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가 인을 극인하는 것이 과연 나쁜 것인가?
재생관 관인상생하면 얼마나 좋을까?
만약 재관인이 상생한다면 이것이 꿈인가 생시인가?
재관이 있어 생하지 않는 재극인은 알만한 사람이 복창을 터지게 하니 대화가 안통하고,
재가 있고 관이 없는 재극인은 자기 잘난맛에 살고 제멋에 사는 것을 모라 할수는 없는 것이다.
인성이 없어 재극인하는 것은 일관성이 없어 우왕좌왕 무책임한 말만 하니 사람속을 뒤집는다.
인성이 태왕하여 재극인하는 것은 지말이 맞다 우기고 사니 벽창호랑 말하는 것이 좋을지도 모르겠다.
일간이 신약하여 재극인하는 것은 참으로 줏대없는 인간이니 믿음이 가지 않아 따를수가 없을 것이다.
재성이 인성을 극하는 것이 재극인이라 하는데 있어서 문제가 되는 것은 그나마 행복할 것이다.
재와 인성이 없어도 재극인이니 이것은 종잡을 수 없는 혼돈이니 이를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결국 역으로 생각하면 왕한 인성이 일간을 잘~알 생하지 않으면 모두다 재극인이라는 말이다.
이것을 확대하면 관성으로 하여 왕한 인성이 인간을 생하지 않으면 모두다 재극인이라는 말이다.
또한 이를 더 확대하면 재생관으로 비롯하여 관인상생하지 않으면 모두다 재극인이라는 말이다.
재극인하면 다 나쁜 것이고 재인하면 다 좋은 것은 결코 아닌 것이다.
인간사 상생으로 생활을 영위해 간다면 필요극은 성장과 발전도 도모할 수 있고 퇴보와 타락도
넘볼 수 있는 도전장이니 한번쯤 해볼만한 기회이고 찬스인 것이다.
시대속에 잘 사는 사람은 극을 기회로 활용하고 시대속에 못하는 사람은 극을 타락의 기회로 삼는다.
극과 제는 언제나 한끝 차이인데 사람의 마음은 천갈래 만갈래 자기 그늘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
재관인으로 살면 되는 것을 우째 쟁재하고 재극인하고 견관하고 사려는지 이것이 세월이 가져다주는
기회와 찬스인가 아니면 퇴보와 낙향으로 가는 지름길인가 사람의 의지로서 극복해야 할 숙제이다.
가는 것이 가는 것이니 사는 것이다.
사람은 행운기만 있지 진정 의식을 가진 인간의 의지는 이렇게 나약할 수 것이 인간인 것이다.
재극인하지 말고 부디 재생관하고 살면 관인상생까지 되것지 하고 사는 것이 옳은 것이다.
그러나~! 건강은 몸은 의지를 받쳐주지는 못할 수도 있는 것이 바로 운명인 것이다.
마음가는데로 몸이 가는데로 사는 것이 바로 운명일 것이다.
사는 것에 의미를 부여한다는 것 또한 재극인하는 것이다.
과거의 나를 인식하고 미래의 나를 인식하는 것 조차 재극인 하는 것이다.
왜 사냐고 묻지 마라~!
앞만 보고 달리다 보면 콩알이 쌓여질 것이다~!
노력하지 않은 자들이 성공담을 말하는 것이고
진정 노력하고 성공한 자들은 그져 운이 좋다 겸언쩍게 미소진다.
재관인은 큰 강물처럼 유유자적 흐르는 물과 같다. 감히 나식이 물줄기의 흐름을 바꿀수는 없다.
재관인에 편승했으면 죽는 날까지 재관인의 음률에 박자를 맞추고 살아야 할 것이다.
큰 강물에 종이배와 같은 나식이 돋보이고 주인처럼 행사하나 결국 언젠가는 가라앉고 말것이다.
세상사에 반딧불처럼 잠시왔다 흔적없이 사라질 나식이 재관인의 주인인양 착각하지 말지어다.
잠시 빌어 몸을 담았으면 주어진 것에 만족하고 사는 것도 인간다운 삶이 아닌가 싶다.
출처 : 재극인으로 살아가기 - blog.daum.net/0246146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