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주가이드#1

희기(喜忌)

Mr.대산 | 2017-10-03 08:08:05

조회수 : 1,263

한번쯤은 희기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고 싶었다.
喜(기쁠희) 좋은 것은 무엇인가? 忌(꺼릴기) 나쁜 것은 무엇인가?
 
좋고 나쁨이라는 일반적인 용어가 명리에서는 희기로 구분되는 모양이다.
개인적으로 좋고 나쁨이라는 것은 개개인의 취향이나 목적에 따라 다름이라 생각한다.
 
가령 좋다, 나쁘다라는 것을 역학자 개인적 잣대를 기준으로 분별한다면 이처럼 우낀일도 없을 것이다.
그럼 손님이나 고객의 관점에 따라 좋고 나쁨을 분별하는 것이 맞다고 한다면 이도 모호하긴 하나보다.
 
그럼 일반적인 사회에 통념이나 관습을 기준하여 좋고 나쁨이 결정되는 것이 옳은가 싶다.
지금이 춘추전국시대도 아니고 지금은 바야흐로 무한경쟁의 2010년이라는 시대에 살고 있다.
 
사회의 일반적 관점으로 좋고 나쁘고가 결정될 수 있는 시대인가를 살펴야 한다.
전체적이고 대중적인 것이 옳다고 하여 한 개인의 운명을 거기에 맞추어 희기를 결정할수는 없다.
 
물질문화가 중시되는 시절에 경제적인 관점을 묻고자한다면 매출의 높고 낮음이 희기의 관점이다.
세상을 버리고 조용히 낙향하고자 하는 이의 희는 낙향이고 나쁨은 일하여 돈을 버는 것이다.
 
어제 환갑을 앞둔 한가정의 가장이 찾아 오셨다.
60평생 열심히 돈을 벌어 처자식을 먹여살리거라 집안에 소홀하게 살수 밖에 없었던 가장이
이제는 돈도 싫고, 가정도 싫고, 조용히 시골에 내려가 땅과 함께 노후를 마무리 했으면 한다고 한다.
 
아마도 집안에서 처나 자식에게 그동안의 소홀에 대하여 서운한 말을 듣고 꽤나 낙심했던 모양이다.
수고한 것은 돈벌어다 줘서 처자식이 30년 넘게 좋은 환경에서 남부럽지 않게 문화생활을 한 것이다.
잘못한 것은 돈만 벌어다 줬지 인간적인 정서나 교감은 전달되지 않았으니 나이들어 개밥에 도토리다.
 
이것이 현실적인 우리네 60대 가장이 느낄수 있는 체감온도라고 한다면 이분의 희기는 무엇인가?
올해도 예전과 다르지 않게 새벽부터 잠자기전까지 일하여 경제적인 성과를 이루는 것이 좋은 것인가?
아니면 올해는 경제적으로는 다소 손해를 봐도 늦은 감은 있지만 가족과 유대관계를 쌓는 것이 희인가?
 
가령 이럴때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경제적인 것도 만족스럽고, 가족과 유대관계도 만족스럽고, 자기가 원하는 것을 하면 좋겠다.
우아 욕심도 과하셔라, 이것은 마치 격에 따른 상신이 유력하여 안정감을 이룬 사주를 말하는 것이다.
 
대개의 사람은,,,
우리가 살필 수 있는 대부분의 사람은 이런 사주팔자는 흔하지 않다는 것이다.
 
하나를 얻으면 하나는 포기할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한 사람이다.
경제적인 것은 충족될 수 있으나 가정적으로는 불미하다거나,,,
 
가정적으로 편안하면 경제적으로 곤궁하거나 자신이 하고싶은 것을 할 수 없거나 하고 살아가야 한다.
또 어떤 분은 자신이 왜 회사를 다녀야 하고 사회속에 일원으로 그 놈에 돈 몇푼 벌자고 다니며,
아까운 시간을 보내는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닌가 의아심을 가지고 찾아온 이도 있다.
 
개인적으로 봐서는 맞는 소리다.
사회적인 관점에서는 정체성이 불량하다면 거시기하고 바르지 못한 의식을 가진 분들이다.
 
그러나 겉으로는 평범하게 아무렇지도 않은듯 사회생활을 해야 하고
속으로는 돈때문에 진로나 적성에도 맞지 않는 일을 할수 밖에 없는 것이 현시대가 아닌가 싶다.
 
한국사회가 직업에 대한 만족도가 높지 않고 무한경쟁에서 결국 물질을 따르고 구하다 보니
대개 일면은 포기하고 현실에 적응하고 살수 밖에 없는 것이 이시대의 현주소가 아닌가 싶다.
 
여튼 인간사는 격과 격에 따른 상신의 건왕함으로 이어지고 함께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대개 격도 그러하고 상신도 이지러지며 비틀려지고 타협하고 합리화하며 살아갈 수 밖에 없다.
 
이때부터 희기는 바로 그때 그때 다름으로 나타나니 점쟁이 말이 이현령 비현령하는 것이다.
우선 당장 돈이 아쉬운 사람에게 기쁨은 돈을 버는 것이 희가 되고 돈을 벌지 못하면 나쁨인 것이다.
 
돈은 충족되지만 인간관계가 나빠지며 사람으로 인한 실패와 실망이 따르면 이것은 나쁨인 것이다.
돈을 벌기 위해서는 인간관계가 나빠져야 한다. 인간관계가 좋은 사람은 돈은 벌기가 힘든 것이다.
 
완전해질 수는 없다. 뭔가 고장나고 시원치가 않아야 한다.
돈은 벌지만 스스로 만족하지 못하는데 그것이 과연 행복이라고 해야 할지 모호하다.
 
세상사속에 착한 분들은, 법없이도 살수 있는 분들은 대개 가난한 분들이 많다.
여인의 운명에서 지지리 남편복도 없는이가 자식보고 산다는 것은 안위하기 위한 방편인 것이다.
 
결국 희기에 대한 것이 매년 많은 부분 좋은 것도 있고 나쁜 것도 겸하며 살아간다.
이것을 구태여 설명하자니 작년보다는 좋다 나쁘다는 상대적인 잣대로 평가하는 것도 방편일 뿐이다.
 
희기는 애매한 것이 아니라 분명한 것이다.
말하는 역술인이나 듣는 손님이 서로 마음을 열고 듣고자 할때 이해관계를 가질 수 있다.
 
싸잡아 작년은 나쁘고 올해는 좋다는 말을 듣지 않기 위해서는 질의에 대한 문답이 숙제인 것이다.
숙제를 소홀히 하고 답을 구하고자 하는 것이 이미 희기를 불분명하게 받아들이고자 한 것이다.
 
희기는 명쾌하려면 문점하는 이유가 분명해야 답도 확실해지는 것이다.
희기는 결국 개인적인 목적에 있는 것이지 사회의 일반적 통념에 준하지 않는다.
더구나 역학자의 잣대로 희기를 가름하는 것만큼 무모한 것은 없는 것이다.
 
올해 운세는 경인년운세다.
경인년 운세의 희기는 일단 긍정적으로 모두에게 일할 기회를 주고자 한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님도 올해 신년인사에 일거리 창출에 전력을 다할 것이라 약속하셨다.
그러나 결과론으로 보면 일할 기회는 많이 늘어 날것이나 정작 노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스스로 변화하지 않으면 시대에 부흥하지 못하는 시절이다.
스스로 초심을 가지고 세상에 부흥하고 함께하려고 해야 일거리도 구할 수 있다.
 
스스로 시대에 변화에 부흥한다는 것이 말로는 쉬운데 실제로 이처럼 어려운 것도 없다.
그동안 내가 어떤 사람인데...타성에 젖어서...나는 진보적인 사람인데...(혼자만 그러하다)
과거를 들먹이며 현실에 응대하려는 구세대적인 의지는 도태의 대상이 된다.
 
내 실력이면 최고인데 더이상 내가 뭘 더해라는 의식은 자기만족에 불과하다.
내 실력은 내가 인정하는 것이 아니고 세상과 타인이 판정해주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타인이 무식하다면 인정해야 하는 때가 온 것이다.
세상이 원하는 것에 발을 맞추지 않고 자기식에 맞추는 사람은 백수가 되는 것이다.
 
초심이라는 것은 다시 새로운 것에 부합하려는 자기 의지인 것이다.
이것은 그동안에 쌓아놓은 아집과 교만과, 자존심을 버려야 하는 때이기도 하다.
 
벤츠타던 사람도 상황에 따라 티코를 탈수도 있고 더 못한 것도 할 수 있다 여겨야 한다.
내가 정한 기준이라는 것이 알량한 자존심과 태만이라는 것이 타성이라는 말이다.
 
쉽지 않은 경인년이라는 시간적 게임에 승리하고자 한다면 이글을 읽는 분이라도
초심을 갖기를 두손을 모아본다. 초심을 갖는다면 잘 해 낼것이라 믿는다.
 
무엇을 버려야 할지, 무엇을 가지고 가야 할지 피난민이
제일 먼저 보따리 쌀때 어떤 것을 챙겨야 할지 모르면 물어봐야 한다.
 
피난때 보따리 챙길때 제일먼저 뭘 챙기나요 네이버에 물어봐도 친절하게 답이있고,
다음에 물어봐도 지식인들이 넘쳐나는 세상이다. 잘 알아서 인연이 이어갈 것이다.
 
경제가 하루가 모르게 발전할 것인데 경제는 경제전문가한데 물어봐야 한다.
재테크에 관련한 전문가도 열손가락으로는 헤아릴수 없을 만큼 많은 분야가 있다.
 
부동산도 있고, 금융도 있고, 주식도 있고, 펀드도 있고, 자산관리를 어찌해야,
경제가 발전하는데 나도 함께 발전하는지 자산관리사에게 물어보면 아는 것이다.
 
그는 보이는데 자신은 보이지 않는 이유는 모르기 때문이다.
경제적인 말이 나왔으니 한마디 더하면 우선순위라는 것이 있는 모양이다.
 
대개 잘사는 사람과 못사는 사람의 차이는 우선순위에 대한 차이점이다.
무엇이 더 중요하고 무엇이 덜 중요한지를 몰라서
먼저해야 할 것과 나중에 해야 할것을 구분하지 못해서 차이가 난다.
 
서울에서 잘사는 사람은 100키로로 달려가는데 못사는 사람은 50키로로 달려간다.
이유는 바둑으로는 수순을 몰라서 이고 똑 같이 주어진 시간에 효과적으로 보내지 못해서 이다.
 
시간이 도둑이다. 시간이 도둑놈인 것이다. 경인년에 시간도둑놈한데 당하지 않으려면
시간을 아껴야 하는데 어찌 아껴야 하는지도 모른다면 전문가에게 물어봐야 하는 것이다.
 
각방면에 각부분에 전문가가 다양하게 준비하고 있다.
무엇으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지방분들의 의지가 틀린 것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방분들은 서울의 경제적 가치를 따라오기 쉽지 않은 것이다.
시간이라는 것은 소중히 여기면서 경인년 운세는 왔으니 대응한다면 이미 늦은 것이다.
 
시간에 인색하다는 것은 시간을 정복하는 것에는 효율성이다.
무인성한 사람은 시간을 효과적으로 다루기에는 다소 역부족이긴 하다.
 
이런 글을 쓰면 무인성 한분들 다들 열받아서 자포자기할까 싶어 함부리 역학논리를 대입하기도 그러하다.
모르는 것을 묻는 것은 부끄럼이 아닌데 정작 무엇이 부끄럽고 무엇이 당당한지 모르니 안타깝다.
 
물어보고 답하는 것이 희기이고 좋고 나쁨인 것이다.
좋은 것은 지킬줄 알고 나쁜것은 준비하는 자세야 말로 진정한 희기가 아닌가 싶다.
 
적천수에 쇠자는 깔끔하게 멸되는 것이 좋은데 쇠자가 운로에서 살아나면 걱정스러운 것이다.
쇠자가 살아나면 대개 근심만 늘어나는 경우가 많다. 만약 포기하면 기쁨인데 쉽지는 않을 것이다.
 
육체의 아픔은 의사의 진단과 처방으로 어찌되었든 치료에 적극적인 사회가 되었다.
정신의 아픔은 시간이 약이라고 하는 구세대적인 사고방식은 위험천만한 사회가 되었다.
 
결국 찾고 구하는 자만이 스스로에 대한 운명에 주인이 아닌가 싶다.
온라인 문화에서 각종 운세라는 코너가 오락이라는 카테고리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현실에서 심심풀이 오락정도 밖에 되지 않는 운세가 역학계의 현주소인 것이다.
부인하고 싶지만 현실은 냉정한 것이니 인정할 수 밖에 없는 것이 경인년의 동정이다.
 
역학을 하는 분이나 찾는 고객이나 의식적인 전환이 서로를 변화하고 발전하게 할 것이다.
운이라는 것은 요행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필연을 이끄는 것이 주인의식이 아닌가 싶다.
 
여튼 점쟁이가 이런 글을 쓰는 것도 이미 편협된 시각이니 허튼소리는 짧을 수록 명쾌한 것이다.
경인년 시간의 순환고리에서 어떤 경쟁력을 준비해야 하는지 함께 궁리해본 점쟁이의 넋두리일 뿐이다.
 
어제는 아멘을 했으니 오늘은 나무아미타불을 하고 싶다.
건대 점쟁이는 종교도 필요에 의해 왔다갔다 하니 사이비 종교인이라고 하면 그도 맞는 소리다.
 
종교는 마음에 유일신에 대한 믿음과 약속인 것이다.
믿음은 오늘 내가 존재하고 시간속에 살아가며 윤회와 영생을 믿기에 신앙과 철학을 부인하지 못하는 것이다.
 
몸과 마음이 함께 하는 것이 행복이다.
사람이 머리칼이 하늘로 쏟구친 것은 하늘의 양분을 흡수하고 살라는 것이니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며 만물의 영장으로 살라는 것이다.
 
식물이 땅에 뿌리하고 사는 것은 땅의 주인이 되라는 것이다.
작은부분 땅이 주는 영양분과 빛과 수분, 바람에 영향으로 성장하라는 것이다.
 
 
출처 : 희기에 대한 넋두리 - blog.daum.net/0246146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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