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은 나무, 여름은 불의 계절이다. 천지가 조열(燥熱)하다. 따라서 물이 필요하다. 반면 가을은 쇠요, 겨울은 물이다. 이번엔 천지가 한습(寒濕)하므로 불이 필요하다. 사주학(四柱學)에서 조후(調候)로 보는 기본 감정법이다. 사주(四柱)도 중화, 즉 목, 화, 토, 금, 수 오행(五行)의 조화가 필요하단 얘기다.
물론 음양이나 오행상 치우친 사주도 있다. 이런 사주는 편중된 삶을 산다고 본다. 삶의 기복이 심한, 즉 극에서 극으로 오고간다. 인체도 자연의 일부라 생각하면 당연한 귀결점인지 모른다.
풍수에서의 산과 물도 마찬가지다. 산은 불의 기(火氣)를 분출시키고, 이를 중화시켜주는 게 물(水氣)이다. 따라서 들이 많은 지역은 산을, 산 지역은 물을 중요시한다. 봄엔 만물이 물을 필요로 한다. 대지가 메마르다. 그래서 산불도 많이 발생하는지 모르겠다.
풍수에선 한번 불이 났던 터엔 재건축을 하지 않는다. 기존 건물 터를 피해 앞으로 당기거나 뒤로 물려서 건축한다. 건물과 함께 눈에 보이지 않는 지기(地氣)도 불에 탔다고 보기 때문이다. 경기(驚氣)를 일으킨 땅, 다시 말해 죽은 땅이다.
죽은 땅엔 생기(生氣)가 돌지 않는다. 사기(邪氣)만이 올라올 뿐이다. 이런 땅은 땅의 기가 다시 살아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기간이 길면 길수록 좋다. 그럴 여유가 없다면 다른 지역에서 ‘건강한 흙’ 을 가져와야 한다. 불탄 자리를 파내고 새 흙으로 메워야 한다. 이렇게 한 다음에야 건축이 가능하다. 그것도 석자이상 지표면을 파내야 한다니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이런 수고도 차선책에 불과하다. 아무리 좋은 땅의 흙을 가져온들 원래 그 땅이 가졌던 기에 견줄 수 있겠나. 토종의 음식이 우리 몸에도 좋다고 하지 않는가.
예컨대, 도자기를 구웠던 도요지(陶窯地)에 집을 지으면 부귀(富貴)는 공염불이다. 아무리 명당혈처에 자리잡았다고 해도 말이다. 오랜 세월 화기만이 가득했던 땅, 그 화상(火傷)의 아픔이 치유된 후에야 땅으로의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다는 얘기다. 또한 주변의 생기 있는 흙이 그릇의 재료로 대부분 사용됐기 때문에 땅속은 더욱 허(虛)하다. 명나라 이여송은 조선의 기맥(氣脈)을 끊기 위해 끓는 쇳물을 주요 혈처에다 부었다고 하지 않던가.
과거에 묘지나 도살장 등의 용도로 사용됐던 땅도 피해야 한다. 원귀(寃鬼)가 설쳐 잠을 설치고, 살기(殺氣)가 치솟아 부귀는 고사하고 건강부터 상한다. 이러한 곳도 지표면을 파내거나 오랜 세월이 지난 후 지기가 정화된 후에 집을 세워야 한다. 요즘 같은 이사철엔 염두에 둬야 할 사안이다.
얼마 전 강원지방에 산불재난이 있었다. 주춧돌만 남은 터를 넋잃고 바라보던 촌로(村老), 씨감자마저 잃은 아낙네의 긴 한숨소리…. 그 슬픔, 그 절망감을 당사자가 아닌 우리들이야 어떻게 느낄 수 있으랴. 수많은 문화유산도 연기 속으로 사라졌다. 그 와중에 문화재 관리 수장되시는 분의 ‘복원하면 그만’ 이란 식의 무책임한 발언이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고….
봄은 오행으로 청색이요, 겨울은 흑색이다. 봄의 푸르름을 더해야 할 수목이 겨울의 검은 색으로 되돌아갔다. 어디 땅인들 화마(火魔)에 온전했으랴. 온 몸이 화상 투성이일 게다. 그 상처가 아물려면 또 얼마만큼의 세월이 흘러야 할까.
다시 한번 이재민들에 머리 숙여 위로의 마음을 전한다.
출처 : 風따라 水따라 - blog.naver.com/chonjjj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