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주가이드#1

미국 흑인 폭동의 유발자 로드니 킹 사주

Mr.대산 | 2017-10-03 10:35:44

조회수 : 1,481

로드니 킹 (King, Rodney)
 
 
양 력: 1965년 4월 2일 묘시 / 음/평: 1965년 3월 1일 묘시 남자
 
89 79 69 59 49 39 29 19 09.02
庚 辛 壬 癸 甲 乙 丙 丁 戊 --- 壬/辛 丙 己 乙 : 48세 乾命 (시각은 경계시각임)
午 未 申 酉 戌 亥 子 丑 寅 --- 辰/卯 戌 卯 巳
 
* 미국인, 흑인, 건설노동자, 1991년 03월 03일 00시 53분에 LA 외곽에서 LA 경찰들에게 심하게 맞음, 이 장면이 TV에 방영됨, LA 시로부터 보상금으로 약 380만 달러 받음, 등급 AA.
 
=> 인수격에 水用金喜 木약신이다. 火土는 기신.
 
* 48세 乙亥대운 壬辰年 丙午月 - 2012년 06월 17일 사망. 1991년 로스앤젤레스(LA) 경찰에 구타당하고 이듬해 LA 폭동의 중심인물이 됐던 흑인 로드니 킹(47)이 17일 캘리포니아 리알토의 자신의 집 수영장에서 사망한 채 발견됐다. 캘리포니아 경찰은 킹의 약혼자가 이날 오전 5시25분 집 수영장에서 킹 시신을 발견하고 신고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당시 킹이 물속에서 아무런 신체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아 그를 인근 병원으로 옮겼고 오전 06시 11분 병원이 사망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그의 신체에 부상한 흔적이 없고 사인에 대한 즉각적인 의혹이 제기되지 않았다면서 익사 사고로 보고 조사 중이라고 말했다. 그에 대한 부검이 48시간 이내에 이뤄진다.
 
=> 대운수가 09수이지만 이미 甲戌대운에 들어간 듯하다.
 
* 27세 丁丑대운 辛未年 - 1991년 03월 03일 로드니는 새벽 00시 54분 CA주, LA에서 과속하다 적발돼 경찰 4명으로부터 경찰봉과 발 등으로 50여 차례 맞았고 두개골 함몰과 눈을 다침. 이 장면을 한 남자가 비디오테이프에 담아 TV 방송사에 넘겨 이후 구타 모습이 반복 방영됐다.
 
=> 丁丑대운 辛未年은 흉년이다.
 
* 28세 丙子대운~丁丑대운 壬申年 - 1992년 04월 29일 폭행한 경찰관들이 무죄 판결을 받으면서 풀려나자 흑인들이 폭동을 일으킴. 사흘 동안 55명이 죽고, 2,000명이 다쳤으며 12,000명이 체포되었다. 한인업소 1,600여 개가 파괴되었고 3억 달러에 이르는 피해를 입었다.
 
=> 丙子대운 壬申年은 호운이다.
 
* 29세 丙子대운 癸酉年 1993년 08월 21일 로드니가 음주운전으로 부인 차를 벽에 들이받아 체포됨.
* 1993년 12월 28일 로드니의 상점 약탈 범죄에 대한 3년간의 집행유예기간이 끝남.
 
* 30세 丙子대운 甲戌年 - 1994년 01월 10일 음주운전으로 또 체포됨.
* 1994년 04월 폭행한 경찰관 02명이 폭행죄로 02년 반의 징역형을 받음.
* 1994년 04월 19일 보상비로 380만불 받음. 변호사 비용이 백만불이었음.
* 1995년 05월 21일 또 음주운전으로 체포됨.
 
* 33세 丙子대운 丁丑年 - 1997년 음반사업에 투자하여 망함.
 
=> 丁丑年은 흉하다. 사업가 명이 아니다.
 
* 35세 丙子대운 己卯年 - 1999년 03월 05일 부인과 딸에 대한 폭행죄로 체포됨.
* 37세 丙子대운 辛巳年 - 2001년 08월과 09월에도 PCP influence로 경찰에 체포됨.
 
=> 辛巳年 丙辛合이 흉하고 巳戌 원진살이 흉하다.
 
* 48세 甲戌대운~乙亥대운 壬辰年 - 2012년 자서전 출간함. 사망함.
 
=> 甲戌대운이 甲己合으로 흉하여 사망했다.
 
 
<로드니 킹 사건>
 
의의:
 
소수민족이 얼마나 살기가 힘든지를 극단적으로 보여준 사건 재미 교포들이 미국 사는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 사건이다
 
사건의 개요:
 
1991년 3월 3일 LA 경찰국 소속 백인경찰관 4명이 흑인인 로드니 킹 (27) 을 집단 구타한 사건에서 발생하는데 대략의 내용을 정리해보면 이날 밤 0시 30분쯤 LA 근교 고속도로상에서 5∼6 대의 경찰차가 과속으로 달리던 한대의 흰색 차 (이때 로드니 킹이 몰았던 차가 현대자동차의 엑셀이었다!!)를 뒤쫓은 끝에 멈춰 세웠고 문제의 백인 경찰관들은 그 차를 운전하던 흑인 청년 로드니 킹을 끌어내려 경찰봉과 주먹, 발길질로 개 패듯이 구타했다.
 
킹은 유혈이 낭자한 채 현장에서 수갑이 채 워져 경찰서로 연행되었는데, 킹은 왼쪽다리가 부러지고 얼굴도 20바늘이나 꿰매야 하는 큰 상처를 입었다. 이 장면이 근처 아파트에 살던 죠지 홀리데이(George Holliday)라는 사람의 카메라에 다 잡히고 말았고 이 아마츄어가 찍은 영상은 곧바로 TV방송을 타고 미국 전역에 뿌려졌다.
 
사건의 전개:
 
과잉 검문 검색으로 해당 경찰관들은 법원에 고발당했으며, 장장 1년여 동안의 법정 심의가 벌어 졌는데, 경찰들의 주장은 "로드니 킹이 위협적인 자세를 취했었고, 경찰은 예기치 못한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공정한 법 집행이었다"는 것이었다.
 
로드니킹 관련사건을 심의해온 시미밸리 지방법원의 배심원들이 7일간의 마라톤 협의 끝에 1992년 4월 29일 오후 3시 20분 로드니 킹을 직접 구타한 4명의 백인 경찰관 중 스테이시 쿤, 테드 브리세노, 티모시 윈드등 3명에게는 무죄를 평결하고 로렌스 파웰 한 명에게만 재심사를 결정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배심원은 모두 12명으로, 백인이 10명이고 스페인계와 아시아인계가 1명씩이었다, 는 것이다.
 
사건의 절정:
 
평결이 발표되자 이에 분노한 흑인들이 당일 오후 거리로 뛰쳐나와 시위를 시작했고, 해질 무렵부터는 마침내 폭동으로 변해 곳곳에서 건물에 불을 지르고 차량을 파괴하고 상점의 물건을 약탈했다. 흑인 폭동의 진원지인 '사우스 센트럴' 지역 식품점의 90%를 차지하는 4백50여개 한인 상점들은 모두가 흑인들의 약탈, 방화공격을 받았고, 일부 지역에서는 흑인들의 습격을 막기 위한 총격전까지 벌여 흡사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사건의 분석:
 
사실 로드니킹 사건과는 전혀 관련도 없던 한인들이 흑인들의 폭동으로 인해 피해를 입은 것이다. 폭동 진압 과정에서 미국 경찰들이 강력한 제재를 가하지 않고 방치해 애꿎은 한인 교포 들이 흑인들의 반감을 잠재우려는 백인 주류 사회의 희생양이 되었다는 분석도 가해 지고 있다.
 
피해 상황:
 
통제불능의 사흘동안 55명이 죽고 2,000명이 다쳤으며 12,000 명이 체포되었다. 물적 피해는 10억 달러에 달했다. 그리고 흑인-백인, 흑인-한국인, 유색인-백인 사이의 갈등의 골은 깊어만 갔다. 비벌리힐즈의 부자 백인들이 LA경찰의 철통같은 보호를 받을 동안 다운타운의 한인업소가 흑인들의 약탈 1순위 였다. 한인업소 1,600여 개가 파괴되었고 3억 달러에 이르는 피해를 입었다.
 
사건의 결말:
 
그 나쁜 놈의 백인 경찰은 결국 93년 다시 연방재판을 받게 되어 로렌스 파웰의 유죄가 인정되어 징역 30개월이 처해 진다
 
Behind story:
 
이 인종갈등-인종폭동의 발화자가 된 셈인 로드니 킹은 당시 LA시로부터 380만 달러의 보상금을 받았고 그 돈으로 랩 레코드 사업을 차리는 등 한때 잘 나갔지만 그 보상금은 변론 비용과 사업실패로 거의 다 날렸다고 한다.
 
99년에는 부인폭행죄로 보호관찰을 선고받는 등 그날 이후 7차례나 교도소를 들락거렸고, 폭동 10주년 때는 마약복용 혐의로 재활센터에 수감된 신세였다.
 
 
출처 : 명리마을 - cafe.daum.net/sajusaj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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