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사주의 특수성
사주 추명학이 완성된 봉건시대에는 남존여비(男尊女卑)의 사회적 관습이 당연시되고 철칙으로 고수되어 왔다. 고로 여자의 사명은 생남(生男)하여 혈통의 계승을 보존하고 가정을 보살피는데 있으며 여자의 사회적 활동이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여성의 사회적 진출이 활발하고 사회적 활동이 환영되고 있다. 따라서 오늘날과 이 사회적 실정이 전혀 다른 봉건시대에 이루어진 여성에 관한 사주 상의 제 법칙 그대로 받아드릴 수는 없다.
전통적인 주장은 여성의 사주는 남자의 사주와 달리 신약이어야 하며 신왕이면 하천하고 사주 상 남편을 표시하는 관살과 자식을 나타내는 식상의 성쇠에 의하여 부자의 길흉은 물론 자신의 부귀빈천까지 판단하는 것이다. 여성의 사주가 신약이어야 한다는 원칙은 여자는 비활동적 이어야 가정에 충실할 수 있고 따라서 결혼생활도 지속할 수 있을 것이라는데 근거를 둔 상 싶으나 원수산이 명리탐원(命理探原)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오늘날 이 원칙은 실제로 응험하지 아니한다.
여자의 사주를 판단하는 방법도 남자의 사주를 판단하는 방법과 다를 바 없다. 생화극제가 잘 되어 중화되어야 수복(壽福)이 있으며 청순해야 존귀하다. 관살이 왕성하면 무조건 귀명(貴命)이라 하고 관살을 억제하는 식상이나 양인이 있으면 부덕(婦德)이 없다고 판단해서는 아니 된다.
다만 남자의 간명법과 조금 다른 바는 남자의 사주는 용신과 처를 동일시하지 아니하는데 반하여 여자의 사주에서는 남편과 용신을 동일시하며 남자의 사주보다 훨씬 더 중화될 것을 요한다는 점이다. 그것은 실제 경험상 관살만이 반드시 남편을 표시하는 것이 아니며 용신의 성쇠와 남편의 길흉이 일치하기 때문이다.
죽전 명리에서 퍼온 글입니다. le03.com.ne.kr/saju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