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의 문짝 두 개와 양쪽 벽은 모름지기 크기가 같아야 한다, 왼쪽 문짝이 크면 주인이 아내를 바꾸게 되고, 오른쪽 문짝이 크면 자식이 고아가 되고 아내가 과부가 된다.’ ‘집안에 창과 문 세 개가 서로 마주보게 해선 안된다.’ ‘북동쪽에 문을 내면 괴이한 일이 자주 일어난다.’ 조선후기 실학자 서유구 선생의 ‘임원경제지’에 실린 문과 관련된 내용이다.
창문은 채광이나 공기의 순환, 조망을 목적으로 하는 공간이다. 요즘엔 이 중 조망이 우선시 된다. 따라서 클수록 좋다고 본다. 하긴 보기에도 시원하니 좋기도 할게다.
풍수에서 보는 기(氣)는 크게 지기(地氣)와 천기(天氣)로 나뉜다. 햇볕과 바람은 천기가 된다. 이 천기를 집안으로 받아들이는 공간이 창문이고, 현관이다. 즉 천기의 출입구가 된다는 얘기다. 창문이 양택에서 중요시되는 이유다. 따라서 조망보다 채광이나 바람이 우선돼야 한다. 아파트가 주 주거공간이 되고 있는 도심에선 더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다.
창문은 바람이 불어오는 쪽을 향해야 한다. 강변을 향한 창문이 좋은 예가 된다. 이런 집은 바람에 의해 실내의 압력이 높아진다. 압력이 높은 곳에 생기가 모인다 했다.
이렇게 보면 양쪽으로 창문이 난 공간은 좋지 못한 게 된다. 생기가 순환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들어온 바람이 맞은 편 문으로 휑하니 빠진다. 사방으로 문을 내는 경우도 있다. 보기엔 좋을지 모르지만 피하라고 말하고 싶은 대목이다. 심리가 불안해 진다.
도로변과 같이 바람이 스쳐지나가는 곳에다 창문을 내어서도 안된다. 이런 곳은 방안의 기운을 되레 앗아간다.
두 벽면에 설치한 ‘코너 창문’도 득보다 실이 크다. 모서리에 설치한 창문으론 진동이나 바람소리가 불안정해진다. 창문은 모름지기 벽면 중앙에 설치해야 한다.
형태론 수직형과 수평형으로 나뉜다. 수직형은 오행으로 따지면 목(木)이 된다. 나무가 뻗어나가는 것처럼 진취적 기상을 키워준다. 수평형은 수(水)가 된다. 활동적이라기보다는 차분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천방지축인 사람에겐 수평형 창문이 어울린다. 정사각형은 토(土)다. 흙은 중앙이요, 포용력을 의미한다. 수평형보다는 활동적이 되고, 수직형보다는 안정감을 줄 수가 있다. 피하고 볼 것은 삼각형이다. 뾰족함은 화(火)다. 불이 타오르듯이 정열적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면에 상처, 구설수를 동반한다.
창문이 너무 크면 방안의 기를 뺏아간다 했다. 그 기준은 벽면의 절반이다. 생기가 새나가면 거주하는 이들의 심리적 안정은 공염불이 된다. 특히 안방은 그 집안의 으뜸 공간이다. 안방의 큰 창문은 가장의 심리적 불안이요, 밝은 햇볕아래 재물까지 도망간다. 약간은 어둑한 곳에 돈이 모인다 했다.
방향도 중요한 요소다. 우리나라의 경우 겨울엔 북서풍이 매섭다. 북서쪽으론 가급적이면 작은 창문이 좋다.
남서쪽은 저녁햇살이 강하다. 비추는 시간도 길다. 서쪽의 기운은 숙살지기(肅殺之氣)라 했다. 모든 것을 갈무리하는 기운이다. 되도록 이면 작게 내거나 블라인드로 가려야 한다.
동쪽이나 남쪽, 남동쪽의 바람과 햇볕은 생기가 넘친다. 이 방향이 창문을 내는 주된 방향이라 하겠다. 구태여 풍수를 따질 필요가 없겠다.
창문의 주 기능중 하나가 채광이다. 햇볕을 받아들이는 기능이다. 창문이 너무 많으면 탈이 나듯, 햇볕도 너무 과하게 쪼이면 탈이 나는가 보다. 요즘 ‘햇볕정책’으로 말들이 많다. ‘잘 했니, 못했니’ 국론의 양분이다. 세계가 요동친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 했다. 너무 과하면 모자람만 못하다 했다.
출처 : 風따라 水따라 - blog.naver.com/chonjjj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