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
폭염이 끝난 뒤에 느끼는 가을 바람이 소슬합니다. 동네 공원의 잔디도 말끔히 단장되었네요. 한 해를 마무리하는 행사인 것 같아 더욱 쓸쓸합니다.
종중(宗中) 벌초 날이 다가오는군요. 매년 행하는 행사지만 벌써 걱정이 앞섭니다. 왜냐고요? 형도 알다시피 벌초가 그냥 벌초가 아니니 말이지요. ‘벌초산행’인 셈이니까요.
형도 알다시피 우리들 증조부 산소는 산꼭대기에 있지요. 일제때 조성된 공동묘지 말입니다. 길도 없는 수풀 속을 오르다보면 길을 잃기 십상입니다. 몇 년 전엔 길을 잘못들어 두어시간 헤맨 적도 있지요. 나 아니면 아무도 모르는 산소이기에 게으름을 필수도 없습니다.
형
요즘 윤달 벌초에 관해 말들이 많은 모양입니다. ‘벌초는 좋은 일이라 윤달엔 하지 않는다’라는 말이지요. 어디에 근거를 둔 말인지 모르겠습니다. 벌초대행사들도 작년보다 20%정도 신청이 줄었다는 기사도 보입니다.
하지만 어느 집안에선 ‘집안에 일이 꼬일 때마다 조부(祖父)의 묘에 벌초를 한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와혈(窩穴)’에 쓴 명당 묘인데, 벌초를 하므로써 지기(地氣)를 자극한다 하지요. 벌초를 끝내고 나면 일이 곧잘 풀린다 하니 다행입니다.
또 한가지를 볼까요. 예전엔 ‘명당 찾아 삼천리’였기에, 좋은 혈처(穴處)를 구해 무덤을 썼습니다. 그래서 한 집안의 조상 묘도 이산 중턱에 할아버지 산소, 저산 꼭대기에 할머니 산소 하는 식으로 흩어져 있습니다. 요즘 후손들 입장서 보면 참으로 ‘고역’입니다. ‘잘되면 자기 탓’이니까요. 그나마 외지의 후손들은 찾아오지도 않습니다. 오직 근방에 사는 이들만의 행사이기 때문에 짜증도 납니다.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돌아가신 선조님들 집인데 말입니다. 우리까지 ‘조상 탓’이라는 슬픈 말은 말아야 하겠지요.
증조부 산소 옆에 작은 묘가 한기 있습니다. 3, 4년 전만 하더라도 말끔히 벌초가 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재작년에 갔을 땐 억새가 무성하더군요. 아직 후손들이 오지 않았나 여겨 별 생각없이 내려왔습니다. 하지만 작년엔 봉분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억새가 자랐더군요. ‘묵은 묘’전락 직전이었습니다. 소위 ‘골총’이라 하지요. 무연분묘 말입니다.
아무도 돌보지 않는 무연분묘가 나날이 늘어갑니다. 전국엔 2천만 여기의 묘가 있다 합니다. 이중 70%가 무연분묘라지요. 세대가 내려갈수록 찾는 이가 줄어들어 더욱 더 늘어나겠지요. 요즘엔 아예 선산(先山)을 마련해 집단 이장하기도 합니다. ‘골총의 짐’을 벗기 위한 후손들의 방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보다는 조상님들을 가까이 모셔두고 자주 찾아뵙는 기회로 삼았으면 좋겠습니다. 이에 앞서 편안한 거처를 억지로 옮겨야 하는 조상의 심정을 간과하지 않을까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구묘(舊墓)가 명당이었다면 동티까지 무시 못할 판이기에 우려가 현실로 나타납니다.
형
올해도 페트병에 얼음물 넣어 형은 ‘굴방우산’으로, 난 ‘공동산’으로 가야겠지요. 그러다 보니 생각이 나네요. 동네 주위 모든 산에서 울려대는 예초기 소리, 그 우렁대는 소리에 조상님들이 ‘시끄럽다’하지 않을지 모르겠습니다, 허허….
내려오는 길에 산국(山菊)의 향기라도 맡게 된다면 더욱 기쁜 일이겠지요. 희망을 가지고 ‘벌초산행’갑시다.
출처 : 風따라 水따라 - blog.naver.com/chonjjj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