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관견관으로 이혼하는 시대는 지났다.
여자의 상관견관은 오히려 남편이 직업적으로 어려움이다.
대개 남편의 직업적인 어려움으로 파산지경이거나
물질적으로 가장에 역활을 하지 못하는 무능력한 경우가 많다.
이런 상황에 놓이게 되니 여자가 이혼을 결심하게 되는 경우가 종종있다.
그러나 대부분 여자는 남편을 불쌍히 여기고 감싸주는 경우가 많다.
고로 상관견관이 이혼의 사유가 되고 이혼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이혼할 수 있는 명분은 있지만 무작정 이혼하는 경우는 없다.
여자의 사회적 참여가 많아지는 시대를 살고 있다.
불과 20년전만 해도 남자의 무능력이나 부실은 이혼사유가 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은 남자의 무능력은 뚜렷한 이혼사유라고 할 수는 없다.
현실은 만족의 시대이고 사랑이 더큰 비중이 될 수 있다.
상관견관을 말하다 만족이라는 말과 사랑이라는 의미는 순수함이다,
상관견관은 순수하게 상대를 보살피려는 순정적인 의미도 있다.
상관은 관보다 높다.
아무리 관이 높고 크다해도 어찌되었든 상관은 관보다 높다.
상관은 타육신에 오르고 승차하는데 선수이다.
그러나 상관이 태왕하면 오르고 승차하지 못한다,
그져 관의 부실을 책임져야 하는 숭고한 순정을 보이게 된다.
운로의 상관견관도 이와 흡사하다.
사람의 의식은 변화하고 있다.
아이엠에프시절이 지나며 남자의 부실은 이젠 큰 흉허물이 아니다.
상관견관이 대부분에 책들에는 오만불손하고 남자를 무시하고
천방지축 자기 멋대로 하려는 것으로 목소리 큰 것으로 표현되어 있다.
이런 상관견관은 옛날 이야기가 되어 버린듯 하다.
상관견관은 스스로 낮추고자 한 것인데 상대가 높였다 하는 것이다.
스스로 험한일 마다하지 않고 자처하였는데 이를 꾸짓는 다면 곤란할 것이다.
하여간 여자의 상관견관은 개성의 시대에 생활력을 갖추려는 것이다.
남편이 벌어오는 박봉으로 먹고 산다는 것이 치사한 것이다.
치사함에 벗어나기 위한 과욕된 욕망이니 이를 꾸짓을 수는 있다.
설명을 하다 보니 참 거시기 하다.
상관견관을 예찬하는 것은 좋은데 시대적인 상황에 너무 앞선듯도 하다.
서울 강남이 다르고 강북이 다르고
서울이 다르고 시골이 다른 것이긴 하다.
앞서 상관견관에 대한 의미는 서울 기준이다.
지방에 사는 분들의 의식에서 남자의 무능력은 이혼감일 수 있다.
출처 : 상관견관 이혼? - blog.daum.net/0246146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