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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 2,382건
   
스티브 잡스 사주
Mr.대산 2017-10-06 (금) 15:35 조회 : 8940





 
寅月에 태어난 丙火  편인격에
일지 월간에 식신 년지에 상관까지 두어 식상이 태과한 사주다.
시지 유금으로 식신생재구조도 가지고있으며  매우 신약한 사주이다.
 
일단 월지 편인의 편인격사주.
이별 고독 재난 등을 의미하는 흉성으로 편인격사주중에
양부모님 사랑 따뜻하게 받으며 해맑게 자란 사람은 별로없다.
주로 부모님이 어렸을때 이별해서 한부모아래 자라든가
아예 친부모와 떨어져 친척집등 타가양육되는 경우도 많다.
스티브 잡스는 미혼이었던 친모가 태어나자마자 입양을 보냈다.
아기들은 본능적으로 뭘 아는걸까.
입양사실은 성인이 된 뒤에나 알았다는데도
성격자체가 편인격스럽게 우울하고 회색빛이었던것같다.
편인격은  세상을 불신하고 사람들을 잘 믿지못한다.
대체로 태어나서부터 사랑받고 보호받아야할 가장 가까운 사람 부모에게서
애초에 거절당하거나 혹은  냉담한 부모에게서 자라나는경우라서 그렇다.
한국식으로 말하자면 '따뜻한 밥'을 먹고자라지못한경우이다.
친엄마가 내자식 입으로 밥넘어가는거 보기만해도 행복해서
맛있게 해서 먹여야지 하는 마음으로 금방 지은 따뜻한 밥을 차려서 주고
그런밥 먹고 자란사람이 정인이라면
무슨 사정때문이더라도 금방하지않은 밥, 밥솥에 몇시간 들어있던밥
또는 차가운밥을 전자렌지에 돌려서 뎁혀먹는 밥, 아니면
식당에서 사먹는밥, 배달시켜먹는밥
그런 밥을 먹고자란것과 같은 사람이 편인격이다.
그래서 조금 세상을 삐딱하게 보는면이 있고
누구라도 쉽게 신뢰를 하지않고 의심하며,
생각이 많고 눈치 빠르고  무엇보다 조금 염세적으로  삶을 바라보는 관점이 있다.
조금 차갑다고할수있다.
이런 점은 편인격과 무인성의 공통점이기도한데,,
누가 죽었다는 사연에 가슴을 찢으며 우는 사람을 보면
' 원래 모든 사람은 죽는거 아닌가?
저 사람은 영원히 살거라고 기대한건가?' 라는 반응이 나온다.
좀 사람이 차가운 편이다. 편인격이나 무인성이나.
 
일간이 지지에 뿌리가 약하고 온통 일간의 힘을 빼는 식신상관이 태과하여
자연히 편인이지만 사주구조상 용신이 되는 구조이다.
편인도 편인나름이다.
편인이 기신일때와 편인이 용신 희신일때는 하늘과 땅차이라고나할까.
일간이 극신약하여 편인이 용신되면  그럴때 편인은
편인의 재능과 장점이 그대로 천재성으로 드러난다.
식상이 강하여 상관의 성향이 지나치게 강한것이나
편인을 용신하는것이나
이런 흉신들이 묘하게 조합이 되면 쉽게 말해 '천재'의 사주가 성립된다.
그냥 편인과 상관만 둘다본 경우도 머리가 보통 잘돌아가는것이 아닌데
상관이 굉장히 강하고 편인으로 용신을 삼는 경우는
천재중에서도 1%안에 드는 천재라고 할수있다.
히틀러가 이런 비슷한 형태의 사주를 가지고있다.
히틀러는 독재자이기전에 엄청난 지략을 가진 전략 전술가였다.
용신이되는 편인에게서 나오는 독특한 발상과 창의력 혁신을
태과하게 발달한 상관으로 뽑아낸다.
 
원래 명리학에서는 이렇게 신약하고 상관발달한 사주를
매우 나쁜사주라고 말한다.
성공할 가능성도 없고 인격도 형편없는 인간에
육친간에 복도없고 일찍죽는 사주라고한다.
고전 명리학은 신약한 사주는 모두 천한 사주라고 표현한다.
재다신약도 천하고 식상다신약도 천하고 관다신약도 천하고
거지사주 범죄자사주 창녀사주 사기꾼사주 라고 말한다.
아마도 옛날에는 이런 머리를 가지고 천하게밖에 살수없는 세상이었는지도모른다.
하지만 현대에는 부모로부터 큰 혜택을 보지않고
스스로 성공하고 출세한 사람들을보면 하나같이 신약에
흉신천지에 파격에 탁한사주들이 90% 이상이다.
미국대통령사주도 한국대통령사주도 또 세계 십대재벌들도
수천억원을 번 연예인이나 스포츠스타들도 죄다 파격에 탁하고흉신에
신약사주들이다.
뭐 그렇다고 고대 명리학 교과서들에서 없는 소리 거짓말을 한것은 아니다.
단지 시대가 너무 달라졌기때문에 같은 사주가 전혀 다르게 살고있을뿐이다.
식상이 태과한 사주는 성격이 별로 좋지않다고한다.
자신이 잘났다는 생각으로 가득차있고 남들은 나보다 못하다고 생각을한다고 말한다.
전혀 없는 말은 아니다.
상관은 오만함이 큰 특징인데,
그걸 그런데 욕할수만 없는것이,
쥐뿔도 없으면서 오만하면 정신병 과대망상이겠지만
실제로 본인이 잘났으니 오만한것은  주제파악을 잘하는 사람이 아닐까.
모든 사주 내격 외격 뭘로갖다가 비교해도 격중에 가장 똑똑한 머리를 가진 사주는
상관격과 편인격이다.
공부로해도 그렇고 창의력으로해도 그렇고 뭘로 가지고 붙어도 그렇다.
그렇게 똑똑한 사람들이 특별한 인성교육과 훈련과 수양을 거치지않는한
본인이 잘났다 생각하고 남들은 나만못하다 생각하는것은
지극히 객관적인 상황판단일뿐이다.
뭐가 똑똑하냐고 물으면 스티브잡스가 답이다.
이런 사람이 똑똑하지않으면 누가 똑똑한것인가.
아무튼 상관이 지나치게 발달하면 오만하고 타인별로 존중안하고
잘 싸우려는 성질까지도있다.
호승심이라고 원래 상관이 정관을 상하게한다고해서 상관이라는 이름이붙었으니
세상의 룰이나 웃사람이나 등등 존중해줘야 하고 고개 숙여줘야할 분들에게
바락바락 대들고 독설아님 돌직구 찍찍 날리고 하니
옛날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에는 상관발달 사주를 천한것이라고 했던것이다.
실제로도 스티브 잡스 성격은 엄청난 집념의 소유자이며
뛰어난 지능,재능, 창의력의 소유자이긴했지만
성격적으로 주변사람들과 온화하게 잘 어울린다는 평은 없다.
오히려 그반대라고한다.
본인이 만든 회사에서 쫓겨났던것도 같이일하는 사람에게 너무 지나치게
찔러대고 마구 말하고 험하게 한 탓도 있고 그래서 인심을 잃었다는 말도있다.
충분히 그럴만하다고본다.
보면 모든 분야 곳곳에 뭔가 자신의 분야에서 최고라고 자칭타칭할수있는 사람중에
성격 괴팍하지않은 사람이 있던가.
없다.
성격 좋고 인격자들은  그런 동네에 있지않고 조직속에서 사람들 관리하는 관리자로산다.
또 이런 사주들은 육친의 복도 별로없다.
부모형제 남편 부인 자식 등등 이런 가족관계도 평탄한사람도 거의없다.
천재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원래 이런사람들인것이다.
가화만사성하고 수신제가치국평천하하고 법없이도 살 사람에 인격자에
겸손하고 온화하고  만면에 미소 머금은 그런 사람은
오백년을 노력하고 노력해도 천재가 될수가없다.
그냥 성실하게 틀안에서 있는거 가지고 열심히는 살겠지.
스티브잡스는 자신의 아이를 가진 여자도 버린사람이다.
그 아이도 세월이 많이지난다음에 친자로 인정해주었다.
그리고 친부모가 어디서 뭐하는 사람들인지도 나중에 다 알고 찾았지만
한번도 연락하지않고 모르는 사람처럼 살았다고한다.
나이도 비교적 젊은 나이에 갔고..
특히 스티브잡스는 편인격에 위로 옆으로 식신을 바로 대하고있는것이 흉하다.
편인도식이라고한다.
식신은 원래 의식주과 건강 수명을 주관하는 길신 복신인데
흉신인 편인이 그 식신을 상하게해서 의식주와 건강에 문제가 생긴 인생이라는 말이다.
의식주에 문제가 생겼다는것은 친부모로부터 보호받지못하고 입양된것과도 관련이 있고
건강문제도 잠재된 바이러스처럼 잠복하고있는셈이다.
 
자수 정관대운에 상관견관이 일어나 명예손상 관재구설 직장퇴사같은
일이 일어나는데 이때 본인이 만든 회사 애플에서 쫓겨났을때이다.
유금 정재대운에 강한 식상이 식상생재를해서 엄청난 성공을 거두고 많은 돈을 벌었지만
시지의 유금과 유유자형이 되면서 췌장암이 발병했다.
2011년 신묘년 지지에 인묘진 목국을 이루면서 편인이 식신을 삼켜버리고
사망했다.
 
전에 나에게 스티브잡스와 한글자빼고 거의비슷한 사주를 가진 분이
직장인인데 너무너무 사업이 하고싶어서 죽겠다며 사업을 해도되겠냐고 물어보셨는데
이전에 다른곳에서 사주상담을 여러번 받았지만 다 실패할거라며
직장이나 잘 다니라고들었다하셨다.
내가 볼때는 좀 이해가 안가는것이,
이런 성격과 재능을 가진 사람더러 직장인을 하라고하는게 적절한 조언인가 하는 부분이다.
아마도 그분들은 바로 앞에 다가올 몇년 대운이 길운이 아니기때문에
실패할테니 하지말라고 하셨겠지만,
그렇게 따지면 세상에 사업가중에 처음부터 실패 한번도 안하고 계속 성공만한
사업가가 존재하는가말이다.
스티브잡스 본인도 말했듯이 대학다니다가 중퇴한것과
서른살에 애플에서 쫓겨난것이 그의 삶에 엄청난 도움이 되었고 잘한일이었다고했는데
그런것을 거치고 겪어야 그 다음대운의 성공도 따라오는것이지
안넘어지고 안다쳐보고 어떻게 성공을 하겠는가말이다.
또 성공과 실패는 그렇다치고  저렇게 생긴 사주 저렇게 생긴 성격을 가지고
지루하고 단순한 업무의 직장생활을 죽을때까지 하면서 살으라는것은
너무나 심한말아닌가.
원숭이를 닭장같은데 넣어두고 모이쪼면서 살라고하는것과 뭐가 다른지모르겠다.
 
사람은 자기답게 살때 가장 살맛이 나고 빛이 난다.
편인격이나 상관격같은 천재과들에게 너는 성격 모난게 큰 흠이야
성격좀 고쳐라 이말은 틀렸다.
그런 성격을 고친다는것은 머리카락에서 힘이 나오는 삼손의 머리카락을 잘라버리는것과같다.
괴팍한 성격 혹은 튀는 성격과 좀 불편한 인간관계같은것은
천재성의 동전의 양면과같은것이다.
그런것이 없으면 재능도없다.
너도나도 다같이 모두가 공장생산품처럼 무난한 성격 50점  폭넓은 대인관계 50점 이런식으로
누구나 다 갖추고 살필요는 없는것이다.
세상엔 온갖 모난 사람들이 다 필요하다.
스티브잡스같은 괴팍한 사람이 아니면 오늘날 우리가 핸드폰으로 길에서 인터넷하고 살수있었겠나.
 
스티브잡스가 스텐포드 졸업식에서 했던 연설문인데,
읽으면서 상관발달 사주의 집념과 자기확신 열성같은것을 볼수있어서
나에게는 무척 감동이었다.
 
 
 
 
I am honored to be with you today at your commencement from one of the finest universities in the world.
먼저 세계 최고의 명문으로 꼽히는 이 곳에서 여러분들의 졸업식에 참석하게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Truth be told, I never graduated from college. This is the closest I've ever gotten to a college graduation.
사실, 저는 대학을 졸업하지 못했습니다. 대학 졸업식을 이렇게 가까이서 보는 것도 처음이군요.

Today I want to tell you three stories from my life. That's it. No big deal. Just three stories.
오늘, 저는 여러분께 제가 살아오면서 겪었던 세 가지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별로 대단한 이야기는 아니구요. 딱 세가지만요.
The first story is about connecting the dots.
먼저, 인생의 전환점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I dropped out of Reed College after the first 6 months, but then stayed around as a drop-in for another 18 months or so before I really quit.
전 리드 칼리지에 입학한지 6개월 만에 자퇴했습니다. 그래도 일년 반 정도는 도강을 하다가 정말로 그만뒀습니다.
So why did I drop out?
왜 자퇴했을까요?

It started before I was born. My biological mother was a young, unwed college graduate student, and she decided to put me up for adoption.
그것은 제가 태어나기 전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제 생모는 대학원생인 젊은 미혼모였습니다. 그래서 저를 입양 보내기로 결심했던 거지요.
She felt very strongly that I should be adopted by college graduates, so everything was all set for me!
어머니는 제 미래를 생각해서 대학을 졸업한 사람이 양부모가 되기를 원했습니다.
To be adopted at birth by a lawyer and his wife.
그래서 저는 태어나자마자 변호사 부부에 입양되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Except that when I popped out they decided at the last minute that they really wanted a girl.
그들은 여자 아이를 원했었지만 제가 태어났을 때 마지막 결정을 내렸었지요.
So my parents, who were on a waiting list, got a call in the middle of the night asking:
대기자 명단에 있던 양부모님들은 한 밤 중에 걸려온 전화를 받았습니다.
"We've got an unexpected baby boy; do you want him?"
"어떡하죠? 예정에 없던 사내아이가 태어났는데, 그래도 입양하실 건가요?"
They said: "Of course."
"물론이죠"

My biological mother later found out that my mother had never graduated from college and that my father had never graduated from high school.
그런데 알고보니 양어머니는 대졸자도 아니었고, 양아버지는 고등학교도 졸업못한 사람이어서
She refused to sign the final adoption papers.
친어머니는 입양동의서 쓰기를 거부했습니다.
She only relented a few months later when my parents promised that I would someday go to college.
친어머니는 양부모님들이 저를 꼭 대학까지 보내주겠다고 약속한 후 몇개월이 지나서야 화가 풀렸습니다.

And 17 years later I did go to college.
17년후, 저는 대학에 입학했습니다.
But I naively chose a college that was almost as expensive as Stanford,
그러나 저는 멍청하게도 바로 이 곳, 스탠포드의 학비와 맞먹는 값비싼 학교를 선택했습니다.
and all of my working-class parents' savings were being spent on my college tuition.
평범한 노동자였던 부모님이 힘들게 모아뒀던 돈이 모두 제 학비로 들어갔습니다.

After six months, I couldn't see the value in it.
결국 6개월 후, 저는 대학 공부가 그만한 가치가 없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I had no idea what I wanted to do with my life and no idea how college was going to help me figure it out.
내가 진정으로 인생에서 원하는 게 무엇인지, 그리고 대학교육이 그것에 얼마나 어떻게 도움이 될지 판단할 수 없었습니다.
And here I was spending all of the money my parents had saved their entire life.
게다가 부모님이 평생토록 모은 재산이 전부 제 학비로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So I decided to drop out and trust that it would all work out OK.
그래서 모든 것이 다 잘 될거라 믿고 자퇴를 결심했습니다.
It was pretty scary at the time, but looking back it was one of the best decisions I ever made.
지금 뒤돌아보면 참으로 겁이 나는 순간이었지만, 제 인생 최고의 결정 중 하나였던 것 같습니다.

The minute I dropped out I could stop taking the required classes that didn't interest me,
자퇴를 하니 평소에 흥미없던 필수과목 대신
and begin dropping in on the ones that looked interesting.
재미있어 보이는 강의만 들기 시작했습니다.

It wasn't all romantic. I didn't have a dorm room, so I slept on the floor in friends' rooms,
그렇다고 꼭 낭만적인 것만도 아니었습니다. 전 기숙사에 들어갈 수 없었기 때문에 친구 집 마룻바닥에 자기도 했고
I returned coke bottles for the 5¢ deposits to buy food with,
한 병에 5센트씩 하는 콜라 빈병을 모아서 먹을 것을 사기도 했습니다.
and I would walk the 7 miles across town every Sunday night to get one good meal a week at the Hare Krishna temple.
또 매주 일요일 밤, 한 끼를 위해 7마일이나 걸어서 헤어 크리슈나 사원에 가기도 했습니다.
I loved it. And much of what I stumbled into by following my curiosity and intuition turned out to be priceless later on.
맛있더군요. 당시 순전히 호기심과 직감에 따라 시도했던 일들이 후에 정말 값진 경험이 됐습니다.

Let me give you one example:
예를 든다면
Reed College at that time offered perhaps the best calligraphy instruction in the country.
그 당시 리드 칼리지는 아마 미국 최고의 서체 교육을 제공했던 것 같습니다.
Throughout the campus every poster, every label on every drawer, was beautifully hand calligraphed.
학교 곳곳에 붙어있는 포스터, 서랍에 붙어있는 상표들은 손으로 쓴 서체가 너무 아름다웠구요.

Because I had dropped out and didn't have to take the normal classes,
어차피 자퇴한 상황이라, 정규 과목을 들을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I decided to take a calligraphy class to learn how to do this.
어떻게 그렇게 아름다운 서체가 나오는지 배워기 위해 서체 수업을 듣기로 했습니다.
I learned about serif and san serif typefaces, about varying the amount of space between different letter combinations, about what makes great typography great.
그 때 저는 세리프체와 산 세리프체에 관해서, 서로 다른 문자끼리 조합에서 자간 간격의 조절에 관해서, 멋진 글씨체의 요소에 관해서 배웠습니다.
It was beautiful, historical, artistically subtle in a way that science can't capture, and I found it fascinating.
과학으로 잡아내기 어려운, 아름답고, 유서깊고, 예술적인 섬세함을 느꼈고, 전 그것에 흠뻑 빠졌습니다.

None of this had even a hope of any practical application in my life.
사실, 이 때만해도 이런 것이 제 인생에 어떤 도움이 될지는 상상도 못했습니다.
But ten years later, when we were designing the first Macintosh computer, it all came back to me.
그러나 10년 후 우리가 매킨토시를 처음 디자인할 때, 그것들은 고스란히 빛을 발했습니다.

And we designed it all into the Mac. It was the first computer with beautiful typography.
우리가 설계한 매킨토시에 그것을 모두 집어넣었으니까요. 아마 아름다운 타이포그래피를 가진 최초의 컴퓨터가 아니였나 생각합니다.
If I had never dropped in on that single course in college,
만약 제가 대학에서 그 서체 수업을 듣지 않았다면
the Mac would have never had multiple typefaces or proportionally spaced fonts.
매킨토시의 복수 서체나 자간 간격이 조절된 서체는 없었을 것이고
And since Windows just copied the Mac, it's likely that no personal computer would have them.
맥을 따라한 윈도우도 그런 기능이 없었을 것이고, 결국 PC에는 이런 기능이 탑재될 수 없었을 겁니다.

If I had never dropped out, I would have never dropped in on this calligraphy class,
만약 학교를 자퇴하지 않았다면, 서체 수업을 듣지 못했을 것이고
and personal computers might not have the wonderful typography that they do.
결국 개인용 컴퓨터가 오늘날처럼 뛰어난 타이포그래피를 가질 수도 없었을 겁니다.

Of course it was impossible to connect the dots looking forward when I was in college.
물론 제가 대학에 있을 때는 그 순간들이 내 인생의 전환점이라는 것을 알아챌 수 없었습니다.
But it was very, very clear looking backwards ten years later.
그러나 10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모든 것이 분명하게 보입니다.

Again, you can't connect the dots looking forward; you can only connect them looking backwards.
다시 말해서, 지금 여러분은 미래를 알 수 없습니다 : 다만 현재와 과거의 사건들만을 연관시켜 볼 수 있을 뿐이죠.
So you have to trust that the dots will somehow connect in your future.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현재의 순간들이 미래에 어떤식으로든지 연결된다는 걸 알아야만 합니다.
You have to trust in something - your gut, destiny, life, karma, whatever.
여러분들은 자신의 배짱, 운명, 인생, 카르마 등 무엇이든지 간에 '그 무엇'에 믿음을 가져야만 합니다.
This approach has never let me down, and it has made all the difference in my life.
이런 믿음이 저를 실망시킨 적이 없습니다. 언제나 제 인생의 고비 때마다 힘이 되어 줬습니다.

My second story is about love and loss.
두번째 이야기는 사랑과 상실입니다.
I was lucky I found what I loved to do early in life.
저는 운 좋게도 인생에서 정말 하고 싶은 일을 일찍 발견했습니다.
Woz and I started Apple in my parents garage when I was 20.
제가 20살 때, 부모님의 차고에서 스티브 워즈니악과 함께 애플을 시작했습니다.

We worked hard, and in 10 years Apple had grown from just the two of us in a garage into a $2 billion company with over 4000 employees.
우리는 열심히 일했고, 차고에서 2명으로 시작한 애플은 10년 후에 4000명의 종업원을 거느린 20억달러짜리 기업이 되었습니다.

We had just released our finest creation - the Macintosh - a year earlier, and I had just turned 30. And then I got fired.
제 나이 29살, 우리는 최고의 작품인 매킨토시를 출시했습니다. 그러나 이듬해 저는 해고당했습니다.
How can you get fired from a company you started?
내가 세운 회사에서 내가 해고 당하다니!

Well, as Apple grew we hired someone who I thought was very talented to run the company with me,
당시, 애플이 점점 성장하면서, 저는 저와 함께 회사를 경영할 유능한 경영자를 고용했습니다.
and for the first year or so things went well.
처음 1년은 그런대로 잘 돌아갔습니다.
But then our visions of the future began to diverge and eventually we had a falling out.
그런데 언젠가부터 우리의 비전은 서로 어긋나기 시작했고, 결국 우리 둘의 사이도 어긋나기 시작했습니다.
When we did, our Board of Directors sided with him. So at 30 I was out. And very publicly out.
이 때, 우리 회사의 이사진들은 그의 편을 들었고, 저는 30살에 쫓겨나야만 했습니다. 그것도 아주 공개적으로.

What had been the focus of my entire adult life was gone, and it was devastating.
저는 인생의 촛점을 잃어버렸고, 참담한 심정이었습니다.
I really didn't know what to do for a few months.
전 몇 개월 동안 무엇을 해야 할 지 모르는 채 방황했습니다.

I felt that I had let the previous generation of entrepreneurs down - that I had dropped the baton as it was being passed to me.
마치 달리기 계주에서 바톤을 놓친 선수처럼, 선배 기업인들에게 송구스런 마음이 들었고
I met with David Packard and Bob Noyce and tried to apologize for screwing up so badly.
데이비드 패커드(HP의 공동 창업자)와 밥 노이스(인텔 공동 창업자)를 만나 이렇게 실패한 것에 대해 사과하려 했습니다.
I was a very public failure, and I even thought about running away from the valley.
저는 완전히 '공공의 실패작'으로 전락했고, 실리콘 밸리에서 도망치고 싶었습니다.

But something slowly began to dawn on me.
그러나 제 맘 속에는 뭔가가 천천히 다시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I still loved what I did. The turn of events at Apple had not changed that one bit.
전 여전히 제가 했던 일을 사랑했고, 애플에서 겪었던 일들조차도 그런 마음들을 꺾지 못했습니다.
I had been rejected, but I was still in love. And so I decided to start over.
전 해고당했지만, 여전히 일에 대한 사랑은 식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전 다시 시작하기로 결심했습니다.

I didn't see it then, but it turned out that getting fired from Apple was the best thing that could have ever happened to me.
당시에는 몰랐지만, 애플에서 해고당한 것은 제 인생 최고의 사건임을 깨닫게 됐습니다.
The heaviness of being successful was replaced by the lightness of being a beginner again, less sure about everything.
그 사건으로 인해 저는 성공이란 중압감에서 벗어나서 초심자의 마음으로 돌아가
It freed me to enter one of the most creative periods of my life.
자유를 만끽하며, 내 인생의 최고의 창의력을 발휘하는 시기로 갈 수 있게 됐습니다.

During the next five years, I started a company named NeXT, another company named Pixar,and fell in love with an amazing woman who would become my wife.
이후 5년동안 저는 '넥스트'와 '픽사'라는 회사를 시작했고, 그리고 지금 제 아내가 되어준 그녀와 사랑에 빠져버렸습니다.
Pixar went on to create the worlds first computer animated feature film, Toy Story, and is now the most successful animation studio in the world.
픽사는 세계 최초의 컴퓨터 애니메이션영화 토이스토리를 시작으로, 지금은 가장 성공한 애니메이션 제작사가 되었습니다.

In a remarkable turn of events, Apple bought NeXT, I retuned to Apple, and the technology we developed at NeXT is at the heart of Apple's current renaissance.
세기의 사건으로 평가되는 애플의 넥스트 인수와 저의 애플로 복귀 후, 넥스트 시절 개발했던 기술들은 현재 애플의 르네상스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And Laurene and I have a wonderful family together.
또한 로렌과 저는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있습니다.

I'm pretty sure none of this would have happened if I hadn't been fired from Apple.
애플에서 해고당하지 않았다면, 이런 엄청난 일들을 겪을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It was awful tasting medicine, but I guess the patient needed it.
정말 독하고 쓰디 쓴 약이었지만, 이게 필요한 환자도 있는가봅니다.

Sometimes life hits you in the head with a brick. Don't lose faith.
때로 인생에서 좌절을 겪을 지라도, 결코 믿음을 잃지 마십시오.
I'm convinced that the only thing that kept me going was that I loved what I did.
전 제가 하는 일을 사랑했기에 좌절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고 확신합니다.
You've got to find what you love. And that is as true for your work as it is for your lovers.
당신이 사랑하는 일을 찾아보세요. 사랑하는 사람이 내게 먼저 다가오지 않듯, 일도 그런 것이죠.

Your work is going to fill a large part of your life,
'노동'은 인생의 대부분을 차지합니다.
and the only way to be truly satisfied is to do what you believe is great work.
그런 시간 속에서 진정한 기쁨을 누릴 수 있는 방법은 스스로가 위대한 일이라고 믿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And the only way to do great work is to love what you do.
자신의 일을 사랑하는 것만이 위대한 일을 해내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If you haven't found it yet, keep looking. Don't settle. As with all matters of the heart, you'll know when you find it.
아직 찾지 못했다면 계속 찾아 보세요. 주저앉지 마세요. 전심을 다하면 반드시 찾을 수 있습니다.
And, like any great relationship, it just gets better and better as the years roll on.
일단 한 번 찾아낸다면, 서로 사랑하는 연인들처럼 시간이 가면 갈수록 사랑이 더욱 더 깊어질 것입니다.
So keep looking until you find it. Don't settle.
그러니 그것들을 찾아낼 때까지 포기하지 마세요. 현실에 주저앉지 마세요.

My third story is about death.
세번째는 죽음에 관한 것입니다.
When I was 17, I read a quote that went something like:
17살 때, 이런 문구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If you live each day as if it was your last, someday you'll most certainly be right."
하루 하루를 인생의 마지막 날처럼 산다면, 언젠가는 바른 길에 서 있을 것이다
It made an impression on me, and since then, for the past 33 years! ,
이 글에 감명받은 저는 그 후 50살이 되도록
I have looked in the mirror every morning and asked myself:
매일 아침 거울을 보면서 자신에게 묻곤 했습니다.

"If today were the last day of my life, would I want to do what I am about to do today?"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면, 지금 하려고 하는 일을 할 것인가?
And whenever the answer has been "No" for too many days in a row, I know I need to change something.
아니오!라는 답이 여러 날 계속 나온다면, 다른 것을 해야한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Remembering that I'll be dead soon is the most important tool I've ever encountered to help me make the big choices in life.
인생의 중요한 선택의 순간마다 '곧 죽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명심하는 것이 저에게는 가장 중요한 도구가 됩니다.
Because almost everything ?
왜냐구요?
all external expectations, all pride, all fear of embarrassment or failure -
외부의 기대, 각종 자부심과 자만심. 수치스러움와 실패에 대한 두려움들은
these things just fall away in the face of death, leaving only what is truly important.
'죽음' 앞에서는 모두 밑으로 가라앉고, 오직 진정으로 중요한 것만이 남기 때문입니다.

Remembering that you are going to die is the best way I know to avoid the trap of thinking you have something to lose.
죽음을 생각하는 것은 무엇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서 벗어나는 최고의 길입니다.
You are already naked. There is no reason not to follow your heart.
여러분들이 지금 모두 잃어버린 상태라면, 더이상 잃을 것도 없기에 자신의 마음에 충실할 수 밖에 없습니다.

About a year ago I was diagnosed with cancer.
저는 1년 전쯤 암진단을 받았습니다.
I had a scan at 7:30 in the morning, and it clearly showed a tumor on my pancreas.
아침 7시 반에 검사를 받았는데, 이미 췌장에 종양이 있었습니다.
I didn't even know what a pancreas was.
그전까지는 췌장이란 게 뭔지도 몰랐는데요.

The doctors told me this was almost certainly a type of cancer that is incurable, and that I should expect to live no longer than three to six months.
의사들은 거의 확실히 치료가 불가능한 암이라고 했고, 길어야 3개월에서 6개월이라고 말했습니다.
My doctor advised me to go home and get my affairs in order, which is doctor's code for prepare to die.
주치의는 집으로 돌아가 신변정리를 하라고 했습니다. 죽음을 준비하라는 뜻이었죠.
It means to try to tell your kids everything you thought you'd have the next 10 years to tell them in just a few months.
그것은 내 아이들에게 10년동안 해줄수 있는 것을 단 몇달 안에 다 해치워야 된단 말이었고
It means to make sure everything is buttoned up so that it will be as easy as possible for your family.
가족을 위해서 모든 것을 정리하란 말이었고
It means to say your goodbyes.
작별인사를 준비하라는 말이었습니다.
I lived with that diagnosis all day.
전 불치병 판정을 받았습니다.

Later that evening I had a biopsy, where they stuck an endoscope down my throat,
through my stomach and into my intestines, put a needle into my pancreas and got a few cells from the tumor.
그 날 저녁 위장을 지나 장까지 내시경을 넣어서 암세포를 채취해 조직검사를 받았습니다.
I was sedated, but my wife, who was there, told me that when they viewed the cells under a microscope
저는 마취상태였는데, 후에 아내가 말해주길, 현미경으로 세포를 분석한 결과
the doctors started crying because it turned out to be a very rare form of pancreatic cancer that is curable with surgery.
수술로 치료가 가능한 아주 희귀한 췌장암으로써, 의사들까지도 기뻐서 눈물을 글썽였다고 합니다.
I had the surgery and I'm fine now.
저는 수술을 받았고, 지금은 괜찮습니다.

This was the closest I've been to facing death, and I hope it's the closest I get for a few more decades.
그 때만큼 제가 죽음에 가까이 가 본 적은 없는 것 같습니다. 또한 앞으로도 가고 싶지 않습니다.

Having lived through it, I can now say this to you with a bit more certainty than when death was a useful but purely intellectual concept:
이런 경험을 해보니, '죽음'이 때론 유용하단 것을 머리로만 알고 있을 때보다 더 자신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No one wants to die. Even people who want to go to heaven don't want to die to get there.
아무도 죽길 원하지 않습니다. 천국에 가고싶다는 사람들조차도 당장 죽는 건 원치 않습니다.
And yet death is the destination we all share. No one has ever escaped it.
우리 모두는 언젠가는 다 죽을 것입니다. 아무도 피할 수 없죠.
And that is as it should be, because Death is very likely the single best invention of Life.
삶이 만든 최고의 작품이 '죽음'이니까요.

It is Life's change agent. It clears out the old to make way for the new.
죽음이란 삶의 또다른 모습입니다. 죽음은 새로운 것이 헌 것을 대체할 수 있도록 만들어줍니다.

Right now the new is you, but someday not too long from now, you will gradually become the old and be cleared away.
지금의 여러분들은 '새로움'이란 자리에 서 있습니다. 그러나 언젠가는 여러분들도 새로운 세대들에게 그 자리를 물려줘야할 것입니다.
Sorry to be so dramatic, but it is quite true.
너무 극단적으로 들렸다면 죄송하지만, 사실이 그렇습니다.
Your time is limited, so don't waste it living someone else's life.
여러분들의 삶은 제한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의 삶을 사느라고 낭비하지 마십시오.

Don't be trapped by dogma - which is living with the results of other people's thinking.
다른 사람들이 생각한 결과대로 사는 것, 즉 도그마에 빠지지 마십시오.
Don't let the noise of other's opinions drown out your own inner voice.
타인의 잡음이 여러분들 내면의 진정한 목소리를 방해하지 못하게 하세요

And most important, have the courage to follow your heart and intuition.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과 직관을 따르는 용기를 가지는 것입니다.
They somehow already know what you truly want to become. Everything else is secondary.
이미 마음과 직관은 당신이 진짜로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있습니다. 나머지 것들은 부차적인 것이죠.

When I was young, there was an amazing publication called The Whole Earth Catalog, which was one of the bibles of my generation.
제가 어릴 때, 제 나이 또래라면 다 알만한 '지구 백과'란 책이 있었습니다.
It was created by a fellow named Stewart Brand not far from here in Menlo Park, and he brought it to life with his poetic touch.
여기서 그리 멀지 않은 먼로 파크에 사는 스튜어트 브랜드란 사람이 쓴 책인데, 자신의 모든 걸 불어넣은 책이었지요.

This was in the late 1960's, before personal computers and desktop publishing, so it was all made with typewriters, scissors, and polaroid cameras.
PC나 전자출판이 존재하기 전인 1960년대 후반이었기 때문에, 타자기, 가위, 폴라로이드 카메라로 그 책을 만들었습니다.
It was sort of like Google in paperback form, 35 years before Google came along:
35년 전의 책으로 된 구글이라고나 할까요.
it was idealistic, and overflowing with neat tools and great notions.
그 책은 위대한 의지와 아주 간단한 도구만으로 만들어진 역작이었습니다.

Stewart and his team put out several issues of The Whole Earth Catalog, and then when it had run its course, they put out a final issue.
스튜어트와 친구들은 몇 번의 개정판을 내놓았고, 수명이 다할 때쯤엔 최종판을 내놓았습니다.
It was the mid-1970s, and I was your age.
그 때가 70년대 중반, 제가 여러분 나이 때였죠.
On the back cover of their final issue was a photograph of an early morning country road,
최종판의 뒤쪽 표지에는 이른 아침 시골길 사진이 있었는데,
the kind you might find yourself hitchhiking on if you were so adventurous.
아마 모험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히치하이킹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지요.
Beneath it were the words: "Stay Hungry. Stay Foolish."
그 사진 밑에는 이런 말이 있었습니다 : 배고픔과 함께, 미련함과 함께
It was their farewell message as they signed off. Stay Hungry. Stay Foolish.
배고픔과 함께, 미련함과 함께. 그것이 그들의 마지막 작별인사였습니다.

And I have always wished that for myself. And now, as you graduate to begin anew, I wish that for you.
저는 이제 새로운 시작을 앞둔 여러분들이 여러분의 분야에서 이런 방법으로 가길 원합니다.
Stay Hungry. Stay Foolish.
배고픔과 함께. 미련함과 함께
Thank you all very much.
감사합니다.
 
 
 
 
출처 : 사주8자 - blog.naver.com/koolleza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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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 평안북도 삭주 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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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주첩경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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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3년 출생
중앙대 법대 졸업
故 자강 이석영선생님의 계승자
한국역학교육학원 원장
한국역학인총회 총재
前 한국 역학계의 태두(泰斗)
원제 임정환
성균관대학교 법학과 졸업
벽천 김석환 선생 사사
한국역학교육학원 강사역임
MBC 문화센터 강사 역임
한국역학인총회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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