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째 띠는 토끼이며, 묘(卯)라 한다. 때는 아침 해가 정동쪽 방위에 불끈 솟아올라 찬란하게 대지를 밝히는 아침 5시부터 7시 사이다. 인(寅)에서 하늘 문을 열고 나온 뭇 생물이 기지개를 켜고 성숙해지는 기운이 천지에 가득한 음력 2월, 이른 봄의 따사로운 햇빛이 추위를 서서히 밀어내는 시기다.
초목은 여리고 부드러운 싹을 틔워 부지런히 성장하고, 모태를 벗어난 아이가 무럭무럭 자라서 소년시절을 보내는 것과 같다. 아직 어리고 가냘픈 싹이나 아이나 병아리처럼 순진해 보이지만, 추위를 밀어내는 봄기운처럼 어떤 어려움도 이겨내는 인내와 솟구치는 기세가 대단해서 가슴 속에 뜨거운 욕심이 도사리고 있다.
피어나는 기상은 화려함을 좋아하고, 뜻대로 되지 않으면 심한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해 오기가 발동해서 미친 듯한 행동도 서슴지 않는다. 하지만 묘도 인처럼 천성이 어진 목기(木氣)이기 때문에 측은지심이 내면에 자리잡고 있어서 베풀기도 잘한다.
묘(卯)의 기질은 아직 추위가 남은 이른 봄기운이 여름을 향해 열기를 더해 가듯이, 성숙해지는 육신의 정력이 맹렬하게 타오르므로 이성을 동경하고 그리워하며 애욕을 참지 못한다.
정(精)은 응축된 생명의 기질일 뿐만 아니라 육체를 성장시키는 밑거름이자 번식을 위한 생식기의 원천이다. 그러므로 정력이 떨어지면 육신이 쇠퇴하고 고갈되면 번식도 할 수 없으며 죽음으로 돌아간다. 이처럼 중요한 부분을 담당하는 정기는 늙어 죽음에 이르기까지 말초신경을 자극해서 끊임없이 색욕을 밝힌다.
만일 묘와 같은 성질인 쥐띠 자가 팔자에 또 있으면 더욱 분명하게 색욕의 기질이 나타난다. 스스로 억제할 수 없는 성욕 때문에 복잡한 이성 관계를 맺게 되며 그로 인해 생식기에 무서운 병을 앓기도 한다.
생명의 근원이 정액이며, 이것은 여성의 자궁속 양수처럼 어두운 음기(陰氣)의 물과 양기(陽氣)가 화합해서 생출되었으므로 그 기질대로 종족을 번식시켜 나간다. 종족의 번식은 정액을 대물림하는 것이므로 생명의 연속이며 그 자신의 분신으로서 자식의 대(代)가 끊어지지 않는 한 불멸이다. 모든 민족이 각기 같은 피부 색깔과 생김새, 성질 등의 특징이 변하지 않고 내림해온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런데 천하만물을 탄생시킨 하늘의 이치는 지극한 사랑이 근본이다. 그것은 순백(純白)으로 묘사되는 힌두교의 아트만(Atman)의 세계이요, 불교의 법(法)이요, 유교의 인(仁)이며, 도교의 도(道)에 해당된다.
필자가 몽골 한림원에서 종교철학 상(上)박사 학위를 받고난 뒤, 몽골 교수들에게 십이지상을 강의하던 중 토끼 머리를 한 관세음보살 대목에 이르러, 티벳과 같은 몽골의 라마(lama) 불교에서 채택하고 있는 탄트라(tantra) 섹스 수행법을 아느냐고 질문한 적이 있다.
강의실에는 상당한 위치의 승려들도 몇 있었는데, 모두 아내를 두고 있는 그들도 나의 질문에 선뜻 대답하려 하지 않았다. 그 다음에 아바로키테스바라(Avalokite-svara, 관세음보살)가 섹스하고 있는 모습의 불상(佛像)을 만들어 불단에 높이 올려놓고 거기에 왜 경배하느냐고 물어보았더니 역시 대답이 없었다.
인도 엘로라 아잔타의 수많은 석굴에는 부처를 모신 성전이 있는데, 그곳에는 상상하기 어려운 섹스 체위까지 조각돼 있다. 왜 이런 조각들이 불상(佛像)과 함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길 것이다. 또 남인도에 가면 거대한 바위로 여성의 성기를 조각해놓고 그 위에 아름드리 남성의 성기를 꽂아 남녀간 교합하는 모습을 실감나게 재현한 것도 있다. 인도인들은 그곳에 꽃을 뿌리고 합장하여 탑돌이하듯 여러 바퀴를 돌면서 고개숙여 경배한다.
대부분의 여행객들은 그것을 보고 실소를 금치 못한다. 이는 남녀의 성기를 천지창조의 지극한 사랑의 본모습으로 인식하고, 여성의 성기에서 흘러나오는 정액의 구멍을 모든 생명의 근원이자 무위(無爲)의 덕을 베푸는 하늘의 문이라 생각하는 인도인들의 정신세계를 이해하지 못하는 무지에서 나오는 반응이다. 그리고 섹스 행위 자체를 추한 것으로 여기는 사람들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데, 그것은 사람들이 지극한 사랑을 경험하지 못하고 육신이 이끄는 애욕에만 치우쳐왔기 때문에 스스로 부끄러워하고 추하게 느끼는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불단에 놓인 섹스하는 신상(神像)이 관세음보살이라 하였더니 기겁을 하며 부정하려 했다. 관세음보살을 그저 자비로운 구원의 신으로만 믿어온 마음도 마음이려니와 사랑의 본성을 모르고 무조건 터부(Taboo)시 하려 들기 때문이다.
여하튼 섹스는 무한한 사랑과 덕으로부터 시작된 천지창조의 이치를 따르는 신성(神性)의 의미가 있다는 것을 유념하면, 섹스 신상의 교훈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사랑이란 말도 한번 짚어보기로 한다. 사랑은 우리 한민족의 토종언어로, 보편적인 러브(love)와는 차원을 달리한다. 우리 말은 소리글자이자 뜻글자이기 때문에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깊은 의미가 담겨 있는데, ‘사랑’이란 말에서 ‘사’는 물이자 음기(陰氣)이며 ‘랑’은 태양의 빛이라는 뜻인 ‘라’의 변음으로 빛이고 양기(陽氣)다. 결국 물과 빛의 합성어인 사랑은 결국 정액이요, 생명의 질이며, 순수한 본성 자체라 할 것이다. 따라서 사랑한다는 말은 크게 보아 바라는 바 없이 무한한 덕을 베푸는 것이며, 이성 사이에 있어서는 정액의 결합 내지 생명을 너에게 준다는 말이 된다. 그러니 사랑 타령을 함부로 하는 사람들은 좀 곱씹어봐야 할 말이 아닌가 싶다.
아무튼 정액은 모든 것을 포괄한 생명의 기운임이 분명하므로, 정액을 함부로 낭비하는 것은 자신의 귀중한 정기(精氣)를 허공에 흩어놓는 어리석은 짓이며, 사랑의 의미를 훼손하여 도의 근본을 깨뜨리는 무질서라 하겠다.
그래서 붓다는 사랑이 없는 간음보다는 차라리 벌겋게 달아오른 화로를 끌어안는 것이 낫다고 말하고, 예수는 음욕한 마음을 네 눈이 품게 하였으면 눈을 빼버리라는 극단적인 표현도 마다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로 보아 도의 순수함을 어지럽히고 생명의 기운을 예사롭게 흩뜨려놓는 것이 얼마나 그릇된 행위인지 가늠할 수 있다.
어찌되었건 애욕을 참지 못하는 기질에다 배속시킨 토끼는 어린 아이와 여린 새싹처럼 순진무구한 짐승이면서도, 색기(色氣)의 대명사로 널리 알려질 만큼 시도 때도 없이 섹스를 즐기고 수시로 새끼를 낳는 짐승이다.
사람이 색을 밝히는 것도 토끼의 그런 생명 인자가 몸 속을 흐르고 있다는 증거이며, 관세음보살이 토끼 얼굴에 도끼를 손에 들고 있는 것도 인간의 그릇된 애욕을 상징하면서 기필코 끊어야 한다는 교훈을 주고 있는 것이다.
최근에 필자는 ‘소설 도덕경’을 집필하면서 섹스수행법을 기술하였는데, 육신의 애욕 때문에 허물어져가는 한 인간의 이야기와 사랑의 화합으로 생명을 보존하는 수행법을 제시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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