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마을을 방문했을 때, 어귀에 돼지석상이 서 있다면 어떤 생각이 들까. 아마도 풍수에 조금만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런 생각이 들 거다. 혹시 이 마을이 화기(火氣)가 강한가, 아니면 앞산이 뱀의 형상을 띠고 있나….
뱀은 십이지지(十二地支)로 사(巳)다. 남쪽을 뜻하며 불이다. 돼지는 해(亥)요, 북쪽이며 물이다. 따라서 돼지석상은 물로 불을 제압한다는 의미를 가진다.
강한 것은 누르고 약한 것은 북돋워 주는 것, 비보풍수의 도입이다. 너무 튀면 손해본다. 중용의 삶이 중요하단 얘기와 통한다.
인위적이 아닌 자연적으로 돼지가 뱀을 억누르듯이 중화를 이룬 지형이 있다. 풍수 물형론(物形論;형국론이라고도 한다)의 오수부동격(五獸不動格)이 그것이다.
오수부동격이란 다섯 마리의 동물들이 서로 견제하며 균형을 맞춘 지세(地勢)를 말한다. 다섯 마리의 동물형상을 띤 주위의 산세가 서로 대치되면서도 편안함이 깃드는 곳이란 얘기다.
호랑이. 코끼리, 쥐, 고양이, 개가 오수(五獸)다. 호랑이가 튀면 코끼리가 제어하고, 코끼리가 설치면 쥐가 제압한다. 개와 고양이는 상극이란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니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게다. 하지만 작은 쥐가 어떻게 코끼리를 제압할까. 코끼리는 지구상의 가장 큰 동물중의 하나다. 쥐는 그야말로 작디작고. 모기와 사자와의 우화를 되새겨 보면 이해가 쉽겠다.
오수부동격에선 다섯 마리 동물들 간에 팽팽한 긴장 속의 균형이 이루어진다. 이 사이에 닭이 있다고 한다면 이 닭은 아무런 근심, 걱정없이 편안하게 알을 품고 새끼를 친다. 그야말로 ‘긴장 속의 평화’ 다. 기(氣)가 충만한 땅이다.
오수부동격과 관련 이런 얘기가 전해져 오기도 한다. 개성의 만월대는 늙은 쥐가 밭으로 내려오는 ‘노서하전형(老鼠下田形)’이라고 한다. 새끼 쥐에 해당하는 것이 안산인 자남산(子南山)이 된다.
그런데 이 새끼 쥐가 천방지축으로 날뛰므로 어미 쥐인 만월대가 항상 불안한 마음이었더란다. 이에 주위에 고양이와 개, 호랑이, 코끼리 석상을 세워 서로 견제토록 하여 어미 쥐가 편안하도록 했다고 한다.
이 다섯 짐승 중 하나에 이상이 생긴다면 그 파장은 연쇄적이 된다고 본다. 실제로 1990년대초 진주의 어느 마을에선 석산개발로 인해 호랑이 형세의 안산이 파괴되자 상사(喪事)가 이어졌다 한다.
이에 마을에선 코끼리석상을 세워 호랑이를 달랬는데, 이후 더 이상의 ‘호환(虎患)’이 없었다 한다. 이보다 작은 국면으로 삼수부동격(三獸不動格)이 있다. 지네와 닭, 개의 형상이 있는 지형을 뜻한다.
자연적으로 견제가 되지 않을 경우 비보(裨補)풍수가 동원된다. 서두 부분서 언급한 돼지 석상이다. 동네 어귀 등에 생뚱맞게 서있는 동물 석상들은 대부분 이런 사유를 가지고 있다고 보면 되겠다. 풍수가 전통문화 이해에 도움이 되는 좋은 예다.
다툼이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형세도 있다. 용호쟁주형(龍虎爭珠形)이 한 예다. 용과 호랑이가 여의주를 다툰다는 뜻이다. 용의 형상과 호랑이의 형상이 마주보며 대치하는 지세다.
혈처를 잘 잡으면 장군이나 검․판사를 기대해도 되겠지만, 다툼을 좋아하는 인물이 나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지세다.
요즘 북한의 핵실험으로 지구촌이 시끄럽다. 이 현상은 한반도 주변의 힘의 균형이 깨진 탓이 아닐까. 명(明)-청(淸)교체기의 임진왜란이나 구한말의 일제침략은 또 어떤가. 한편으로 스위스는 이 ‘오수부동’ 을 잘 이용한 사례가 될 지도 모르겠다.
출처 : 風따라 水따라 - blog.naver.com/chonjjj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