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이맘때면 대한민국에선 큰 홍역을 치른다. 수험생 둔 가정은 물론이요, 직장 나아가 언론에 이르기까지 어느 곳, 어느 계층도 예외일 수가 없다. 이른바 ‘입시홍역’ 이다.
시험에서뿐만 아니다. 대학 진학률이 높은 학군으로의 위장전입은 기본이요, 빚을 내서라도 이사를 간다. 그렇지 못한 부모는 자격지심까지 느낄 판이다. 자식의 출세가 최우선인 셈이다. 현대판 ‘맹모삼천(孟母三遷)’ 이다.
굳이 중국 고사까지 들먹일 필요도 없겠다. 조선시대는 글공부가 가문과 자신의 삶을 좌우했다. 자연히 음․양택에 그 초점이 주어진다. 그곳에선 글공부를 좌우하는 그 무엇이 있었기 때문이다.
뾰족한 봉우리를 풍수에선 문필봉(文筆峰 : 줄여 필봉이라고도 한다)이라 한다. 전에도 언급했듯이 이 문필봉은 귀(貴)를 관장한다. 학식과 벼슬을 보장한다는 얘기다. 필두(筆頭)란 단어를 찾아 보라. 어떤 단체나 동아리의 우두머리를 지칭한다고 풀이하고 있을 게다.
풍수도(風水圖)에 보이는 주산의 형태가 바로 이 문필봉이다. 그만큼 중시했단 얘기다. 풍수에서 삼각형은 기피한다 했는데, 이 필봉만은 예외인 셈이다.
문필봉은 붓을 닮았다. 그래서 문필이다. 명문고택이나 묘소를 가보면 이 삼각형의 봉우리가 어김없이 버티고 섰다. 집뒤 주산이 아예 문필인 곳도 있고, 안산이 문필인 곳도 있다. 어쨌든 주위 산세에 적어도 한두개의 문필봉은 반드시 끼고 있다.
이 문필의 대표적인 것이 영양 주실마을 안산(案山)에 있다. 비뚤지도 않고 아주 반듯하다. 이 마을 어느 곳에서 봐도 한결같다. 특히 조지훈 선생의 종택에서 보는 이 봉우리는 그림에 가깝다. 안대문에 가득차도록 집을 설계한데서 풍수적 관점이 엿보이기도 한다. 문필의 기(氣)가 집안에 충만하도록 가상(家相)을 정했단 의미다.
이 문필은 산으로 국한되지 않는다. 붓을 닮은 바위에도 적용된다. 전남 장성엔 김인후 선생을 배향한 필암서원이 있다. 이 서원과 좀 떨어진 마을, 선생이 태어난 마을 어귀에 필암(筆巖)이란 바위가 있다. 속칭 ‘붓 바위’ 다. 바위는 지기(地氣)가 강하게 응결된 것이다. 그래서 반응 또한 신속하고 강하다. 서원을 드나들던 학동들은 이 필암을 보면서 어사화를 꿈꾸었을 것이다. 부귀가 보장된 미래를 말이다.
공부 얘기가 나왔으니 지나가는 한담 한가지. 명리학(命理學)에선 인수(印綬 : 나를 강하게 해주는 오행)를 학문으로 본다. 인수를 억누르는 오행을 재(財)라 한다. 예컨대 나 자신이 나무라면 인수는 물이 되고, 재는 흙이 된다. 사람의 운(運)은 10년마다 바뀐다.
10대 때의 운은 인수운이 중요하다. 그래야 공부에 흥미를 느낀다. 재운부터 오면 공부는 뒷전이다. 재는 남자에 있어 여자와 돈을 의미한다. 이쪽으로 눈이 돌린다는 얘기다. 재운은 홀로서기가 필요한 30, 40대에 닥쳐야 유리하다. 늘그막에 향학열에 불타는 이들이나, 공부를 중단했다가 다시 시작하는 이들의 운을 보면 십중팔구가 이 인수운이다.
어쨌거나 이 문필봉에 대한 기대는 과거에서나 현재에서나 변하지 않는 동경의 대상인 것은 확실한 모양이다. 따지고 보면 요즘엔 ‘붓’ 만 중시한다고 할 수도 있겠다. 학벌사회가 빚어놓은 병폐다.
예전엔 그래도 필봉 주위에 물도 있었고, 사람의 정도 있었다. 자꾸만 메말라가는 10대들의 정서를 보며 문득 생각키운 단어들이다. 그래도 한번 빼든 칼, 썩은 무라도 잘라야 되지 않겠나. 수험생들의 좋은 성적을 기대해 본다.
출처 : 風따라 水따라 - blog.naver.com/chonjjj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