體用은 하나인데 체와 용으로 분리하지 않으면 기준점이 모호하고,
體用이 둘이라 난잡하게 확대하면 하나로 엮지 못하니 미궁에 빠진다.
사람은 눈이 있어 보는 것이 體라면 인식하는 것이 用이 된다.
사람은 이순간에도 숨을 내쉬게 되면 반듯이 들숨으로 들이쉬게 된다.
생각하고 행동하고 다시 행동하고 생각하기도 한다.
체가 기준점이 되지 않고 용이 기준점이 되지 않는다.
기준점은 상대적으로 반응하는 하나의 체용이지 체나 용이 기준이 아니다.
체에서 용이 활용되고 용에서 체가 활용되는 것이다.
오행으로 목을 표현하고자 할때.
화토금수를 체로 하여 목을 용으로 표현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상대적으로 목을 체로 하여 화토금수의 용으로 표현할 수도 있을 것이다.
육신으로 관을 표현하고자 할때.
인비식재를 체로 하여 관을 용으로 표현할 수도 있고,
상대적으로 관을 체로 하여 인비식재를 용으로 표현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렇듯 용을 말할때는 체를 배제할수는 없는 것이다.
체를 말할때는 용을 배제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 체용의 상호관계가 인간사의 애환을 만드는 것이다.
체용은 둘이 아니라 하나이고 하나가 아니라 고로 둘인 것이다.
하나라 여기면 할말이 없고,
둘이라 여기면 무수한 소설을 그려갈 수 있다.
팔자에서
체는 정하나 용으로 하여금 동하게 되고,
용으로 하여금 체는 쓰임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체를 말하면 명쾌하나 반쪽이 되고,
용을 말하면 신선하나 반쪽이 된다.
체용을 말하면 뻔하다 여기니 이것이 인간사이다.
공기와 같이 접하고 있으면서도 인식할 수 없는 것이 체용이다.
알지 말아야 할 것을 알고자 했으니 보이지 않는 것도 보인다 하자.
출처 : 체용 - blog.daum.net/0246146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