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이 흐르다 보니 생각에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어 어제 생각이 오늘과 같지 않고 오늘 생각은 내일과 같지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화두는 사실이고 궁리가 허상을 헤메는 가설을 세우는 과정이라는 것을 알기에 모두가 같은 답일 수도 있습니다.
亥月에 己土는 장차 봄을 맞이하기 위한 준비와 같습니다. 내일을 기약하고 훗날을 대비하기 위하여 동지섣달 기나긴 밤에 겨울잠을 자는 동안에도 생명을 유지를 위하여 수고스러움을 아끼지 않는 자식을 걱정하는 어머니의 고운 심결과 같습니다.
己土는 丙丁火의 열기로 풍성해지기도 반대로 초토화되기도 하는 것은 오행생극에서 土의 쓰임과 활용적인 가치와 같다면, 己土의 壬癸水의 음양배합은 만물을 생성하기 위한 근원과 같아 생명은 물에서 시초가 되었고, 사람은 땅에서 나고 땅으로 돌아간다 합니다.
이러하니 해월에 기토는 오행생극으로 활용적인 측면보다는 음양배합으로 생명을 유지하거나, 산만한 것을 통일하여 쓸것을 남기고 버릴 것을 정리하기도 합니다. 달리 표현하면 쭉정이는 바람에 흩어지고, 건더기는 기토에 남아 장차 봄을 맞아 생기가 오르기도 합니다.
만약, 亥月에 己土가 없었다면 산만한 것이 흩어져 강물이 되기도, 도로가 되기도, 수송로가 되어 어디에서 왔으며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돗이 없는 배와 같으니 시작도 알 수 없고 끝도 알수가 없습니다. 그져 여미고 절여 떨어진 낙엽조차 바스락거리게 할뿐입니다.
亥月에 무토가 도레미파솔라시도와 같이 음계에 대한 기준을 정하고자 한다면 기토는 프렛이나 샵, 마이너, 세븐코드로 세분화하려는 것은 자연의 소리에 근접하려는 것과 같습니다. 또한 고유의 소리를 더욱 섬세하게 부각시키기도 둔탁하게 단축시키기도 합니다.
이러한 해월 기토에 년지 오화는 마치 자동차 열쇠처럼 인위적으로 버튼을 누르면 동작하는 키와 같습니다. 시작하면 가는 것과 때가 되서 가는 것과 가만히 있어하면 서는 것과, 가만히 있어도 움직이는 것이 있으니 오화는 무미건조한 곳에 풍경소리와도 같습니다.
해월에 오화을 표현한다는 것은 궁으로는 월지가 년지가 어떻다하는 것과 같은데 이는 마치 날은 추워지는데 해수가 사회제도인 오화가 어떠하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오화라는 나랏법에서 해수가 사는 방편을 찾는 것이 순리라면 순리입니다.
해수가 나랏법이나 사회제도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것은 순리의 반대이니 역천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도 거짓말인 것이 결국 오화라는 그늘속에 해수라는 설정에 살면서 역하는 말을 했을뿐 역하지 않고 순리에 부합하고 사면서 가끔 푸념에 불과합니다.
午年이 亥月은 옥황상제 선녀님이 폭포아래에 목간하러 온것과 같습니다. 기토라는 나뭇꾼의 탐심에 날개 옷을 잃어버렸다면 유금이 있어야 하고, 날개옷을 대신하려는 것을 묘목입니다. 亥月 午火는 정성과 마음이 통하고 교류되는 것과 같습니다.
작은 힌트로 이해하지 못할 우답만 하는 것이 명리인가 봅니다. 해월기토에 년지 오화라는 설정은 달콤한 유혹이기도 합니다. 해월이라는 설정, 오화라는 설정, 기토라는 설정, 궁으로 상호작용관계가 삼라만상의 조화로 변화무쌍하게 그려질 뿐 비슷한 것은 없습니다.
출처 : 해월기토의 오화 - blog.daum.net/0246146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