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주가이드#1

미국 배우. 필 하트만 사주

Mr.대산 | 2017-10-03 10:48:49

조회수 : 1,340

양 력: 1958년 4월 11일 17:15 음/평: 1958년 2월 23일 17:15 여자
양 력: 1948년 9월 24일 18:20 음/평: 1948년 8월 22일 18:20 남자
 
82 72 62 52 42 32 22 12 02.02 木 火 土 木 / 水
丁 戊 己 庚 辛 壬 癸 甲 乙 --- 庚 戊 丙 戊 / 丁 : 41세 坤命
未 申 酉 戌 亥 子 丑 寅 卯 --- 申 午 辰 戌 / 未
 
84 74 64 54 44 34 24 14 04.10 土 木 木 火 / 木
庚 己 戊 丁 丙 乙 甲 癸 壬 --- 己 壬 辛 戊 / 壬 : 51세 乾命
午 巳 辰 卯 寅 丑 子 亥 戌 --- 酉 子 酉 子 / 子
 
남편 - 필 하트만
 
* 부친은 건축자재 영업사원이었고, 8형제 중 4째로 출생함.
 
* 11세 壬戌대운 戊戌年(?) - 10세(만나이) 때 캐나다에서 미국으로 이주. 1990년에 미국 시민권을 획득함.
 
* 22세 癸亥대운 己酉年 - 고등학교 졸업후 Santa Monica City College에서 예술을 전공했으나 1969년에 중퇴.
 
* 23세 癸亥대운 庚戌年 - 1970년에 Gretchen Lewis와 결혼. 1982년 전에 이혼.
 
* 25세 甲子대운 壬子年 - 1972년에 다시 학교로 돌아가서 그래픽을 전공함.
 
* 35세 乙丑대운 壬戌年 - 1982년에 부동산 중개인 Lisa Strain와 재혼.
 
* 38세 乙丑대운 乙丑年 - 1985년 이혼.
 
* 39세 乙丑대운 丙寅年 - 1986년에 TV variety show에 고정 출연자로 나왔고, 1986년에 "Saturday Night Live" 출연을 시작함. 이후 승승장구하여 인기를 얻음. 1986년에 소개팅으로 수영복 모델인 Brynn을 만나.
 
* 40세 乙丑대운 丁卯年 - 1987년 11월에 3혼을 함. 두 자식을 얻었으나, 남편은 잘 나가고 본인은 가정주부로 지내면서 Brynn은 마약과 알콜 중독으로 몇 번이나 재활치료소를 다녀왔고 사건이 일어나기 몇 개월 전에도 다녀왔음. 이런 이유로 하트만은 이혼을 준비 중이었다는 설이 있음.
 
* 51세 丙寅대운 戊寅年 - 1998년 5월 28일 전날 부부 언쟁 후 새벽 02시와 02:30분 사이에 잠자는 하트만을 Brynn이 총 3발을 쏘아 사망케 함. 살해 이유는 하트만이 Brynn에게 모욕을 주었다는 이유로 추정함. 이후 Brynn은 남자 친구의 집에 가서 남편을 죽였다고 고백함. 두 사람은 하트만의 집으로 다시 왔는데 Brynn은 남편의 시체가 있는 방에 들어가 문을 잠금. 친구가 경찰에 신고하여 아이들을 대피시킨 후 총소리를 들음. Brynn이 자살하는 총소리였음. 자식은 Birgin(6세)와 Sean(9세) 남편과 부인의 성격이 아주 달랐다고 함.
 
84 74 64 54 44 34 24 14 04.10- 土 木 木 火 / 木
庚 己 戊 丁 丙 乙 甲 癸 壬 --- 己 壬 辛 戊 / 壬 : 51세 乾命
午 巳 辰 卯 寅 丑 子 亥 戌 --- 酉 子 酉 子 / 子
 
82 72 62 52 42 32 22 12 02.02 - 木 火 土 木 / 水
丁 戊 己 庚 辛 壬 癸 甲 乙 --- 庚 戊 丙 戊 / 丁 : 41세 坤命
未 申 酉 戌 亥 子 丑 寅 卯 --- 申 午 辰 戌 / 未
 
부인 - 브린 하트만
 
부친은 엔지니어이면서 소매점의 주인, 평범하게 성장하다가 고등학교를 중퇴함, 전화 교환수인 Doug Torfin과 결혼하고 이혼함, 캘리포니아로 이주하여 연기를 배우고 모델일도 잠깐 함. 수영복 모델 일을 하는 동안 1986년 소개팅에서 Phil Hartman을 만나 1987년 11월에 결혼함. 두 자식을 출산함.
 
남편은 잘 나가고 본인은 가정주부로 지내면서 Brynn은 마약과 알콜 중독으로 몇 번이나 재활치료소를 다녀왔고 사건이 일어나기 몇 개월 전에도 다녀왔음. 이런 이유로 하트만은 이혼을 준비 중이었다는 설이 있음.
 
 
'서프라이즈' 필 하트만 사망은 'SNL의 저주' 때문? 2012-04-15
 
배우 필 하트만이 'SNL의 저주'로 사망하게 됐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15일 오전 방송된 MBC TV ‘신기한 TV 서프라이즈’에서는 미국 NBC TV의 'SATURDAY NIGHT LIVE(이하 'SNL')' 대한 저주를 공개했다.
 
'SATURDAY NIGHT LIVE'는 1975년 10월 11일 첫 방송 된 후 지금까지 이어지는 최장수 코미디 프로그램이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을 떠난 배우들은 'SNL의 저주'로 마약에 빠지거나 병에 걸리는 등 결국 죽음에 맡게 되는 불행을 겪는다. 앤디 카우프만, 크리스팔리, 다니트라 밴스 등 'SNL의 저주'에 걸린 사람들은 점점 늘어만 갔다. 또 역대 대통령들의 성대모사로 인기를 끌었던 필 하트만 역시 아내를 모욕한 대가로 죽음을 맡게 됐다.
 
'SNL'에 출연한 찰스 라킷 역시 코네티컷에서 자살한 채 발견돼 저주에 대한 의혹은 더욱 늘어만 갔다. 하지만 이런 저주는 단지 우연의 일치로 'SNL'에 출연했던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수차례 마약으로 체포되긴 했지만 최근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거머쥐는 등 전 세계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고 아담 샌들러, 에디 머피, 윌 패럴 등 저주 없이 왕성한 활동을 보이고 있다.
 
 
[빅스타 X파일] 코미디 쇼 SNL의 저주,   2012년 01월 11일
 
웃기려고 악마에 영혼까지 팔았다
 
지난해 12월부터 케이블 채널 tvN을 통해 <SNL 코리아>라는 프로그램이 방송되고 있다. ‘SNL’은 미국에서 1975년부터 시작된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Saturday Night Live)를 의미한다.
 
체비 체이스, 에디 머피, 댄 에크로이드, 존 벨루시, 빌 머레이, 윌 페렐, 스티브 마틴, 빌리 크리스털, 애덤 샌들러,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마이크 마이어스, 벤 스틸러 등 수많은 스타를 배출한 SNL은 할리우드 코미디 배우의 등용문과도 같은 무대다. 하지만 그 영광 뒤엔 ‘SNL의 저주’도 있다. 이 쇼를 떠난 자들이 겪었던 비극들은 미국 엔터테인먼트 역사의 미스터리 가운데 하나이며, 동시에 사회적 현상이기도 했다.
 
1975년 가을 미국의 방송사 NBC는 새로운 형식의 코미디 쇼를 시도한다. 처음엔 <새터데이 나이트>(Saturday Night)라는 이름으로 시작된 악취미와 거친 유머로 무장한 이 쇼는 대중문화는 물론 스포츠와 정치 등 다방면에 걸쳐 날카로운 풍자를 던졌다.
 
이 90분짜리 쇼는 금세 젊은이들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게 되었으며, 라이브로 방송되는 SNL의 스튜디오가 있는 맨해튼의 록펠러센터는 금방 명소가 되었다.
 
SNL이 성공할 수 있었던 건 프로듀서인 론 마이클스의 안목 때문. 그는 후미진 오프브로드웨이 무대까지 샅샅이 뒤지며 좀 더 신랄하고 독특한 유머 감각을 지닌 신예들을 대거 발굴했고, 퍼포먼스는 물론 직접 대본을 쓰기도 했던 그들은 물 만난 고기처럼 독한 개그를 선보였다.
 
원년 멤버는 여섯 명. 자신들을 ‘황금시간대엔 아직 준비가 되지 않은 연기자들(The Not Ready For Prime Time Players)’로 불렀던 댄 에크로이드, 체비 체이스, 제인 커틴, 개럿 모리스, 러레인 뉴먼 그리고 질다 래드너였다.
 
이들 가운데 처음으로 스타덤에 오른 사람은 바로 체비 체이스였다. 우리에겐 <크리스마스 대소동>(1989) <투명인간의 사랑>(1992) 등으로 알려진 그는 대학 졸업 후 잡지에 글을 기고하고 오프 브로드웨이에서 코미디 연극을 하다가 SNL에 발탁됐다.
 
그는 SNL에서 약간의 특별대우를 받았다. 단독으로 ‘위크엔드 업데이트’라는 코너를 진행했던 것. 그는 유명해졌고, 1년 만에 SNL을 접고 좀 더 큰돈을 벌기 위해 할리우드로 향했다. 하지만 그는 ‘SNL의 저주’의 첫 희생자가 됐다. 이후 그는 이혼을 거듭했고 야심차게 도전했던 영화들은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 동료들에겐 성공에 눈이 먼 배신자로 낙인 찍혔고 약물 문제로 한동안 병원 신세를 져야 했다.
 
존 벨루시는 체비 체이스보다 더 가혹한 ‘저주’의 희생자였다. 시카고에서 즉흥 코미디를 하다가 발탁된 그는 슬랩스틱 코미디에 풍자와 드라마를 섞은 독창적 스타일을 선보였다. 무대에선 세상을 호령하는 듯했던 존 벨루시. 하지만 그는 술과 마약의 힘을 빌리지 않으면 웃겨야 한다는 강박을 이겨낼 수 없었다.
 
“모든 것은 점점 더 압박해 오고, 나는 점점 더 절박해지면서 스스로를 파괴하게 된다”며 SNL이 있는 뉴욕을 떠나 LA로 갔지만 보수적인 할리우드에선 그의 재능을 제대로 꽃 피우기 힘들었다. 허접한 코미디 제안에 지친 그는 점점 폭식과 마약에 빠졌고 대인기피증까지 겪게 되었다. 그리고 1982년 3월 5일, 우울한 기분을 달래려고 열었던 파티에서 약물 과용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나이 33세였다.
 
존 벨루시처럼 시카고에서 연극을 하다가 1990년부터 SNL에 합류한 크리스 팔리는 어쩌면 벨루시의 반복이었다. 자신의 땅딸막한 체구를 소재로 유치하고 거친 코미디를 선사했으며 ‘카메라 앞에서 바지 내리기’가 장기였던 그는 마약과 매춘에 중독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도 SNL을 떠나면서 결정적으로 망가졌고 폭식과 매춘과 마약과 알코올 속에서 173㎝에 160㎏이라는 위험한 상태까지 이르렀다. 1997년 결국은 코카인 과용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나이, 벨루시와 마찬가지로 역시 33세였다.
 
‘왈가닥 루시’ 루실 볼과 비교되었던 질다 래드너는 남자 코미디언들이 득실거리는 SNL에서 그 한계를 알 수 없는 광적인 에너지를 기반으로 뉴스 리포터부터 6세 소녀까지 다양한 캐릭터를 소화한, 핵폭탄 같은 엔터테이너였다. 요란하고 외설적이며 때론 공격적이기까지 한 그녀의 코미디는 쇼의 절정을 이루었다.
 
하지만 그녀도 쇼를 떠난 뒤 비극적 삶을 맞이한다. 1986년에 난소암에 걸린 사실을 알게 된 것. 남편이자 유명한 코미디 배우인 진 와일더와 함께 자신의 투병 생활을 홈 비디오 담으며 그 안에서 코미디를 시도하기도 했지만, 1989년 43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30대 후반에 쇼에 합류해 40대 중반까지 8년 동안 SNL을 지켰던 필 하트만은 클린턴 대통령이나 프랭크 시내트라 같은 인물을 비꼬는 성대모사로 인기를 끌었던 인물이다. 1994년에 46세의 나이로 쇼를 떠난 그는 시트콤을 통해 제2의 인생을 시도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아내 브린은 그런 남편이 못 마땅했다. 광적인 배우 지망생이었던 브린은 점점 초조해졌고 남편 뒷바라지나 하는 삶이 극도로 불만스러웠다. 급기야 배우로서 승승장구하는 남편에게 질투심을 느끼게 되었다. 점차 술과 마약에 빠져 클리닉을 드나들었지만 별 효과는 없었다.
 
잦은 싸움 끝에 극도로 폭력적인 인간이 된 브린은 1998년 5월 28일 침실로 들어가 잠든 남편에게 세 발의 총을 쏜 후 자살한다. “50세가 넘어서도 코미디언으로 살아남을 수 있다는 걸 보여주겠다.”던 필 하트만은 49세의 나이에 그렇게 세상을 떠났다.
 
질다 래드너처럼 병으로 인한 죽음도 있긴 하지만, ‘SNL의 저주’는 모두 성공에 대한 강박적인 상황에 빠진 엔터테이너들이 술과 마약에 빠지고, 젊은 나이에 목숨을 잃었던 비극이다. 우연이나 미스터리로 볼 수도 있겠지만 그 저주 뒤엔 어떤 필연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SNL 이야기가 나온 김에 다음 주엔 역대 SNL 생방송에서 빚어졌던 굵직한 해프닝들 몇 개를 소개할까 한다. 아마도 베스트는 시너드 오코너가 교황의 사진을 찢었던 그 사건이 될 것이다.
 
김형석 영화칼럼니스트
 
 
출처 : 명리마을- cafe.daum.net/sajusaj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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