좁은 골짜기에 대궐 같은 집. 태풍이 온다면 금방 쓸려내려 갈 듯한 곳. 길쭉한 골짜기 따라 건물은 또 왜 그리 많이 배치를 했는지…. 본 채에다 창고, 축사에 정자까지 숨쉴 공간조차 없을 듯하다. 그것도 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백호(白虎)자락의 뒷덜미, 도로아래에 떡 하니 버티고 섰다.
최대의 장점은 아침, 저녁으로 번갈아 불어오는 산바람, 강바람이다. 요즘 같은 불볕더위엔 더 말해 무엇하리. 얻어먹는 한 바가지의 물맛은 또 얼마나 기가 막히는지…. 하지만 다시 한번 생각해보면 섬뜩한 느낌마저 든다. 풍수이론으론 영 아닌 땅이란 얘기다. 오다가다 들르는 내 아는 이의 전원주택 풍경이다.
풍수는 자연과 인간의 조화다. 인간은 자연을 정복하려해선 안된다. 자연에 맞춰 살아야 한다. 땅이 좁다면 작은 집을 지어야 한다. 좁은 땅에서의 큰집은 지기(地氣)가 감당치 못한다. 산소에서의 호화 봉분이다. 보기에도 불안하다. 사상누각(沙上樓閣)처럼 기초가 부실해 뵌다. 발복(發福)은커녕 화(禍)가 우려된다.
우리나라의 산세는 어머니의 품같이 포근하다. 드세지 않은 기운에 절로 안기고 싶은 산이다. 열차를 타고 가다 밖을 한번 보라. 올망졸망한 산봉우리들이 마치 우리 어머니들의 가슴과 같다. 이런 산세에 알맞은 건물의 형태는 둥그스레해야 한다. 그래야 자연에 보다 다가가려는 인간의 자세가 된다.
예전 우리의 집들이 그러했다. 둥근 산을 닮은 초가집이 그러하며, 기와집의 우아한 곡선미도 물 흐르듯 흐르는 산세를 닮았다.
그런데 요즘 집들은 대개가 유럽풍이다. 뾰족지붕에 층진 지붕, 한껏 멋을 부린다. 어떤 집은 아예 장난감 집처럼 꾸민 곳도 있다. 말 그대로 ‘예쁜 집’이다. 그러나 예쁨과 실용은 영 매치가 되지 않는 단어다. 즉 주변 산세를 무시한 건물들이란 얘기다.
이런 집은 기의 원활한 흐름을 장담하지 못한다. 원만한 기운과 뾰족한 기운과의 상충(相沖)이다. 특히 뾰족함은 투쟁이요, 다툼이요, 구설수다.
야트막한 야산에 높게 올린 건물은 또 어떤가. 주변의 산세가 낮으면 집도 낮아야 한다. 높으면 바람에 노출된다. 고층빌딩에 거주하는 것과 같은 효과다. 사방으로 들이치는 바람을 막을 수가 없다.
생기는 산들바람을 탄다 했다. 센바람엔 흩어진다. 생기가 흩어진 곳엔 건강도 날아가고 득재(得財)도 공염불이다.
주변이 높은 데 지나치게 낮은 집은 기를 펴지 못한다. 주변의 산세에 주눅이 든다. 이럴 땐 적당히 높여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땅이 넓은데 지나치게 작은 집도 발전이 없다. 속 좁은 인간이 나올 확률이 높다. 또한 산이 멀리 있다면 낮은 건물이 좋고, 높은 지대에서도 낮은 건물이 좋다.
이런 예가 적절할지 모르겠다. 코가 낮아 고민하던 어떤 이가 높이는 수술을 생각했더란다. 코가 크면 부자가 된다는 얘기에 솔깃해서 말이다. 그런데…, 코만 높인다고 부자가 될 수 있을까. 천만의 말씀이다. 우선 얼굴 형태와 코가 서로가 상생(相生)되어야 한다. 코만 높으면 자존심만 세어질 뿐이고, 정작 중요한 돈은 물 건너간다. 야윈 코는 재물 복이 없다. 더욱이 코는 토성(土星)에 속한다. 토성은 흙이다. 뾰족한 코가 흙을 파헤치는 꼴이다. 덕보려다 해만 부른다.
세상에 독불장군은 없다. ‘닮음과 상생의 미학’, 참으로 아름다운 말이다.
출처 : 風따라 水따라 - blog.naver.com/chonjjj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