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주가이드#1

추절 갑을목의 용도

Mr.대산 | 2017-10-03 08:16:25

조회수 : 1,334

추절이라는 것은 계절로는 가을로 오행으로는 金을 말합니다. 거두고 숙살하는 기운으로 대개 표현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미 추절이라는 것은 춘하추동이라는 계절의 순환속에 하나의 계절이라는 전제에서 궁리가 시작되어진 것으로 보입니다.
 
삼라만상이라는 것은 하늘과 땅이라는 것으로 수화를 배속하고 본능적인 육체와 이성적인 사고를 다시금 금목으로 배속하여 추하추동인 사계의 중앙인 토로 배속하여 오행의 상생상극의 변화를 주도하려는 인간사의 지혜로움이 아닌가 싶습니다.
 
춘하추동이라는 것은 순환적인 의미로는 외형적으로 생장하고 내형적으로 수장을 하는 상생적인 성장과정과 상극적인 한난과 조습으로 서로 조화와 균형을 이루어 가기도 이지러지기도 하는데 중화되어 안정되기도 편중되어 태과하면 병약으로 억척스런 삶을 그려내기도 합니다.
 
이런 계절의 상대적인 순환에서 金은 수화로 하여금 이성적인 사고와 정신을 주관하여 가치를 부여하고 자기 만족을 추구하고 목도 마찬가지로 수화로 하여금 건강한 몸체를 이루어 함께 어우러져 활동을 할 수 있는 기본적인 체력으로 하여금 기쁨과 행복을 찾기도 합니다.
 
순환적인 의미에서 추절은 봄 여름의 생장단계에서 공을 들인 것이 가을 겨울의 수장단계로 넘어온 것이라 단순히 자연에서 채취하고 노획할 수 있는 춘절과는 달리 추절은 봄여름에 수고와 땀과 인간사의 노력이 포함되어 있으니 공짜가 없는 세상인 것입니다.
 
춘절은 대자연이 주는 풍성한 혜택이 건강한 체력만 있으면 먹고는사는데 지장이 없는 은혜로운 땅이고 인간미와 온정이 넘치는 곳이라면 추절은 사회에 물질문명이 만연한 도심과 같아 작전과 지혜로움으로 경쟁력이 있는 특별한 재주가 있어야 하는 냉정하고 비정한 세상과 같습니다.
 
마치 춘하절은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시골에 인심과 어우러져 함께하는 세상이라면 추동절은 비상한 재주를 가진 몇몇 개개인이 우상화되기도 특별한 재주가 없으면 도퇴되기도 하니 잘남과 못남과 성공과 실패가 교차되어 부자와 거지도 생겨나는 경쟁이 있는 도심과 같습니다.
 
춘하절생은 함께하고 어우러지기를 좋아하니 팀웍을 이루고 단체와 조직력을 가지고 분업화되어 나름대로 효율성을 두려고 한다면 추동절생은 각각 따로 따로 개인적인 능력을 극대화시키려 스타탄생을 만들기도 우상화시켜 개인이 여럿의 생계를 보장하기도 합니다.
 
최근 현대사회가 영화배우 욘사마 배용준은 상식적으로 봐도 저보다는 못생겼는데 일본의 열혈팬들로 하여금 그의 부가가치는 천문학적인 숫자이고 그들이 잘생겼다고 하니 상대적으로 저의 잘생긴 외모는 배용준의 못생긴 외모로 하여금 도퇴되어져 거적대기 둘치면 거지가 되기도 합니다.
 
갑신년부터 기축년에 이르는 서북방에 이르는 시절은 대체로 솔로가 대세라고 한다면 향후 경인년부터 을미년에 이르는 동남에 이르는 시절은 강호동이 나오는 일박이일이나 유재석이 나오는 무한도전, 소녀시대와 같이 떼거지로 어우러져 나오는 것이 대세가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표현하면 이미 일박이일이나 무한도전 소녀시대가 이미 북방운부터 뜨기 시작했다고 할 것인데 간지의 흐름을 보시고 지지에 향을 보시어 대세를 살펴 지난 시절과 최근에 이르는 문화적인 흥망성쇠와 국가의 이슈가 자로 잰듯이 숫자로 말하는 것과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여튼 하여튼 이러한 추절에 갑을목이라는 것은 특별한 이들과 어우러질 수 있는 매개가 되어주니 마치 의사와 환자와의 관계이고, 인기 연애인과 팬들과의 만남이고, 동방예의지국과 서방과의 만남이고, 최근에는 한국인과 동남아에 해외 근로자와의 만남이기도 합니다.
 
의사는 환자가 있어야 병원이 되고, 공장에 기계는 해외 근로자가 있어야 공장에 기계는 돌아가고, 팬이 없는 연애인은 스타가 될 수 없는 이치와 같이 서로 연결되어 졌을때 그 가치는 더욱 특별한 의미가 되어 서로 어색하지 않은 하나의 모양을 이루는 동서양의 만남입니다.
 
서쪽에 서방은 각자 각자 따로 따로 개인주의가 팽배하다면 동쪽에 동방은 같이 같이 우리 우리 더불어 함께하는 떼지어 무리를 이룹니다. 서양에 동양인이 가서 큰 냄비에 같이 밥을 비벼 한숱가락 퍼먹고 먹던 숟갈로 퍼주는 나눔으로 천성적인 인간미와 즐거움을 주기도 합니다.
 
동양에 서양인이 가서 큰 접시에 한입에 넣어도 되는 고기를 잘게 칼로 썰고 포크로 찍고 숟가락으로 스프를 퍼먹고 크리스탈 잔에 물먹으면 그놈에 뱃대지가 크리스탈처럼 맑아지는 것도 아닌데 한잔의 곡차로 배고픈 속을 달래는 것인지 하루종일 차한잔의 여유를 즐기며 특별함을 찾기도 합니다.
 
사람은 그져 바쁘고 분주하여 손발이 곰발바닥이 되도록 일하고 움직이며 힘쓰다보면 해가지면 넉다운되어 잠자고 해뜨면 삽자루 잡고 곡괭이들고 정신이 없는데 차한잔의 여유와 아름다움을 찾다보면 때로는 예술을 에로스로 착각하여 술, 담배 색을 찾기도 하니 등따시고 배따신 모양입니다.
 
추절에 목은 서양에 동방이 개입되었으니 서양인이 동방인처럼 양은 냄비에 밥비벼먹는 다는 것인데 결국 배가 고프면 어쩔 수 없이 본능적인 것을 해결할 수 밖에 없으니 칼과 포크를 대신하여 손가락으로 대신할 수도 있으니 본능에는 장사가 없다는 말이 사실인가 봅니다.
 
추절에 목은 마치 근본적인 생리현상을 해결하는데 필요한 서비스적인 것이라면 아직도 배가 덜 고픈자의 생각이고, 건강한 정신을 유지하기 위하여 건강한 신체를 조절하는 것이라면 너무 딱딱하고, 개인의 자존감을 유지하며 어우러져 함께해야만 해야 하는 경우입니다.
 
습이라는 것은 만물을 발생시키고 조라는 것은 만물을 소멸시키기도 합니다. 대개 목을 습이라 하고 금을 조라하는데 습도 한난이 개입되어야 발생이되고, 조도 한난이 개입되어야 소멸되기도 합니다. 습은 조가 개입되어야 성장이 원활하고 조는 습이 개입되어야 부서지지 않고 형체가 유지되기도 합니다.
 
추절은 조한 시절로 모양을 이루고 있는 형체가 세찬 비바람에 세월에 부스러져 모양을 흐트러지게 되는데 갑목에 습이 개입되면 겉 표면을 윤택하게 하여 부스러지거나 흐트러지지 않게 한다는 것은 자꾸 활용하고 쓰게되므로 호두알처럼 손에 익은 연장처럼 윤기나며 닳아지기도 합니다.
 
만약 을목이 개입되면 습이 지나쳐 단단하고 야무진 금을 다시금 무르게 하니 녹이 나고, 다시금 싹이 나기도 하니 형체가 변형되거나 이지러지는 현상과 같으니 인간관계에 있어서는 간격을 적절히 유지하려는 갑목보다는 금에 본질을 다시금 살리거나 되돌리려고 합니다.
 
이를 확대해석하면 추절에 갑목은 있는 그대로 유지 존속시켜 주니 고유의 성질이 변질되지 않는 가운데 상호공존하는 것이라면 을목은 고유의 성질을 일깨워 재생하거나 다시금 다른 용도로 변형시키려 자극하니 응용과 다양성이라는 변수를 다시금 제공하는 것과 같습니다.
 
갑목의 습은 한이라는 자수로 하여금 습기를 머금게 되고 난이라는 병화로 하여금 난습으로 발생하여 생장에 조건에 따라 나타나고 숨어지는 이치가 분명하여 때에 맞춰 성장하고 때가 되면 베어져 대들보로 활용되어지니 습을 유지하고 타를 습하게 하지는 않습니다.
 
갑목은 습을 유지하기는 하나 타를 습하게 하지는 않는데 비하여 을목은 습이 지나쳐 타를 습하게 하기도 합니다. 이는 때에 맞추지 않고 조건만 되면 어디서든 살아나려고 하는 것과 같아 스스로 기형적으로 성장하기도 타를 기형적으로 만들기도 합니다.
 
고로 갑목은 진퇴가 분명하여 춘하절에 성장하고, 추동절에는 휴면하거나 베어져 활용되고, 을목은 춘하절에 성장하고 추동절에도 조건만 되면 성장하려고 하고 베어져 잡풀로 썩어지기도 하니 그 변화는 한난으로 하여금 그때 그때 상황에 적응력이 뛰어난 기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추절에 갑목이 서먹서먹한 서방인을 자연스럽게 친화력을 가지고 어우러지게 한다면 추절에 을목은 서먹서먹한 서방인을 스스로 변화하게 하여 친화력을 가지도록 유도하려는 것과 같습니다. 마치 중매쟁이 갑목으로 하여금 어우러지는 것과 불심으로 교화시켜 어우러지게 하는 것과의 차이일 것입니다.
 
추절은 떨어지고, 떼어내고, 깍아내고, 털어내고, 솟가내고하는데 갑목은 적절히 붙이고 간격을 유지해서 줄을 맞추고 높이를 맞추고 넓이를 맞추는 것이라면 을목은 접착제처럼 껌처럼 스티커처럼, 신신파스마냥 바르고 붙어서 스스로 형체를 갖추게 합니다.
 
추절에 갑목은 어색한 분위기를 인도하는 안내양과 같아 낮선길을 더불어 함께하는 인물이라면 을목은 어색한 분위기를 알아서 찾게 해주는 네비게이션과 같습니다. 옛날에는 엘리베이터에 예쁜 아가씨가 동승해서 안내를 해주셨는데 요즘에는 알아서 버튼 누르고 가라고 합니다.
 
옛날에 버스에는 예쁜 안내양이 있어 가방만 들고 학교에 왔다리 갔다리하는 이유가 되었는데 요즘에는 녹음기에 자동으로 건대역이라고 얼렁 내리라 안내를 하니 정겨움이 사라지고 기계적으로 왔다리 갔다리 하기도 합니다. 그나마 아직까지는 비행기에는 예쁜 분들이 있다고 합니다.
 
먹거리가 풍성해지고 식당도 많아지면서 무엇을 먹어야 할지 어떻게 먹어야할지 모르니 서빙해주시는 분들의 도움으로 겨우 먹거리 해결방법을 알게되고, 일반적으로는 메뉴판 보고 고르면 알아서 뻔한 것을 먹게되는 분식화된 식당도 있고 테마가 있는 코스요리도 있는 세상입니다.
 
추절에 갑을목의 용도에 대해서 몇자 적는다는 것이 역시나 소설이 되었습니다. 하물며 술월에 계수를 설명하라 하시니 떠남과 남겨짐에서 내가 가지 못하고 너가 떠남을 인정하는 것이 인간적인 양심인지 최소한 너를 위한 배려인지 의리와 정에 대하여 고민해보면 어떤가 싶습니다.
 
 
출처 : 추절 갑을목의 용도 - blog.daum.net/0246146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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