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예산의 2대천자지지(二代天子之地). 흥선대원군 이하응(興宣大院君 李昰應)의 왕권에 대한 집념이 현실로 이루어진 곳, 1860년대 ‘오페르트 도굴사건’ 으로 교과서에도 실린 남연군묘를 일컬음이다.
남연군은 대원군의 아버지요, 고종(高宗)황제의 할아버지, 순종(純宗)황제의 증조할아버지다. 풍수학 측면으로 보면 이곳은 예언대로 2대에 걸쳐 황제를 배출한 군왕지지(君王之地)가 된다.
다른 시각으로 보면 우리나라의 근대화에 큰 영향을 미친 장소가 된다. 즉 도굴사건이 대원군에게 쇄국정책을 강화시키게 하는 빌미를 제공하기도 했다는 얘기다. 좋든 싫든 풍수가 근대화의 과정에 한 획을 그은 역사적 장소인 셈이다.
원래 이곳은 절터였다. 신분상승의 지름길로 풍수를 이용하려했던 대원군은 갖은 술책으로 뺏아 묘 터로 만들었다. 탈신공개천명(脫神功改天命 ․ 신이 할 일을 빼앗아 운명을 고치다)을 꿈꾸면서 말이다.
어찌됐건 일신상의 꿈은 이루었지만, 더 큰 나라의 운명은 예측을 못하였으니 인물에 맞지 않은 너무 큰 자리였을까.
풍수 물형론(物形論)에 상제봉조형(上帝奉朝形)이 있다. 옥황상제가 신하들의 하례를 받는 형국, 즉 임금이 신하들의 인사를 받는 형국이다. 그만큼 귀하고 큰 자리가 된다. 그야말로 하늘이 내는 자리이기 때문에 보통의 사람들은 옆에 두고서도 알아보지 못한다. 설사 알아서 쓴다고 해도 복(福)보다는 화(禍)가 되레 무서운 곳이다. 큰 땅은 격에 맞는 임자가 있는 법이니 말이다.
집이든 묘든 군왕지지라면 주변에 임금에게 소용되는 물건과 유사한 형태의 자연물이 있어야 한다.
먼저 임금에겐 신하가 있어야 한다. 독불임금은 없다. 따라서 앞에 신하를 의미하는 나지막한 산들이 포진해야 한다. 그것도 주산을 향해 절하듯 다소곳해야 한다. 건방지게 고개를 쳐들거나 삐딱하게 서있는 산, 등을 보이고 있는 산이 있는 곳은 충신을 기대할 수 없다. 이러한 신하는 간사하거나 반역을 꾀하는 신하가 된다. 없느니만 못한 신하들이다.
임금을 상징하는 것으로 옥새를 빼놓을 수 없다. 인합사(印盒砂)다. 작은 산언덕이나 큰 바위로 도장을 뜻한다. 색이 붉다면 금상첨화가 된다.
경복궁 근정전엔 용상이 있다. 옛날 임금들이 앉았던 어좌(御座)다. 그 뒤를 보면 하나의 그림이 있다. 해와 달, 그리고 다섯 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진 산이 그려진 그림, 일월오악도(日月五嶽圖)다. 풍수에선 어병사(御屛砂)라 한다. 산소나 집 뒤에 병풍처럼 둘러친 바위나 돌이다. 어떤 곳은 석맥(石脈)의 형태로 땅속에 박혀 있기도 하다. 바위는 지기(地氣)의 응결처라 했다. 그만큼 센 기를 분출한다.
용의 세력으로 그 혈장(穴場)의 힘을 가늠한다. 신하가 아무리 유능하다 해도 임금이 무력하면 의미가 없다.
용맥은 힘이 넘쳐야 한다. 왕기(王氣)를 갖고 있는 용(龍)은 십자맥(十字脈)을 띤다. 살아있는 용은 주산서 내려오는 도중에 좌우로 팔을 벌리게 되는데, 힘이 있는 용이라면 그 지점에서 전후좌우로 정확하게 십자를 형성한다는 얘기다. 이러한 곳은 대통령이나 재벌을 꿈꿀 수 있다고 본다.
출처 : 風따라 水따라 - blog.naver.com/chonjjj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