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BA 출신 vs 계룡산 출신? / 조용헌 |
주르르루주르르루
2017-10-07 (토) 09:00
조회 : 1387
|
|
점(占)은 왜 존재하는가? 한마디로 말해 '미래욕'(未來慾) 때문이다. 인간은 미래를 알고 싶어하는 특이한 동물이다. 이 세상에 자기 앞일을 알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겠는가? 식욕.색욕.수면욕이 인간의 3대 욕구라고 한다면, 미래욕은 그 다음의 4대 욕구에 포함될 정도로 강력한 욕망이다.
수요가 있으면 공급이 따르게 마련이다. 미래욕을 충족시켜주는 점쟁이는 깊은 뿌리를 가진 직업 중 하나다. BC 3천년께부터 있었다는 직업이 점쟁이다. 아직 구조조정도 없고 명예퇴직도 없는 직업이다. 실력만 있으면 흰머리가 늘수록 비례해서 복채(?)가 증가하는 직업이다.
미래의 상황을 예언한다는 측면에서 보자면 주식시세 예측하는 기술 하나 가지고 밥먹고 사는 애널리스트나 펀드 매니저도 모두 '점쟁이 과(科)'에 속한다. 21세기의 가장 세련된 점쟁이가 이들이다. 단지 포장지만 다르다. 미국에 가서 MBA라는 과정을 밟으면 '애널리스트'가 되고, 계룡산 토굴에서 정진하면 점쟁이 딱지가 붙는다. 중요한 것은 포장지가 아니라 내공이다. 내공은 예측의 정확도에서 나온다.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과거 선배들의 역사를 탐구해 볼 필요가 있다. 동서와 고금을 막론하고, 점쟁이들이 예측의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 5천년 가까이 축적해온 노하우는 다음의 세가지로 압축된다.
첫째는 인과의 법칙이다. 이 세상에 원인 없는 결과는 없다. 따라서 원인을 알면 미래에 닥칠 결과를 미리 예측할 수 있다. 물리학에서 말하는 카오스(chaos) 원리가 좋은 예다. 베이징(北京) 상공에서 나비가 날갯짓을 한 여파가 캘리포니아 상공의 비구름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이 카오스 원리다. 예리한 술사는 나비의 날갯짓을 주목한 다음, 며칠 후의 비구름을 예측한다. 모르면 카오스로 보이지만 인과를 알면 코스모스로 받아들인다. 추사 김정희가 7~8세 때 대문 밖에다 써놓은 '입춘대길'을 보고 지나가던 영의정 채재공이 집에 들어와 "저 애는 글씨로 대성하겠다"고 예언한 것도 미세한 인(因)을 보고 미래의 과(果)를 예측한 것이다. 미국의 케네디 대통령 아버지가 점심을 먹고 사무실 밖에 나와서 구두를 닦다가, 구두닦이에게서 "나도 주식을 샀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케네디 아버지는 그 말을 듣자마자 한쪽 구두도 덜 닦은 채 부랴부랴 사무실 빌딩으로 올라갔다. 회사가 가지고 있는 전 주식을 팔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며칠 후에 미국의 주식은 대폭락했지만, 케네디 아버지 회사는 엄청난 돈을 벌었다고 한다. 구두닦이까지 주식을 샀다는 말을 듣고 주식 폭락의 징조를 신속하게 감지했던 것이다.
뛰어난 점술가는 사건 초기 단계의 미세한 움직임을 놓치지 않고 포착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감각을 아주 예민하게 다듬어야 한다. 소주에 삼겹살 많이 먹으면 감각이 마모된다. 감각이 예민해지면서 정신이 집중되면 꿈이 정확해지는 현상이 나타난다. 즉 선견몽(先見夢)을 꾸게 된다. 성공한 사업가 부인들 가운데는 영몽(靈夢)을 꾸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부인의 내조 가운데 몽조(夢助.꿈으로서 도와줌)도 무시할 수 없다.
둘째는 반복의 법칙이다. 규칙적인 반복현상은 예측을 가능하게 한다. 밤과 낮, 사시사철의 순환이 바로 그것이다. 유사 이래로 밤에서 낮으로, 낮에서 밤으로의 반복이 한번이라도 고장난 적은 없다. 봄.여름.가을.겨울의 순환도 마찬가지다. 적벽대전에서 제갈공명이 갑자기 동남풍을 불러일으킨 사건도 그렇다. 공명은 재야에서 공부하면서 1년 3백65일의 일기변화를 관찰한 데이터를 수십년 동안 축적했고, 이 데이터에 의해 매년 그때쯤이면 바람이 방향을 바꿔 동남쪽에서 불어온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모르는 사람이 볼 때는 공명의 '기도발'로 동남풍이 분 것이지만, 축적된 데이터를 가지고 있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반복의 원리를 이용한 것이다.
음양오행은 이러한 반복현상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것이다. 사주명리학의 이론적 체계는 음양오행이고, 음양오행은 자연현상의 반복에서 도출된 개념이다. 반복되는 자연현상을 인간의 기질과 길흉화복에까지 연결시킨 것이 사주다. 예를 들어보자. 봄은 목(木)에 해당하고, 목은 인정 많고 적극적인 기질이 있다고 해석한다. 여름은 불(火)이고, 불은 예의가 바르고 판단이 전광석화처럼 빠르다. 가을은 금(金)이고, 금은 의리가 있고 결단력이 있다. 겨울은 물(水)이고, 물은 꾀가 많고 융통성이 있다고 해석한다. 음양오행을 좀더 확대 적용한 것이 십간(十干)과 십이지(十二支)다. 십간은 왜 10인가? 지구에 영향을 미치는 태양계 내의 별이 10개이기 때문이다. 십이지는 일년이 열두달이기 때문이다. 행성 10개의 움직임과 열두달의 변화는 규칙적이다. 이 규칙적인 움직임을 도표화한 것이 10간 12지이고 60갑자라고 생각한다. 이 60갑자의 규칙적인 순환에 의해 매일 매일의 날짜를 기록해 놓은 것이 만세력이다. 서양 점성술에서는 출생 당시의 각 별자리 위치, 즉 천궁도( Horoscope)를 일일이 작성해야 하지만, 사주는 그 천궁도가 60갑자로 간편하게 도표화돼 있기 때문에 만세력만 보면 된다. 종합하자면 사주는 반복의 원리를 이용한 점술이다.
셋째는 귀신의 존재다. 귀신이 앞일을 알려준다. 문제는 귀신이 과연 존재하는가다. '업계'에서는 존재한다고 본다. '주역'의 '계사전'을 보면 '귀신합기길흉'(鬼神合其吉凶)이라고 해서 길흉을 알려면 귀신에게 물어 보아야 한다고 돼 있다. 한자 문화권에서는 귀신을 전제하고 있다. 귀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 수많은 접신(接神)과 빙의(憑依) 현상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접신된 무당이 그 사람의 전화 음성만 듣고도 앞일을 예언하는 것은 귀신이 알려주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귀신도 등급이 있다. 등급이 낮은 무식한 귀신이 접신되면 잘 맞지 않는다. '귀신같이 거짓말한다'는 말도 있는 것처럼, 실력 없는 귀신은 곧잘 거짓말을 하게 마련이다. 인과.반복.귀신 이 세가지가 점의 원리다. 점쟁이는 이 세가지를 모두 사용하고, 애널리스트는 첫째.둘째 것만 사용한다는 차이점이 있다.
조용헌 원광대 초빙교수 2003.09.18
출처 : MBA 출신 vs 계룡산 출신? / 조용헌 - cafe.daum.net/dur6fk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