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형
어릴 적 불렀던 교가(校歌)를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아니면 군(軍)생활 중의 사단가나 중대가, 또 아니면 현재 살고 있는 지역의 시․군가(市․郡歌)를 되새겨 보시던가…. 아마 열에 일곱 정도는 가사에 ‘ㅇㅇ산 기상, ㅇㅇ강 정기’등이 나타나고, 그 정기를 이어받아 ‘복지의 땅’이 된다는 내용이 있을 겁니다. 제가 살고 있는 대구의 ‘시민의 노래’는 이렇게 시작됩니다. ‘팔공산 줄기마다 힘이 맺히고 낙동강 구비 돌아 보담아 주는….’
풍수이론에 근거해서 가사를 지었다는 건 아닙니다. 그만큼 우리 민족은 자연을 존중하고, 자연에 동화되어, 자연의 순리(順理)대로 살아 왔다고 볼 수 있겠지요. 때론 친구처럼 다정하게, 때론 스승처럼 경외시 하면서 말입니다.
여기에 풍수이론을 붙여 보겠습니다. 풍수도 이에 준해서 생각하면 된다는 얘기지요. 이 ‘복지의 땅’에 부모의 시신을 모시거나 주택을 지으면 그 정기를 받게 되겠지요. 그러면 산사람은 건강한 삶을 누리게 될 터이고, 묻힌 사람도 평안한 영면을 취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철저하게 자연과 인간의 합일(合一)입니다. 제가 떼를 쓰는 것일까요?
풍수에서는 땅을 어머니로 봅니다. ‘지모사상(地母思想)’이지요. 우리나라 자생풍수의 비조라 할 수 있는 도선국사는 풍수를 비보(裨補)를 위한 목적으로 이용했다고 합니다. 즉 우리 지세 중에서 허(虛)한 곳을 찾아 그 곳에 절을 지어 그 허한 기운을 북돋웠다는 거지요. 자연의 병든 부분을 치유하는 하나의 방법으로 이용한 것입니다. 달리 말하면 허약한 어머니를 치료한 셈이지요.
나쁜 땅에만 세우다 보니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 절이 없습니다. 지금껏 남아 있는 명산의 대찰(大刹)과는 달리 말입니다.
풍수도 대승, 소승으로 나눌 수 있다면 ‘대승풍수(大乘風水)’쯤으로 이름지어도 가능하지 않을까요?. 이 ‘큰 사상’이 개인의 안녕(安寧)만을 비는 ‘소승풍수(小乘風水)’로 변질 됐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풍수사상은 발복(發福)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근본을 이루는 이론이니까요. 지나치게 발복만을 추구하는 이들이 문제입니다. 돈만을 밝히는 일부 지관(地官)들도 한몫 거들겠지요.
‘말많은’ 묘터 잡기를 보지요. 음택(陰宅), 즉 ‘죽은 자들의 집’ 입니다. 발복을 논하기 전에 명당(明堂)에 부모님을 모셔 평안케 하고자 하는 마음, 즉 효도의 연장선상으로 이해하면 적합하겠습니다. 하지만 아시다시피 많은 부분이 왜곡, 변질되어 있습니다. 효도는 내팽개치고 오직 자신들만의 명예와 부(富)를 추구하는 ‘얄팍한’ 인간들에 의해서 말입니다.
반면 집터 고르기는 어떨까요?
양택(陽宅)입니다. 즉 ‘산자들의 집’이지요. 기후나 지질 등 건강한 삶을 위한 최적의 자연조건과 도적의 침입 등에 적절히 대비할 수 있는 최상의 지역을 구하는 것입니다. 그 땅에서 개인의 행복을 추구하고 크게는 한 나라의 운명까지 걸었던 것이지요. 따라서 양택에 관한한 풍수는 요즘 바람이 일고 있는 ‘웰빙’ 과도 맞아떨어진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요? 환경 친화적인 삶 말입니다. 적어도 ‘터잡기’ 에 있어서는 이론이 없다고 봅니다.
조 형
참다운 의미의 풍수는 자연과 인간의 합일점을 찾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순리에 따른 삶을 추구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왜곡된 사회, 불안한 사회일수록 풍수가 더 잘 팔린다고 하더군요. 슬픈 현실입니다. 우리네 속된 마음부터 조금씩 비우면 어떨까요?
하찮은 넋두리로 인사를 대신합니다.
출처 : 風따라 水따라 - blog.naver.com/chonjjj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