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생은 몸에 배이게 하는 것이고, 상극은 몸에서 떼어내는 것이다.
상생하고 살려고 콩 한자루를 열심히 세었더니 숫자만 잘 센다.
콩알을 세는 숫자도 몸에 배니 한웅큼 집으면 그것이 몇개인지 안다.
예전에 돈을 세기 귀찮아 추스려 잡으면 백만원에서 한두장 차이가 난다.
대충 잡아 고무줄을 채우고 몇다발인지 헤아리며 계산을 한 적이 있다.
60갑자를 앞으로 뒤로 좌로 우로 돌리고 돌리다 보니 숫자 계산만 한다.
팔자와 상생하기라는 것이 경우의 수를 늘려가는 작업이기도 하고,
경우의 수를 늘리다 늘리다 다시 하나로 조합 하다보니 생화를 알것 같다.
생화는 세월이라는 경륜에서 얻어지는 것인데
극제라는 것은 많이 보고 겪어보고 얻어지는 것인데...
이를 쉽게 얻으려는 것은 얉팍한 인간의 욕망에 불과하다.
결국 占은 하늘과 땅에게 물어보는 것이다.
이를 대신하는 것이 술사의 통변이다.
통변은 그때 그때 상황에 따라 시각에 따라 변화하는 것이다.
오늘 왜 이런소리를 하는 것인지는 정미와 경술이가 안다.
기축이가 임신을 시켜 낳은 자식이 정미라는 딸과 경술이라는 아들이다.
정미는 딸이니 말하고, 경술이는 아들이니 생각하는 것이다.
말하고 생각하는 것이 사람이니 占은 때와 상황을 그리는 것이다.
출처 : 상생과 상극 - blog.daum.net/0246146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