가 깊숙히 자리하고 있다. 사람의 책상의 어느 방향 어는 위치에 놓여야 하는가, 금고를 어느 곳에 놓아야 안전한지, 경리의 책상은 어느 위치에 있어야 하는가. 
심지어 수족관이나 도자기 한점까지도 일일이 풍수의 원리에 따라 배치하고 있고 풍수가들이 고려하고 조언을 하고 있다. 
유명 연예인이나 그룹의 총수까지도 무슨 문제가 있으면 문제의 원인이 집터나 사무실의 위치라고 믿고 풍수가를 찾아와 양택의 문제점을 시정하고 있다. 
외국이 양택풍수의 바람이 현재에는 한국의 땅에서도 들어와 활발하게 펴져나가고 있다 그러다 보니 실내 인테리어, 가상학이라 하면서 외국의 조잡한 양택풍수서적을 베낀 책들이 서점에 쌓여나가기 시작했다. 무분별한 외국 선호경향, 외국 문화사대주의가 풍수에서도 찾아오기 시작했다. 더불어 양택풍수의 성행이 학문적으로 접근하기 보다는 술수가 판치는 것도 무분별한 양택의 범람속에서 문제점으로 바라볼 수 있겠다. 

4) 풍수지리학으로 바라본 양택 양택은 풍수지리학의 한 분야로서 설명할 수 있다. 풍수지리학이란 風氣(풍기), 水氣(수기), 地氣(지기)의 총체적인 학문이요, 天氣(천기), 地氣(지기), 人氣(인기) 三才(삼재)사상의 학문이라고 할 수 있다. 風氣(풍기), 水氣(수기), 地氣(지기)도 3이요, 天氣(천기),地氣(지기),人氣(인기)도 3이요, 陽基(양기), 陽宅(양택), 陰宅(음택)으로 분류되는 풍수의 종류도 3이요, 한국인의 3이란 숫자의 선호는 한국의 문화나 풍속 곳곳에 숨겨져 있다. 
陽基(양기),陽宅(양택),陰宅(음택) 모두는 풍수지리학의 근본인 風氣(풍기), 水氣(수기), 地氣(지기)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陽基(양기)풍수는 天氣(천기),地氣(지기),人氣(인기)가 골고루 분포되어있어야 하고, 陰宅(음택)은 天氣(천기)를 반드시, 地氣(지기)는 많이, 人氣(인기)는 적게( 천기 100%, 지기150%, 인기50%)분포되고 , 陽宅(양택)은 人氣(인기)가 가장 많게 (天氣(천기) 100%, 地氣(지기)50%, 人氣(인기)150%)분포시켜야 한다. 男性(남성)은 陰宅(음택)풍수에 관심이 많고, 女性(여성)들은 陽宅(양택)풍수에 관심이 많이 존재하는데 이것도 陰陽五行(음양오행)의 원리에 기인된다. 
남성은 陽氣(양기)가 발달되어있으니 陰氣(음기)가 旺(왕)한 陰宅(음택)에 관심이 있게되고, 女性(여성)은 陰氣(음기)가 발달되어있으니 陽氣(양기)가 旺(왕)한 陽宅(양택)에 관심이 큰 것이다. 양택풍수란 人氣(인기)가 가장 발달되어야 하므로, 사람이 없는 양택이란 존재할수없다. 양택 풍수의 명당이란 사람이 많이 사는 곳, 사람과 사람이 인장을 주고 받는 곳을 말한다. 양택풍수를 종합해본다면 바람과 물, 땅의 세가지 기운이 깨끗하고 맑으며, 天(천),地(지), 人(인)의 氣(기)가 적당한 비율로 분포되어 있는 것을 찾는 것이다. 속된 말로 발복을 받고자 하는 것이 아닌 자연과 인간과 더불어 살아가야한다는 풍수지리학의 학문인 것이다. 
풍수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하나가 裨補(비보)이다. 허한 곳을, 잘못되고, 부족한 것을 채우는 작업을 裨補(비보)라고 한다. 완성된 작품을 만들기 위한 노력이 바로 풍수인 것이다. 어는 땅, 어느 건물이든 완성된 곳은 없다. 선조들은 이 자연의 참 진리를 깨닫고 단점 등을 보안해나가면서 완성시켜 나가고자 하는 노력을 하였던 것이다.
 이것이 풍수의 기본 목표요, 양택의 목표라고 볼수있겠다.

 

김동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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