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택에서의 발복(發福)은 후손에게 전달되지 않는다. 수혜자가 그만큼 적다. 반면에 속발(速發)이다.
풍수이론의 기본은 동기감응(同氣感應)이라 했다. 이는 양택이라해서 벗어나지 못한다. 양택에서의 동기감응은 주변의 기와 자신의 기가 직접 감응하는 것이다.
조상과 후손간 뼈끼리의 교감인 음택 발복은 더디지만 오래간다. 수혜자의 폭도 넓다. 이게 양택과 음택 발복의 차이점이라면 차이점이다.
반기문 유엔총장의 선영과 생가에 풍수가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한다. 새삼 놀랄 일도 아니다. 유명세를 타는 인물치고 풍수에서 벗어나는 이는 없기 때문이다. 반 총장의 생가는 ‘선학인가형(仙鶴引駕形:학이 수레를 끄는 형상)’이란 글도 보인다.
필자는 유감스럽게도 아직 답산(踏山)해 보지 못해 왈가왈부할 입장은 못되지만 충분히 공감이 가는 대목이기도 하다.
생가(生家)는 풍수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 선영(先塋)과 현재 살고 있는 집터에 버금가는 위치다. 태어나 자라는 동안 그 산천의 정기가 그 인물에 알게 모르게 스며드는 장소란게 이유가 된다.
그렇다고 그 동네사람들이 모두가 잘된다고 볼 수는 없다. 집터가 주맥(主脈)에 진혈(眞穴)이 전제되어야 한다. 그 혈처(穴處)로 기가 몰린다고 보기 때문이다. 나아가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보낸 집이 알짜가 된다.
출생후 바로 이사를 했거나 중간에 들어왔다면 그만큼 힘은 줄어든다. 태어나 15, 16년간 자고 숨쉰 집이 중요하단 얘기다. 자아가 성숙되고 신체가 완성되는 시기, 그 시기에 명당에 거주해야 효험이 있단 말이다.
사람은 수면 중에 가장 본능적이라 한다. 풍수에선 수면 중 알게 모르게 받은 산천지기가 한 인간의 평생을 좌우한다고 본다. 다행히 그 땅이 명당이라면 똑똑하고도 건전한 마음가짐으로 사회생활을 할 수 있다고 보지만 흉지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정서불안에 모난 성격, 심하면 어릴 때부터 가출이 일상사다. 그만큼 그 땅이 싫어진다. 요즘같이 ‘공부지상주의’ 인 시절에야 더 말해 무엇하랴. 풍수를 떠나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도 있지 않은가.
생가에서의 풍수는 주산을 비롯한 사신사와의 관계라 해도 되겠다. 험한 산, 수려한 산의 기운은 다르다. 주위환경이 전자라면 성격이 다소 거칠고 후자는 부드럽다. 이 평범한 진리가 곧 풍수다. 풍수란 자연과 인간의 하나됨,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란 의미다. 자연의 힘이 그대로 인간에 반영된단 얘기다.
예컨대 주변에 문필봉(文筆峯)이 있다면 학자의 기운이 넘쳐난다. 이 문(文)의 기운이 그대로 인간에 반영된다고 보는게 풍수다. 이 문필의 힘은 영양의 조지훈 생가를 예로 들 수 있다.
경남 의령 이병철 회장 생가엔 유난히 노적봉(露積峯)이 많다. 노적봉은 부(富)를 관장한다. 밀양의 사명대사 생가 주위의 산엔 일자문성(一字文星)이 줄지어 섰다. 일자문성은 문무겸전이다.
옛날엔 잉태지가 곧 출생지요 성장지였다. 하나로 통일된 정기다. 하지만 요즘은 잉태지는 외국이요 출생지는 병원, 성장지는 집으로 각각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 기운들이 섞이고 섞여 변덕이 심한 현대인이 됐을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가 힘들 땐 고향을 떠올린다. 이건 어릴 적 교감했던 그 산천의 기운이 보내는 메시지인지도 모를 일이다. 힘들 때는 오라는….
힘들었던 60, 70년대 대중가요를 휩쓸었던 고향노래는 이런 의미가 아니었을까. ‘고향’ 이란 단어는 언제나 포근하다.
출처 : 風따라 水따라 - blog.naver.com/chonjjj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