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양 운동은 상대적인 개념이다.
陽이 動하고 陰이 靜하는 것이라는 것은
음양 운동의 특성을 부각시켜 표현한 것이다.
양이 동하는 것은 음이 있기에 동하는 입장이고,
음이 정하는 것은 양이 있기에 정하는 상대적개념인 것이다.
음양의 관계는 분리되어 있으나 썩이지 않는 것이다.
음양의 관계는 썩이지 않고 분리되어 있으나 하나인 것이다.
陽은 陰이 있기에 반응하여 動하는 것이다.
陰은 陽이 있기에 반응하여 靜하는 것이다.
動靜의 관계가 음양이고,
음양이 만나는 것이 通하는 것이고,
通하는 것이 원인이고 用事로 나타나는 것이 결과이다.
음양은 반응하는 것이다.
用事는 음양 운동에서 나타나는 특성일 뿐이다.
음양은 공존하는 것이지 순환하는 것은 아니다.
음양은 대립하고 대치되어 양립되는 것이지 순환하지는 않는다.
음양운동이 사상으로 하여 오행 고유의 속성이 나타나는 것이
과정적으로 마치 음양운동의 순환적인 의미를 줄수는 있을 것이다.
양은 음을 보고 반응하여 결국 소모되는 것이다.
음은 양을 보고 반응하여 결국 현혹하고 얻는 것이다.
나는 남자이다.
여자를 보면 반응하지만 결국 소모되고 마는 것이다.
여자는 남자의 눈을 현혹했으니 이쁜게 죄일 뿐이다.
이쁜것 이쁘게 보면 그만이지 왜 건들여 곤혹을 치루는지
남자는 이성이 있는 인간으로 보기에는 본능이 강한가 보다.
남자는 양일간이고 여자는 음일간이어야 한다.
남자는 식상생재하고 여자는 관인상생하는 것이다.
여자는 적당히 이쁘고 구색만 갖추면 예쁘게 살아갈 수 있다.
연지곤지 찍어 바르고 걸을때 엉덩이만 실룩거리면 남자를 현혹할 수 있다.
남자가 남자다워야 남자지 남자가 음일간으로 태어나면 곤란하다.
몸은 남자로 태어났으나 사주의 주체로서 일간은 음일간이다.
물론 간단하게 일간과 사주의 동정이 식상생재 관인상생으로 음양을
구분하고 접근한다는 것이 참으로 무모한 것인것은 잘 알고 있다.
남성으로 살아야 할지 여성으로 살아야 할지 정체성불량의 삶이다.
정체성이 불량했으면 심보라도 곱게 쓰고 살아야 하는데...
나는 음일간 식상생재유형의 팔자이다.
몸은 남자이다.
사주의 동정까지는 식상생재로 남자답게 보일 것이다.
그러나 음일간으로 주체인 나는 여자인 것이니 쫌상인 것이다.
이 쫌상이 여자를 보면 動해야 하는데 몸은 움직이는데 맴 움직이지 않는다.
아~ 어쩌란 말인가~!
신림동 황회장은 甲일간이니 남자인 것이다.
꿈에서 나를 범하였으니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노릇이다.
하기사 선생님까지 범했으니 파렴치한이 틀림이 없는 것 같다.
나는 남자이고 싶은데 여자인 것이다.
음양운동에 말하면서 이상한 쪽으로 화두가 옮겨간다.
여자이고 싶은 남자인가 남자이고 싶은 여자인지는
나가 되어보지 않았으니 진실은 영원히 모를 것이다.
양을 현혹했으니 무전유죄라 할 수 있다.
음양 운동은 하나로 움직이나 다양한 부분까지 확대할 수 있다.
다양한 부분을 궁리할 수 있으나 결국 음양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