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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두 가지 띠 동물에 대한 분석적 이해
주르르루주르르루 2017-10-07 (토) 08:59 조회 : 1525

◈  열 두 가지 띠 동물에 대한 분석적 이해.

 
(1) 쥐[子]
 
한국인이 가지고 있는 쥐에 대한 관념은 다양하게 나타난다.'영리하다' '재빠르다' '머리가 좋다'라는 일반적인 관념 외에 어떤 재앙이나 농사의 풍흉, 뱃길의 사고를 예견해 주는 영물로 인식하기도 했으며 이와 상반되게 농작물에 피해를 입히는 동물로 인식하고 있다.
또한 구차하고 하찮은 존재를 비유하는 의미로 쓰였다. 쥐는 때때로 고양이와는 대조적으로 약자를 대변해 주고 있는 듯하다. 약자는 영리하며 천성이 착하나 구차하게 가난하다.
강자는 무식하고 덩치가 크고 많은 재력을 소유하고 있다.여기서 쥐의 이미지는 약자의 이미지를 대변한다.
 
민담 속에서 은혜를 갚은 쥐나 사람의 출세를 도운 쥐이야기, 어려운 문제를 해결해 주는 쥐이야기 등은 이런 맥락 속에서 이해할 수 있다.
쥐에 대한 긍정적인 의미는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① 신성성(神聖性)과 예지성(豫知性) : 무덤의 수호신, 사금갑조, 상자일의 근신, 뱃길의 안전과 농사의 풍흉을 결정하는 마을 수호신(해안도서 지방), 서도신사(鼠島神祠), 물과 불의 근원을 알려준 영물, 고대 아테네 신전에서는 쥐에게 치유의 힘이 있다고 믿었다.
 
② 다산성(多産性) : 쥐는 생물학적으로 왕성한 번식력을 가지고 있으며 그로 인해 사람들에게 다산과 풍요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복장을 지키는 동물, 쥐띠가 밤에 태어나면 좋다.
 
③ 근면함(勤勉)과 재물(財物)·부(富)의 상징 : 쥐는 어느 곳이나 민첩하게 드나들 수 있는 강한 활동력을 가지고 있다. 상자일 풍속이나 쥐불놀이, 쥐와 관련된 주문이나 풍속에서 풍작 기원 대상으로 인식되었다. 결국 쥐 또는 아들의 뜻을 가진 子는 '계속하다, 작다, 불어나다'라는 핵심적인 뜻을 지니게 되었다. 사람들은 이러한 쥐의 활동력을 비유해서 집안에 처음 들어온 사람에게 집 구석구석을 보여주는 일을 '쥐바람쐬기'라고도 부른다. 쥐의 민첩성은 자연스럽게 근면성을 연상시켰고, 이렇게 연관된 개념으로 쥐가 부의 상징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쥐가 근면과 부의 상징이라는 인식은 속담뿐만 아니라 여러 민담을 통해서도 전해지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혼쥐이야기'다. 근면함이 결국은 부(富)라는 행운의 열쇠가 되었다는 인식이다.
 
④ 지혜의 정보체와 현명함 : 물과 불의 기원을 미륵에게 가르쳐 주었는가 하면 어려운 문제를 척척 해결하는 많은 사실들을 알고 있는 정보체로서 역할을 해 왔다. '황금구슬찾기' 등 민담 속에서 다른 동물들보다 영리한 동물로 묘사된다. 또한 속담에는 약삭빠르고 머리가 뛰어난 사람들을 가리켜 '약기는 생쥐' '얼굴에 생쥐가 오르락내리락한다' 라고 표현했다.
 
⑤ 귀여움 : 새앙쥐는 귀엽고 현명함의 상징으로, 세익스피어나 메어 등의 작품에서 표현되었다. 또 이솝우화 등에서는 영리하고 약한 자의 긍정적 이미지를 가진다. 최근 쥐는 동요, 동화, 만화(미키마우스, 톰과 제리)의 주인공으로도 등장하여 오히려 고양이를 괴롭힌다.
 
쥐는 신성한 동물로 인식되어 왔지만 한편으로는 부정한 동물로 배척 당하기도 했다.
 
① 부정함 : 쥐가 손톱, 발톱을 먹고 그 주인으로 변신해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요물로 등장하는 이야기가 많다. 예로부터 곡간에 쌓아 둔 곡식들을 훔쳐 가지고 땀흘려 농사 지은 곡식을 망쳐 놓았다. 농사가 생활의 중심이던 조상들은 쥐의 피해를 많이 겪었고 그렇기 때문에 쥐는 농사일을 망치는 해악을 가져오는 동물로 인식되었다. 그래서 상자일, 쥐불놀이 등에서 쥐를 퇴치하는 다양한 풍속이 전해진다.
 
② 작고 왜소하고 하찮음 : 우리 속담에서 쥐는 하찮은 것, 왜소한 것 등으로 표현하고 있는것이 많다.
 
③ 도둑·탐욕 : 쥐가 가지는 근면성이 부정적인 면으로 여겨지면 근면성은 탐욕의 이미지로 바뀌어 진다. 쥐는 간신, 수탈자, 부도덕으로 관념화되었다.
 
④ 야행성·재앙 : 쥐가 병을 옮긴다.
 
⑤ 정적 : '쥐죽은듯하다'라는 옛말에서 알 수 있듯이 쥐가 소리내지 않고 다니는 동물이라는 데서
쥐는 정적의 표상이 된다.
 
쥐에 대한 관념을 부정과 긍정이라는 이분법적 결론으로 도출해 내기는 힘들 것 같다. 다만 한국 문화 속에 쥐에 대한 관념은 상황에 따라 시대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났음을 알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우리 조상들은 각 띠동물에 대한 관념과 상징을 각기 독특하게 부여하고 해석해 왔음을 알 수 있다.
 
 

2) 소[丑]

농경 사회인 우리 민족에게 소는 농사일을 돕는 일하는 짐승으로 부와 재산, 힘을 상징한다. 소를 위하는 세시풍속과 놀이에서도 소는 풍요를 가져다주는 동물로, 농가의 가장 중요한 자산으로, 농사의 주역으로 풍부한 노동력, 힘을 의미한다.
 
제주도 삼성혈 신화, 고구려 고분 벽화 등에서는 소가 농사 신으로 인식되고 있다. 새해에는 풍년을 기원하며, 가을에는 한 해 동안 고된 농사일에 대한 위로와 풍년을 가져오게 한데 대한 감사로 소에 대한 각종 풍속과 민속놀이가 행해졌다. "꿈에 황소가 자기 집으로 들어오면 부자가 된다"라는 속신어나 "소의 형국에 묏자리를 쓰면 자손이 부자가 된다"는 풍수지리설 등을 통해서 볼 때 분명 소는 풍요를 가져다주는 부의 상징으로 인식했다.
 
고대 사회부터 소는 주로 제천의식의 제의용이나 순장용으로 사용되었다. 이러한 초기의 풍습은 고려, 조선까지 이어져 풍년을 기원하는 의례에서 소를 제물로 바쳤다.
 
장사하는 집이나 일반 여염집 대문에 소고삐나 소뼈를 걸어 두고 악귀의 침입을 막았다. 외양간에도 잡귀의 침입을 막기 위해 그렇게 했다. 제사를 지낼 때 소를 바침으로써 신으로 하여금 소의 기운을 누리게 하도록 하기 위해 소의 희생을 바치는데 그 희생의 힘으로도 나쁜 악귀를 물리치는 축귀의 힘이 있었다고 믿었다. 국가의 큰 제사나 의례 때, 마을의 별신굿이나 장승제에서 소가 희생의 제물로 쓰였고, 소뼈, 소고삐 등은 잡귀를 쫓는 부적이었다. 소는 부를 불러오고 화를 막아주는 존재였다.
 
소의 성격은 순박하고 근면하고 우직하고 충직하다. '소같이 일한다''소같이 벌어서''드문드문 걸어도 황소걸음'이라는 말은 꾸준히 일하는 소의 근면성을 칭찬한 말로서 근면함을 들어 인간에게 성실함을 일깨워 주는 속담이다. 소는 비록 느리지만 인내력과 성실성이 돋보이는 근면한 동물이다. '소에게 한 말은 안나도 아내에게 한 말은 난다'는 소의 신중함을 들어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말을 조심하라는 뜻이다. 주인의 생명을 구하고자 호랑이와 격투 끝에 죽은 《삼강행실도》의 의우도, 의우총 이야기나 눈먼 고아에게 꼬리를 잡혀 이끌고 다니면서 구걸을 시켜 살린 우답동 이야기에서는 소의 우직하고 충직한 성품을 잘 나타내고 있다.
 
소는 비록 느리지만 근면함과 묵묵함은 유유자적의 여유와 한가로운 대인(大人), 은자(隱者)의 마음이라는 이미지를 수반한다. 소의 모습에는 긴장감이나 성급함을 찾아볼 수 없으며, 순박한 눈동자는 보는 이로 하여금 평화롭고 자적한 느낌을 갖게 한다.
 
평화스럽게 누워 있는 소의 모습, 어미 소가 어린 송아지에게 젖을 빨리는 광경은 한국 농촌에서 흔히 볼 수 있던 풍경으로서 소가 창출해 내는 분위기는 유유자적의 여유, 한가함, 평화로움의 정서이다.
 
한국 문화에 나타난 소의 모습은 고집 세고 어리석은 측면도 있지만, 풍요, 부, 길조, 의로움, 자애, 여유 등으로 축약된다.
 
① 농사신으로서 부·풍요·힘의 상징
② 희생·제물·축귀의 상징
③ 순박·근면·우직·충직의 상징
④ 유유자적의 여유·한가함·평화로움의 상징
⑤ 고집·어리석음·아둔함의 대명사
 

3) 범[寅]
 
① 신화 : 단군신화(조급, 패배)의 범은 곰과 함께 사람이 되고자 원했으나, 조급하여 금기를 지키지 못해 실패했다. 고려 태조의 5대조 '호경이야기'에서 범은 영웅들의 보호자이자 양육자이며 국조(國祖)의 조력자이다.
 
② 무속(산신, 산신의 심부름꾼) : 범 숭배 신앙은 산악 숭배 사상과 융합되어 범이 산신 또는 산신의 사자를 상징한다. 각 지역에서 신봉하는 산신을 모신 산신당의 산신도에는 범이 그려져 있다. 우리 민족에게는 신수(神獸)로 인식되었다. 그런가 하면 영일 강사리 범굿에서는 범에게 물려 죽은 넋을 위로하고, 호환을 방지하기 위해 쇠머리를 뒷산에 묻는 의식을 치른다.
 
③ 벽사 : 병귀나 사귀를 물리치는 힘이 있다(범그림, 범호자 부적).

④ 권세 관직 군대의 상징 : 호랑이의 용맹성은 군대를 상징한다(백호, 맹호 부대)
 
⑤ 보은 : 호랑이는 인간의 효행에 감동하여 인간을 돕거나 인간의 도움을 받으면 은혜를 갚는다. 불교의 산신각 호랑이는 산신의 사자나 산신으로 모셔져 인간의 길흉화복을 관장하고 있다.
 
⑥ 까치 호랑이 그림 : 가장 흔한 호랑이 그림은 까치 호랑이 그림이다. 여기서 소나무는 장수를, 까치는 기쁨을, 범은 보은을 상징한다.
 

4) 토끼[卯]
 
① 문화 영웅적 속임수의 명수 : 호랑이를 속이는 토끼, 자라를 속이는 이야기에서 토끼는 체구가 크고 힘은 강하나 우둔한 동물들에게 저항하는 의롭고, 꾀 많은 동물 구실을 도맡아 한다.
 
② 달 = 여성 = 토끼 : 달의 이칭은 토월(兎月)인데, 달 속의 토끼가 떡방아를 찧고 있는 형상을 하고 있다. 달의 이지러짐과 만월의 주기는 여성의 생리 현상과 동일하다. 달의 차가움이 음(陰)과의 관계 등으로 연상되어 토끼는 여성 원리에 속하는 동물이다.
 
③ 꾀쟁이[智者], 재빠름, 소심함(놀란 토끼) : 일반적으로 토끼는 꾀보 꾀쟁이 재빠름을 상징한다. 그런가 하면 '놀란 토끼 같다'라는 말에서 보듯이 토끼의 소심함과 경망함, 겁쟁이를 이르기도 한다.
 
④ 충성 불로장생 : 토끼는 민첩한 특성 때문에 심부름꾼이나 전령 등의 역할을 자주 맡는다. 이러한 역할은 유교적인 측면에서 충성스러운 동물로 나타난다. 민간 설화에서 옥토끼는 달에 살면서 떡을 찧거나 불사약을 만들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그래서 토끼는 도교적으로 장생불사를 표상한다.
 
⑤ 속신 : 언청이(임산부가 토끼고기를 먹으면 언청이를 낳는다) 상묘일(토끼날 여자가 남의 집 여자나 나무그릇을 집안에 들어오지 않는다)
 
⑥ 유물·유적 그림 : 뒷다리가 튼튼해 잘 뛰므로 나쁜 기운으로부터 잘 달아 날 수 있고, 윗입술이 갈라져 여음(女陰)을 나타내니 다산을 할 것이고, 털빛이 희니 백옥 같은 선녀의 아름다움이 있다(벽사 다산 아름다움).
 
불로장생 약을 찧고 있는 토끼와 이를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는 뚜꺼비의 모습을 그린 그림에서 이들은 달의 정령(精靈)이다. 고려청자투각칠보향로는 둥근 달을 칠보문으로 투각하고 연꽃으로 받친 향로의 모습을 하고 있는데, 받침 다리를 토끼로 만든 것은 '토끼 같은 자식새끼'라는 말처럼 부부애와 자손의 기원을 나타낸다. 조선 시대 민화에서는 계수나무 아래에서 방아찧는 토끼를 흔히 볼 수 있는데, 이것은 방아찧기로 부부애를 은유한 것이다.
 
⑦ 각국의 풍속 : 달 장생불사 민첩(중국), 영리함 교활함(일본)
 

 
5) 용[辰]
 
① 물의 신 : 용은 못이나 강, 바다와 같은 물 속에 살며, 비나 바람을 일으키거나 몰고 다닌다고 여겨져 왔다. 용은 물과 불가분의 관계를 지닌다. 용은 물의 신이면서 우사의 성격도 지닌다.
 
② 시조의 어버이 : 신화 속의 수신인 용과 혼인을 통해 국조(國祖), 군주, 씨족조(氏族祖) 등 귀인의 어버이로 나타난다. 석탈해는 용성국 왕과 적녀국 왕녀 간의 소생이고, 고려 태조 왕건은 작제건과 용녀의 소행인 용건의 아들이다. 백제 무왕인 서동은 어머니가 과부로 서울 남지변에 살던 중에 그 연못의 지룡과 교통하여 출생하였고, 후백제 시조 견훤은 광주 북촌의 부잣집 딸이 구렁이와 교혼하여 낳았다고 한다. 창녕 조씨의 시조 조계룡은 용의 후예라고 하는 씨족의 시조 신화로서 나타난다.
 
③ 호국 호법의 신 : 용은 수신으로 호법신 또는 호국신의 역할을 한다. 삼국유사에 많은 이야기가 있다.
 
④ 제왕(임금) 왕권 : 천후(天候)를 다스림이 절대적으로 요청되는 농경 문화권에서 군왕과 용은 자연스럽게 결합된다. 그래서 군왕과 관련되는 사물이나 비범한 인물에게까지 용은 상징적으로 작용한다. 임금의 얼굴은 용안, 임금의 평상은 용상, 임금의 옷은 곤룡포, 임금의 즉위는 용비(龍飛)로 나타낸 것이 그것이다.
 
⑤ 풍농과 풍어를 기원하는 민간신앙의 대상 : 용은 민간신앙에서 비를 가져오는 우사이고, 물을 관장하는 수신이며, 사귀를 물리치고, 복을 가져다주는 벽사의 착한 신이다. 농경 민족인 우리에게 물은 생명처럼 소중하므로 가뭄이 심할 때에는 용에게 기우제를 지내고, 어로를 생업으로 삼는 어촌에서는 용왕굿이나 용왕제를 지내며 배의 무사와 풍어, 마을의 평안 등을 기원한다.
 
⑥ 천지조화 상서 풍운조화 : 용은 모습을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고, 자유자재로 모습을 보이기도 하고 숨기기도 한다. 용은 뭇 동물이 가진 최상의 무기를 갖추고 있으며, 구름과 비를 만들고, 땅과 하늘에서 자유로이 활동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존재로 믿어져 왔다. 작아지고자 하면 번데기처럼 작아지고, 커지고자 하면 천하를 덮을 수 있을 만큼 커질 수 있으며, 높이 오르고자 하면 구름 위에까지 치솟을 수 있다고 믿었다. 용은 대체로, 짙은 안개와 비를 동반하면서 구름에 쌓여 움직인다.
 

6) 뱀(巳)
 
 [과학모형 (科學模型)]
 
1. 형상(形狀)
① 몸이 가늘고 길다
② 비늘로 싸여 있다.
③ 몸의 이동은 네다리가 없기 때문에 몸을 구부려 곡선의 정점에 힘을 주어 끌어 당겨 구불구불하게 진행 한다.
 
 2. 눈 혀 귀 코
 
① 눈까풀이 없고 가까운 것을 잘 본다.
② 혀가 가늘고 두가닥으로 갈라져 있다. 미각은 없다.
혀를 날름거리는 것은 냄새로서 먹이를 탐지하려는 것이다.
③ 귀는 퇴화되어 겉귀가 전혀 없으며 가운데 귀도 1개 의 뼈만 있어 들을 수 없다. 그러나 지면을 통한 진동 에는 매우 민감하다.
④ 후각이 발달함
 
 3. 독(毒) 식성(食性)
 
① 독니[毒牙]가 있다(신경에 작용하는 것, 혈액이나 국부조직을 파괴하는 것, 복합적인 것)
② 곤충이나 척추동물을 먹는다 (이빨, 독, 목으로 감아서).
 
 4. 허물
 
① 뱀의 몸은 비늘로 싸여 있지만 이들 비늘은 1개씩 떨어지지 않는 연결된 피부로 되어 있다.
② 표피의 바깥 층이 오래되면 눈의 부분까지 포함하여 표피 전부를 뒤집어 허물 갈이를 한다.
 
5. 동면
 
① 추울 때 동면하고 따뜻할 때 활동한다.
② 겨울 동안 땅 속에서 겨울잠을 자고 봄에 다시 살아 난다.
 
6. 다산성
 
① 난생 난태생으로 한 번에 100여 마리씩 부화한다.
② 수컷은 주머니 모양의 생식기가 2개 있다.
 
 
[민속모형 (民俗模型)]
 
1. 형상(形狀)
 
① 상사일에 긴 물건(실, 머리카락, 밧줄, 새끼)을 만지지 않는다.
② 상사일에 '巳不遠行': 멀리 가지 않는다(蛇足).
③ 정월 보름 뱀과 비슷한 형상(썩은 새끼, 진대)을 만들어 뱀치기, 배지지, 진대끌기 등을 한다.
④ 징그럽다. 생각만 해도 소름끼친다. 사악하다
2. 눈 혀 귀 코
① 날카롭다. 차갑다. 매섭다.
② 유혹, 여자, 말조심
③ 지혜롭고 상황판단을 잘하는 동물로 인식
3. 독(毒) 식성(食性)
① 날카롭다.
② 무섭다. 두렵다.
③ 뱀에 손가락질 하거나 맨발로 밟으면 썩는다.
4.허물
① 변신(뱀서방 이야기, 인간의 원혼이 뱀으로 변신)
② 민간 의료의 약재[巳脫皮]
③ 자기 혁신의 본보기[뱀허물 벗기]
5.동면
① 재생(무덤 속의 벽화, 토우로 넣음)
② 지신(地神)
③ 사자(死者)의 영혼
④ 끈질긴 생명력(일시적이거나 부정적으로 죽였을 때 다시 살아나 반드시 복수한다)
⑤ 악업(惡業)
6.다산성
① 양기[陽氣:지구력과 정기]
② 생산신[多産神] → 재신[財神;업신]
③ 민간의료[생식, 탕, 술]
 

7) 말(午)
 
말은 십이지의 일곱 번째 동물로서 시각으로는 오전 11시에서 오후 1시, 방위로는 남, 달[月]로는 음력 오월에 해당한다.
 
말의 이미지는 박력과 생동감으로 수렴된다. 외모로 보아 말은 싱싱한 생동감, 뛰어난 순발력, 탄력있는 근육, 미끈하고 탄탄한 체형, 기름진 모발, 각질의 말굽과 거친 숨소리를 가지고 있어 강인한 인상을 준다. 이러한 말은 고래로 원시 미술, 고분 미술, 토기, 토우, 벽화 등에 나타나고, 설화, 속담, 시가 등의 구비되는 이야기, 민속 신앙, 연희 등 민속 문화에 다양하게 전승되고 있다.
 
《사기》의 기록으로 기원전 위만조선에도 말의 수가 상당했고, 기마(騎馬)의 습속, 말이 전투에 활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삼국지》동이전의 기록으로 보면 부여에는 명마(名馬)와 과하마(果下馬)라는 두 종류의 말이 있었고, 예나 부여에서는 말을 재산으로 간주했고, 동옥저에는 말의 수가 적었다는 사실, 삼한 지역은 모두 우마가 있었으나 마한은 말을 타지 못한 반면에 변한, 진한은 말을 탔다는 사실 등을 알 수 있다.
 
청동으로 만든 말 모양 부적이 영천 어은동에서 출토되었는데, 크기가 3cm로 휴대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이는 먼 옛날부터 말을 액막이와 행운을 부르는 상징으로 썼음을 알 수 있다. 현재 날개 달린 말 그림이 그려져 있는 부적을 퇴액진복부(退厄進福符), 신마부(神馬符)로 불리고 있다는 사실에서도 위의 상징적 의미를 읽을 수 있다.
 
신라, 가야에는 말 그림, 말 모양의 고분 출토 유물이 발견되고 고구려 고분 벽화에도 각종 말 그림이 등장한다. 여기서 말은 이승과 저승을 잇는 영매자로서 피장자의 영혼이 타고 저 세상으로 가는 동물로 이해된다. 말이 그려진 토기, 토우, 벽화는 그 표현 방법에 있어서는 다를지 몰라도 그것이 지니고 있는 의장(意匠)과 사상은 다 같은 것이다. 즉 피장자의 영혼이 말을 타고 저 세상으로 가도록 드리는 공헌적 부장(供獻的 副葬)의 뜻을 가지고 있다.
 
구비 설화나 문헌 설화에서 말은 신성한 동물, 하늘의 사신, 중요 인물의 탄생을 알리고 알아 볼 줄 아는 영물 또는 신모(神母)이며, 미래에 대한 예언자적 구실을 한다. 특히 《삼국사기》,《삼국유사》의 기록에 의하면 말은 모두 신령스러운 동물로 되어 있다. 금와왕, 혁거세, 주몽 등 국조(國祖)가 태어날 때 서상(瑞祥)을 나타내 주는 것이라든지, 백제가 망할 때 말이 나타나 흉조를 예시해 준다든지 모두 신이한 존재로 등장하고 있다.
 
혁거세신화와 천마도의 백마(白馬)는 최고 지위의 거주(居住)인 조상신이 타는 말로 인식되었고, 후대에 내려오면서 고대 소설, 시조, 민요 등에서는 신랑 소년 애인 선구자 장수 등이 타고 오는 동물이 되었다. 세시 풍속에서는 말을 육축(六畜)의 하나로 인식하고, 정월 상오일, 시월 말날에 특별히 말을 위해 제물을 차리고 고사를 지냈다. 오늘날까지 일부 지역의 동제당에 마상(馬像)이나, 마도(馬圖)가 마을 수호신으로, 혹은 동신이 타고 다니는 승용 동물로 모셔지고 있다.
 
동제당에 봉안된 말은 마을 수호신인 동신이 타고 다니라고 봉안하는 경우,호환(虎患)과 관련되어 호환을 퇴치하기 위해서 봉안되는 경우, 솥공장이나 옹기 공장이 잘되도록 기원하기 위한 제물로 봉안하는 경우, 말에 대한 순수한 숭배 관념에서 봉안되는 경우 등이 있다.
 
민속놀이에서도 말이 자주 등장하는데. 격구, 마상제, 윷놀이 등이 그 예이다. 일상생활에서의 말의 이용은 단순히 실용 혹은 수렵 및 간단한 경제적 단계에서 정복과 지배를 원활히 하기 위해 정치적 군사적 이용 단계로 발전하였다. 한국의 전 역사를 통해 말은 농경, 수공업의 원료, 군마, 교통 통신의 역마 등으로 다양하게 이용되었다. 근자에는 제주도 일부와 민속촌 관광지와 경마장을 제외하고는 말을 거의 찾아 볼 수 없다. 실제 말의 모습을 찾아 볼 수는 없지만 역사적으로 중층 되면서 형성되어 온 말의 이미지와 관념은 또다른 형태, 즉 현대 기업 상표의 상징으로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다.
 
말에 대한 표현 양식은 시대에 따라서 문헌, 유물, 설화, 신앙, 놀이 등에서 다양하게 나타나지만 말에 대해서 느끼는 관념은 어느 정도 변화없이 오늘날까지 이어오고 있다. 말에 대한 한국인의 관념은 '신성한 동물''상서로운 동물'의 상징으로 수렴되어, 신성한 존재, 하늘의 사신, 중요 인물의 탄생을 알리고 알아볼 줄 아는 영물 예언자적 존재, 죽은 사람의 영혼과 마을 수호신이 타는 동물, 장수 신랑 선구자 등 희망을 가져다주는 인물들이 타는 동물로 인식되어 왔다.
 

8) 양(未)
 
양에 대한 한국인의 이미지는 순하고 어질고 착하며 참을성 있는 동물, 무릎을 꿇고 젖을 먹는 은혜를 아는 동물로 수렴된다.
 
양하면 곧 평화를 연상하듯 성격이 순박하고 온화하여 좀처럼 싸우는 일이 없다.
양은 무리를 지어 군집 생활을 하면서도 동료간의 우위 다툼이나 암컷을 독차지하려는 욕심도 갖지 않는다. 또한 반드시 가던 길로 되돌아오는 고지식한 습성도 있다.
성격이 부드러워서 좀처럼 싸우는 일이 없으나 일단 성이 나면 참지 못하는 다혈질이기도 하다. 목양(牧羊)이 깊이 토착화되지 못한 우리 나라에서는 양과 관련된 이야기는 별로 없다.
 
우리 나라에서는 삼한(三韓)시대에 양을 식용으로 썼다는 이야기가 남아 있고, 일본의《日本書紀》에 기록에 보면 "법왕(法王) 1년(599년) 7월에 백제에서 낙타 한마리, 나귀 한마리, 양 두마리, 흰꿩 한마리를, 헌덕왕(憲德王) 12년(820년)에는 신라에서 검은 수양 두마리, 흰양 네마리, 산양 두마리, 거위 한 마리를 보냈다"는 내용이 있다. 이들 내용으로 미루어 볼 때 우리 나라에 흔하지 않던 양이 삼한 시대부터 국가간 외교에서 중요한 공물로 이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새해 들어 첫 양날을 상미일(上未日)이라고 한다. 첫 양날에 특기할 만한 민속은 찾기 힘드나 전라남도 지방에서는 양이 방정맞고 경솔하여 해안 지방에서는 이날 출항을 삼가는 곳도 있다. 경거망동하면 바다에 나가 해난을 만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제주도에서는 '미불복약(未不服藥)'이라 하여 환자라도 약을 먹지 않는다. 이날은 약을 먹어도 효과가 없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일을 제외하고는 양은 온순한 짐승이기 때문에 이날 무슨 일을 해도 해가 없다고 한다. 우리가 정월에 하는 윷놀이의 도개걸윷모에서 도는 돼지, 개는 개, 걸이 바로 양에 해당한다.
 
 
천성이 약한 탓에(착한 탓에) 해로움을 끼칠 줄도 모르면서 오직 쫓기고 희생되어야 하는 양은 설화, 꿈, 속담 등에서도 언제나 유순하고 인내심이 강하고 상서로운 동물로 통한다.
 
이성계가 초야에 묻혀 지내던 시절에 양꿈을 꾸었는데 꿈속에서 양을 잡으려 하자 뿔과 꼬리가 몽땅 떨어져 놀라 꿈을 깨었다. 이 꿈 이야기를 무학대사(無學大師)를 찾아가 이야기를 했더니 대사는 곧 임금에 등극하리라는 해몽을 했다. 즉 한자의 '羊'에서 양의 뿔에 해당하는 ' '획과 양의 꼬리에 해당하는 곤 '?'획을 떼고 나면 "王"자만 남게 되어 곧 임금이 되는 것이다. 그 이후 이태조(李太祖)가 조선을 건국하매 양꿈은 길몽으로 해석되었다. 지금까지도 양꿈에 대한 해몽은 희생, 제물, 종교인, 선량한 사람 등으로 해석한다. 이런 연유는 목축 민족에게는 양이 재산의 척도가 되고, 제단에 바치는 희생물이었고 양의 성품이 티없이 온순해 착한 사람으로 의미하게 되고, 기독교 문화에서는 성서에 나오는 양과 관련하여 종교인의 상징이 된다.
 
우리 민족은 양과 염소를 잘 구별하지 않는다. 염소의 수컷에는 턱수염이 있다. 수염이라는 것은 나이 많은 할아버지에게만 있는 것이고, 염소의 성격이 또한 온화하고 온순하여 옛날이야기나 동화 속에서 염소는 주로 인심 좋은 할아버지로 묘사된다. 또 다른 이야기에서는 양이 늑대, 호랑이에게 쫓기고 잡아먹히는 대상이 대거나, 이들 동물과 대조를 이루어 착한 동물로 이야기된다.
 
양은 언제나 희생의 상징이었다. 양의 가장 큰 상징적 의미가 있다면 그것은 속죄양(贖罪羊) 일 것이다. 성격이 순박하여 양하면 평화를 연상한다. 겁먹은 듯한 순한 눈망울과 복슬복슬한 털에 덮인 양떼에서 느낄 수 있는 것은 평화와 안락의 상징으로 충분하다.
 
양은 또한 정직과 정의의 상징이었다. 양은 반드시 가던 길로 되돌아오는 고지식한 정직성이 있다. 우리 속담에 '양띠는 부자가 못된다'라는 말이 있다. 양띠 사람은 양처럼 너무 정직하고 정의로워서 부정을 못보고, 너무 맑아서 부자가 되지 못한다는 말이다.
 
유교 : 음력 봄 2월과 가을 8월의 첫 丁日에 문묘에서 공자에게 지내는 제사인 석전대제에서 조(俎;도마) 위에 담는 희생으로 양머리[羊腥]를 사용한다. 양머리는 유교의 대표적인 희생물이다. 동양에서 양은 일찍부터 영험스러운 동물[靈獸]로 알려졌다. 소, 돼지와 함께 제물로 쓰여왔고 고기의 맛이나 질도 그만큼 좋은 상위권의 동물이었다.
 
고대 동양에서는 소는 소의 솥[牛鼎], 돼지는 돼지의 솥[豕鼎], 양은 양의 솥[羊鼎]에 각각 삶아서 제물(희생)로 썼으며, 각 솥은 독특한 장식이 있었다. 양을 중히 여기는 생각은 세월에 따라 聖獸의 경지로까지 끌어 올렸으며 먹고 버린 뼈까지 인간의 길흉화복을 예시하는 영물로 간주되었고 고이고이 간직하기도 했다.양의 가죽 옷은 제후나 대부 등 높은 신분에 있는 사람만 입을 수 있는데 논어의 이른바 염소 가죽옷에 검은 관을 썼다는 '羔裳玄冠'이 바로 그것이다. 무릎을 꿇고 젖을 먹는 은혜를 아는 동물로, 늙은 아비양에게 젖을 빨리며 노후를 봉양하는 양의 모습에서 효를 상징하기도 한다.
 
상형 문자인 양(羊)이 생기게 되자, 羊은 인간의 모든 기쁨을 포괄하는 글자가 되어 '좋은 것' 또는 '상서로운 것'을 나타내게 되었다.
 
양의 생김새에서 딴 상형 문자인 양(羊)은 맛있음, 아름다움[美], 상서로움[祥], 착함[善] 등의 의미로 이어진다. 즉 큰양[大羊]이란 두 글자가 붙어서 아름답다는 뜻의 미(美)자가 되고, 나[我]의 좋은 점[羊]이 옳을 의[義] 자가 된다. 양이란 상형문자에서도 착하고[善], 의롭고[義], 아름다움[美]을 상징하는 동물로 양을 인식했던 것이다.
 
'크게 좋고 상서롭다'는 것을 요즘처럼 '大吉祥'이라 쓰지 않고 '大吉羊'이라 썼으며, '모든 상서롭지 못한 것을 물리친다'는 뜻의 '壁除不祥'을 '壁除不羊'으로 썼던 기록이 《博古圖漢十二辰鑑》이나 《漢元嘉刀銘》 등에 남아 있다.
 
양은 서양의 정신사에서 가장 상징적인 동물이다. 초원 위에 흰 구름의 형상을 수놓으며 몰려가는 양떼의 풍경은 가장 서양적인 전원의 목가를 낳았고, 서구의 기독교 문명을 받쳐 온 성경에서 양이야기는 무려 500번 이상이나 인용된다. 고대 이스라엘인의 생활에서 양은 신과 인간을 연결하는 제의(祭儀)의 필수품이었고, 양의 머릿수가 곧 재산을 뜻했다. 또한 양고기는 귀한 손님에게 대접하는 최고의 음식이었다.
 
하나님의 어린양인 예수가 탄생한 베들레헴의 마굿간을 들에서 양치던 목자들이 동방박사들에게 인도했다는 것도 양의 상징적 기능을 말해 준다. 또한 예수가 십자가에서 처형된 뒤 이스라엘이나 서양에서 양을 제물로 삼는 번제(燔祭)가 없어진 것은 예수와 양이 동일시된 성서의 유산이다.
 
이처럼 기독교 문화에서 양은 선량한 사람이나 성직자를 상징해 왔으며, 일상생활에서 소나 말에 못지 않은 가치를 지니고 있었다. 일찍이 고대의 수메르인이나 이집트인들을 비롯 그리스, 로마, 게르만 민족도 양을 신의 신성수(神聖獸)로 생각했으며, 유목민족에게 양은 특히 뇌우(雷雨)의 신이 가장 좋아하는 제사용 동물로 여겨졌다. 고대 로마에서는 양은 미래를 점치는 동물로 활용했다.
따라서 서양인들은 양을 가리켜 인간의 이로움을 위해 희생하고자 태어난 동물로서 높은 경지의 도덕성과 생생한 진실을 상징한다고 보고 있다.
 
오늘날 우리 일상생활에서 양피(羊皮)는 고급 피혁으로 장갑, 구두, 잠바, 책표지 등에 쓰이고 양모(羊毛)는 보온력이 높고 질겨 고급 양복지, 솜 대용으로 두루 쓰이는 모직물의 주원료가 된다. 양유(羊乳)는 우유에 비해 단백질, 지방, 회분이 풍부해 허약 체질인 사람에게 좋다. 이처럼 양은 털, 고기, 뼈 등 어느 것 하나 버리지 않고 일상생활에 이용되는 유익한 동물이다.
 
회화에서는 공민왕(恭愍王)의 {二羊}과 작자 미상의 {山羊} 그림이 있고 도자기로는 원주 법천리고분서 출토된 '靑瓷羊' 등이 있다. 우리의 옛 조각이나 그림에서 양을 그린 작품은 드물다. 그러나 일단 우리 앞에 나타난 양의 모습은 위기를 만나도 당황하지 않은 여유와 멋을 느끼게 하는 평화와 정의의 상징으로 묘사되고 있다.
 

9) 잔나비[申]
 
원숭이는 동물 가운데 가장 영리하고 재주 있는 동물로 꼽히지만, 너무 사람을 많이 닮은 모습, 간사스러운 흉내 등으로 오히려 '재수 없는 동물'로 기피한다. 띠를 말할 때 '원숭이띠'라고 말하기보다는 '잔나비띠'라고 표현하는 것도 이같은 맥락에서이다.
통일 신라 시대부터 등장하는 12지신상의 원숭이는 무덤의 호석이나 탑상(塔像), 부도(浮稻), 불구(佛具) 등에서, 머리는 원숭이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몸체는 사람의 모습을 하고 무기를 손에 잡고 있는 형상을 하고 있다.
 
여기에 나오는 원숭이(申)는 시각으로는 오후 2시에서 5시, 방향으로는 서남서를 담당하는 시간신(時間神)이며 방위신(方位神)으로, 이 시간과 이 방향으로 들어오는 사기(邪氣)를 막는 역할을 하고 있다.
 
청자와 백자에서도 원숭이의 생생한 모습이 보인다. 인장의 꼭지, 연적, 수적, 서체(緖締), 작은 항아리, 걸상 등에서 그릇의 모양이 원숭이의 형상을 띠고 있거나 장식 문양으로 원숭이가 나온다. 청자나 청동으로 만든 원숭이꼭지도장[猿形印章]은 쭈그리고 앉거나, 긴 손으로 얼굴을 만지고, 혹은 두 손을 마주잡고 있는 원숭이의 모습을 재미있게 묘사를 하고 있다.
 
원숭이는 인간과 가장 많이 닮은 영장 동물로 갖가지 만능의 재주꾼이기도 하지만, 부모 자식간의 극진한 사랑이나 부부 지간의 애정은 사람을 뺨칠 정도로 셈세한 동물이라고 한다. 원숭이의 이러한 母子 간의 지극한 유대의 정을 표현한 청자원형모자상(靑磁猿形母子像)은 연적(硯滴)이나 서체(緖締), 장식품 등에서 어미가 새끼를 고이 품안에 안고 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또 백자 항아리에서는 원숭이가 부귀 다산을 의미하는 탐스런 포도 알을 따먹거나 포도 가지 사이로 다니는 모습을 재미있게 그리고 있다. 여기서 부귀 다산의 의미를 지닌 포도 알을 따먹은 원숭이는 바로 부귀 다산의 상징이요 그 기원을 나타내고 있다.
 
그림 속에 등장하는 원숭이는 그 주제를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십장생들과 등장하면서 천도를 들고 있는 장수의 상징인 원숭이, 불교 설화나 서유기와 관련하여 스님을 보좌하는 원숭이, 숲 속에서 사는 자연 상태의 원숭이 등이 그것이다. 천도복숭아를 들고 있거나 먹고 있는 원숭이는 그림에서 많이 찾아볼 수 있다. 천도복숭아는 열매를 한 번 맺는데 3000년이 걸리고, 그 열매가 익는데 다시 3000년이 걸리는 나무로 장수의 상징이다. 이런 천도를 먹거나 손에 잡고 있는 원숭이도 바로 장수의 상징이며 기원으로써 그려진 것이다.
 
구비 전승에서는 꾀 많은, 재주 있는, 흉내 잘 내는 장난꾸러기로 자기의 잔재주와 잔꾀를 너무 믿어 제 발등 찍는 이야기가 많다. 원숭이는 실제로 우리 나라에 없는 동물이지만, 십이지신상이나 청자, 백자, 회화 등에 나타난 원숭이는 우리 나라에 실존하는 어느 동물보다도 그 형태가 잘 묘사되어 있고 그것을 통하여 원숭이가 지닌 여러 가지 상징성 암시성 등을 나타내려고 했다.
 

10) 닭[酉]
 
양우리 풍속에서는 닭이 상서롭고 신통력을 지닌 서조로 여겨져왔다. 새벽을 알리는 우렁찬 닭의 울음소리, 그것은 한 시대의 시작을 상징하는 서곡으로 받아들여졌다.
 
닭이 주력(呪力)을 갖는다는 전통적 신앙도 그 여명을 하는 주력(呪力)때문일 것이다. 밤에 횡행하던 귀신이나 요괴도 닭 울음소리가 들리면 일시에 지상에서 사라져 버린다고 민간신앙에서는 믿고 있었다. 닭은 흔히 다섯 가지 덕을 지녔다고 흔히 칭송된다.
 
즉 닭의 벼슬(冠)은 문(文)을, 발톱은 무(武)를 나타내며 적을 앞에 두고 용감히 싸우는 것은 용(勇)이며, 먹이를 보고 꼭꼭거려 무리를 부르는 것은 인(仁), 때를 맞추어 울어서 새벽을 알림은 신(信)이라 했다.
 
닭이 본격적으로 한국 문화의 상징적 존재로서 나타나게 된 것은 삼국유사에서 혁거세와 김알지의 신라 건국 신화에서이다.
 
<<삼국유사(三國遺事)>>에 의하면 알영이나 김알지 같은 나라 임금이나 왕후가 나타날 때 서조(瑞兆)를 미리 보여주는 길조(吉鳥)로 표현이 되었다.
 
문헌 기록뿐만 아니라 천마총의 달걀 껍질이나 지산동고분의 닭뼈, 백제 고배 속의 달걀 껍질에서 알 수 있듯이 닭은 일찍부터 중요한 제물이 되었다. 천마총을 발굴했을 때, 단지 안에 수십 개의 계란이 들어 있었고 또 신라의 여러 고분에서 닭뼈가 발견된다. 능속에 계란과 닭뼈가 들어 있었던 것은 저 세상에 가서 먹으라는 부장 식량일 수도 있고, 알속에서 새로운 생명이 탄생하듯이 재생, 부활의 종교적인 의미로 해석해 볼 수 있다.
 
닭은 울음으로써 새벽을 알리는, 빛의 도래를 예고하는 존재이다. 닭은 여명, 빛의 도래를 예고하기에 태양의 새이다. 닭의 울음은 때를 알려주는 시보의 역할을 하면서, 앞으로 다가올 일을 미리 알려주는 예지의 능력이 있기도 하다. 장탉이 홰를 길게 세번 이상 치고 꼬리를 흔들면 산에서 내려왔던 맹수들이 되돌아가고, 잡귀들의 모습을 감춘다고 믿어 왔다.
 
닭은 주역(周易)의 팔괘(八卦)에서 손(巽)에 해당하고, 손의 방위는 남동쪽으로, 여명(黎明)이 시작되는 곳이다. 그래서 닭은 새벽을 알려주는 상서로운 동물, 신비로운 영물로 간주한다. 닭이 날개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지상에서 생활하는 존재 양상의 이중성은 어둠과 밝음을 경계하는 새벽의 상징성을 내포하고 있다. 시계가 없던 시절의 밤이나 흐린 날에는 닭의 울음소리로 시각을 알았다. 특히 조상의 제사를 지낼 때면, 닭의 울음소리를 기준으로 하여 뫼를 짓고 제사를 거행했다. 수탉은 정확한 시간에 울었으므로, 그 울음소리를 듣고 밤이 깊었는지 날이 새었는지를 알 수 있었다.
그런가 하면, 제때에 울지 않거나, 울 시각이 아닌데 닭이 울면 불길한 일이 생긴다고 한다. 초저녁에 닭이 울면 재수가 없고, 오밤중에 울면 불행한 일이 벌어지고, 해진 뒤에 울면 집안이 망한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속담에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고 했다. "암탉이 울어 날샌 일 없다"라는 속담이나 "암탉이 울어서 날샌 일 없고, 장탉이 울어서 날 안 새는 일 없다"는 속담은 암탉을 여자에 비유하여 잘못된 닭 울음소리를 이야기하고 있다.
 
닭은 동이 틀 때 횃돼에 올라가 새날이 옴을 예고하고, 밤이 끝났음을 선언한다. 사람들은 닭 울음소리와 함께 새벽이 오고 어둠이 끝나며, 밤을 지배하던 마귀나 유령도 물러간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여러 풍속에서 보면 닭소리를 귀신이 무서워한다고 여기고 있다. 닭 울음소리는 빛의 전령으로 태양을 부르고 사람을 기동하게 하는 것으로 밤중에 횡행하던 도깨비 같은 귀신들은 그 소리만 들으면 자취를 감춘다. 닭은 새벽을 고하고 새벽은 빛으로서 악정령(惡精靈)을 쫓는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닭은 인간에게 질병과 재앙을 주는 귀신들을 능히 압제하는 능력이 있는 상서로운 동물로 숭상하게 되었다. 그래서 축귀와 벽사의 동물로 닭을 상정하고 닭 그림, 닭 피, 닭 등으로 사용하는 풍속이 많다. 옛날 사람들은 귀신들이 닭을 무서워한다고 생각하였고, 이 생각을 바탕으로 악귀와 모든 액을 물리치는 주술로서 사람들과 같이 귀신들이 출입하는 대문에 닭, 닭그림, 닭 피, 죽은 닭 등을 사용했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 <正月元日> 조에 의하면, 새해를 맞이한 각 가정에서는 닭이나 호랑이, 용을 그린 세화[鷄虎畵]를 벽에 붙여 액이 물러나기를 비는 풍속이 있었다고 한다. 닭은 귀신을 쫓아내는 축귀와 액을 막는 제액초복의 능력이 있다고 믿었다.
 
궁합에서 닭띠와 소띠는 잘 어울리고 범띠와는 잘 맞지 않는다고 하는 것도 그 동물의 행태로서 닭, 소, 호랑이의 관계를 그대로 인생사에 결합한 것이다.
 
장닭이 홰를 길게 세 번 이상 치고 꼬리를 흔들면 귀신과 호랑이도 민가에서 물러간다고 한다. 호랑이는 닭이 우는소리를 무척 싫어한다. 닭(酉)은 서방(西方)이고 서쪽은 흰색(白)이므로 호랑이는 흰색을 또한 두려워한다고 한다. 반면에 소는 닭의 울음소리를 좋아하고, 여물을 먹은 후 반추위로 되새김을 하면서 "꼬끼오"하고 우는 닭의 울음소리에 맞추어 반추위 운동과 쉼을 한다고 한다. 민가에서 닭둥우리를 소마구간과 같이 하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닭띠와 범띠가 혼인을 하면 잘되지 않고, 소띠와는 잘 맞는다는 말이다. 이 이야기는 순전히 닭과 호랑이의 생태에 따라서 해석한 것이다.
 
닭 그림은 정초(正初) 벽사를 위해 사용하기도 하지만 입신출세와 부귀공명,자손중다(子孫衆多)를 상징하는 그림 소재로 쓰이기도 한다. 조선 시대에 학문과 벼슬에 뜻을 둔 사람은 서재에 닭의 그림을 걸었다. 닭은 입신출세(立身出世)와 부귀공명(富貴功名)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즉 닭이 머리 위에 볏을 달고 있는 모습을 보고 관(冠)을 썼다고 하였다. 관을 쓴다는 것은 학문적 정상의 표시이며, 벼슬을 하는 것과 같은 뜻이다. 또 닭과 함께 맨드라미를 같이 그리는데, 이는 "冠上加冠"이라 하여 입신출세를 위한 길상적, 상징적 표현이었다. 맨드라미 역시 그 모양에서 유추된 닭이 볏과 같은 의미이다. 말 그대로 관 위에 관을 더한다는 뜻이니 최고의 입신출세를 의미한다. 그리고 부귀와 공명을 바라는 뜻에서 수탉이 길게 우는 모습을 모란과 함께 그렸다. 모란도 부귀를 상징하며, 수탉은 공명을 상징한다.
 
조선 후기 화가 변상벽(卞相璧)이 그린 닭 그림은 어미 닭과 열댓 마리의 병아리를 그려 오복의 하나인 자손의 번창을 염원하는 뜻을 상징화하고 있다. 조선 시대 목가구의 경첩에서 장식 문양으로 닭 그림이 나온다, 닭의 그림이 그려진 술잔 계이(鷄彛)는 종묘 제사의 강신의례(降神儀禮) 때에 쓰이는 제기(祭器)이다. 그 잔에 봄에는 정화수, 여름에는 울창주(鬱창酒)를 가득 담아 제를 올린다. 이때 닭은 조상신의 도움으로 천하가 편안하기를 염원하는 인간의 사신(使臣)이 된다.
 
결혼식 초례상에는 반드시 닭이 필요하다. 신랑 신부가 초례상을 가운데 두고 마주 서서 백년가약을 맺는다. 닭을 청홍 보자기로 싸서 상위에 놓거나, 때로는 동자가 닭을 안고 옆에 서 있는 경우도 있다. 즉 닭을 놓고, 닭 앞에서 일생의 인연을 맺고 행복을 다짐하는 서약을 하는 것이다. 옛날에 나라 임금끼리 서약을 하고 말피로 맹서했다고 하는데 부부 인연의 서약은 닭으로 맹서하는 것 같다. 혼인의례가 끝나고 신부는 시부모와 친족 일동과의 첫 대면의 폐백례를 드릴 때도 닭고기(鷄肉脯)를 놓고 절을 한다. 혼인은 일생에서 가장 행복한 평생 의례인데 이때에 닭이 등장하는 것은 닭을 길조 서조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농촌에서는 대개 닭을 사육하고 있어서 언제든지 필요하면 손쉽게 잡을 수 있다. 새신랑이 처가에 다녀왔다면 인사가 이것이다. "씨암탉 몇 마리 먹고 왔느냐"는 것이다. 귀한 손님이 오면 닭을 잡아 대접하는 관습에서 신랑이 장모한테서 얼마나 사랑을 받고 있는가를 헤아리는 말이었다. 장모에게 있어 가장 귀한 손님은 사위이다. 딸을 잘 보살피고 사랑해 달라는 간절한 마음에서 사위가 오면 장모는 서슴없이 씨암탉이라도 잡아 대접을 한다는 것이다. 씨암탉을 잡으면 병아리를 깔 수 있는 알을 못 낳는데도 사위를 위해서라면 잡아 대접하는 장모의 사랑이었다. 손님으로 가서 그 집의 씨암탉을 얻었다면 최고의 대접인 것이다.
 
씨암탉이 낳은 계란도 친척의 생일이나, 환갑, 결혼 때 짚으로 달걀 꾸러미에 한 꾸러미를 싸서 부조를 했다. 오늘날처럼 현금을 봉투에 넣어서 내미는 것과는 달기 평소에 가정에서 손수 기르던 닭이나 계란을 선사하는 것이다. 계란을 하루에 하나 밖에 낳지 않기 때문에 날마다 모아 두었다가 10개가 되면 한 꾸러미를 만들었으니, 모으는 마음의 정성 또한 대단했다. 출가한 딸이 근친을 갈 때 친정 부모를 위해 닭을 가지고 갔다. 닭은 정성스런 정의 표시로 활용되었다.
 
구년을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면서 지난해의 불행은 모두 사라지고 행복만 가득하라는 말 가운데 " 닭이 우니 새해의 복이 오고 개가 짖으니 지난해의 재앙이 사라진다"라는 덕담이 있다. 닭은 보양자(保養子)하고 가족의 보호와 생활권을 위해서 용감하게 투쟁하고 시간의 흐름, 세상의 변화를 판단하는 서조이다. 그래서 우리 조상들은 닭을 영물로 여기고, 설날 첫 아침 식사, 백연가약 혼인 의례의 증인으로, 그리고 귀한 손님이 왔을 때에 닭을 등장시켰던 것이다. 새벽을 알리는 우렁찬 닭의 울음소리! 그것은 한 시대의 시작을 상징하는 서곡(序曲)으로 받아 들여졌다.
 
11) 개[戌]
 
개는 인간의 역사와 함께 늘 인간의 주위에서 존재해 왔다. 때로는 구박과 멸시와 버림을 받고, 지신의 몸을 희생하기도 한다. 인간이 개를 버려도 개는 사람을 배신하지 않는다. 인간의 주위를 맴돌면서 더러는 사랑도 받으며 살아왔다. 그래서 개는 우리의 일상생활 문화에서 인간의 주위를 구성하는 풍경(風景)처럼 존재한다. 우리 조상들은 옛날이야기나 속담, 신앙, 미술 등에서 개의 이러한 행태들을 잘 묘사하고 있다. 개는 인간과 함께 오랜 생활을 해 오는 동안 인간과 거의 동일시하여 왔다. 그래서 "개는 사흘만 기르면 주인을 알아본다"라는 속담이나, 자기 자식을 가리켜 "우리 강아지!"라고 부르는 애칭이 생겨났는지도 모른다.
 
아주 오랜 시기를 같이 살아온 개는 동과 서를 막론하고 인간에게 헌신하는 충복(忠僕)의 상징이다. 특히 설화에 나타나는 의견(義犬)은 충성과 의리를 갖춘, 우호적이고 희생적인 행동을 한다. 의견 설화와 의견 동상, 의견 무덤 등의 다양한 이야깃거리는 전국에서 전승된다.
 
그런가 하면 서당개, 맹견, 못된 개, 미운개, 저질 개, 똥개, 천덕꾸러기 개는 비천함의 상징으로 우리 속담이나 험구(욕)에 많이 나타난다. 동물 가운데 개만큼 우리 속담에 자주 등장하는 경우도 드물다. 개살구, 개맨드라미 등 명칭 앞에 '개'가 붙으면 비천하고 격이 낮은 사물이 된다.
 
삼국유사에 보면 백제의 멸망에 앞서 사비성의 개들이 왕궁을 향해 슬피 울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집에서 기르던 개가 슬피 울면 집안에 초상이 난다 하여 개를 팔아 버리는 습속이 있다. 또, 개가 이유 없이 땅을 파면 무덤을 파는 암시라 하여 개를 없애고, 집안이 무사하기를 천지신명에게 빌고 근신하면서 불행에 대비한다.
 
무속 신화, 저승 설화에서는 죽었다가 다시 환생하는 저승에서 이승으로 오는 길을 안내해 주는 동물이 하얀 강아지이다. 개는 이승과 저승을 연결하는 매개의 기능을 수행하는 동물로 인식되었다.
옛 그림에서도 개 그림이 많이 나온다. 동양에서는 그림을 문자의 의미로 바꾸어 그리는 경우가 흔하다. 개가 그려진 그림을 보면 나무 아래에 있는 개 그림이 많다.
 
이암의 화조구자도(花鳥狗子圖)와 모견도(母犬圖), 김두량의 흑구도(黑狗圖) 등이 그 예인데, 나무(樹) 아래에 그려진 개는 바로 집을 잘 지켜 도둑 막음을 상징한다. 개는 '戌'(개 술)이고, 나무는 '樹'(나무 수)이다. '戌'은 '戍'(지킬 수)와 글자 모양이 비슷하고, '戍'는 '守'(지킬 수)와 음이 같을 뿐만 아니라 '樹'와도 음이 같기 때문에 동일시된다. 즉 "戌戍樹守"로 도둑맞지 않게 잘 지킨다는 뜻이 된다. 이와 같은 개의 그림을 그려 붙임으로써 도둑을 막는 힘이 있다고 믿었다. 이러한 일종의 주술적 속신은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 고구려 각저총의 전실과 현실의 통로 왼편 벽면에도 무덤을 잘 지키라는 의미에서 개그림을 그려 놓았다.
 
불가에서는 개를, 특히 개고기를 금기시한다. 눈이 셋 달린 개는 삼목대왕의 환생물이라는 불교 설화와 후대에 내려오면서 형성된 개가 조상의 환생이라는 속신으로 인해 개고기를 먹지 않게 되었고, 사찰이 대개 산 속에 있으므로, 이를 먹고 절에 가면 개고기 냄새가 나서 호환을 당할 가능성이 있다는 속신으로 더욱 개고기를 먹지 않게 되었다는 설도 있다. 그런가 하면 유가(儒家)에서는 개를 크게 금기시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예를 극도로 중시하는 향음주례(鄕飮酒禮)에서 개고기가 술안주로 나온다는 점을 미루어 짐작하여 알 수 있다.
 
대부분의 속담에서 개의 비유는 어리석은 사람, 비천한 것, 도덕적이지 못한 것, 혹은 더러운 것, 쓸데없는 짓 등 좋지 않는 개념으로 쓰이고 있다. 개는 우리와 생활 속에 밀접하게 더불어 살아왔기 때문에 개의 적나라한 일거수 일투족이 속담에서 그려진다. 하찮은 존재에 대한 비유, 부정적인 이미지에 대한 비유, 우둔하고 어리석은 모습, 약자로서의 모습, 무식한 이미지에 대한 비유, 보기 흉한 모습, 굶주린 모습, 게으르고 태만한 모습 등 비천함의 대명사로 속담에서 개가 묘사된다.
민요에는 개가 사랑의 방해자, 잠자는 아기를 깨우는 어머니의 미움을 사는 존재로 등장한다. 이는 낯선 사람을 보면 짖어대는 속성으로 인해 사랑을 훼방하는 존재로 나타난다. 남몰래 애절한 사랑을 나누는 님이 밤에 오시는데 그 때마다 짖어 대는 야속한 개를 민요에서 한탄했다. 통영 지방에서 전승되는 개타령에 보면
 
개야 개야 깜둥 개야 / 개야 개야 깜둥 개야
가랑잎만 달싹해도 짖는 개야
청사초롱 불 밝혀라 / 우리임이 오시거든
개야 개야 깜둥개야 / 개야 개야 깜둥개야
짖지를 마라 짖지를 마라 / 멍멍멍멍 짖지를 마라
개야 개야 삽살개야 / 개야 개야 삽살개야
나뭇잎만 달싹해도 / 멍멍멍멍 짖지를 마라
한산도야 만물어 보자 / 우리임 외거든
개야 개야 삽살개야 / 개야 개야 삽살개야
개야 개야 백설개야 / 개야 개야 백설개야
문풍지만 달삭해도 짖는 개야
밤중 밤중 야밤중아 / 우리임이 오시거든
개야 개야 백설개야 / 짖지를 마라 짖지를 마라
멍멍멍멍 짖지를 마라
개야 개야 노랑개야 / 개야 개야 노랑개야
달그림자만 보아도 짖는 개야
오동추야 달밝은 밤에 / 우리임이 오시거든
개야 개야 노랑개야 / 짖지를 마라 짖지를 마라
 
 멍멍멍멍 짖지를 마라 가랑잎만 달싹해도, 나뭇잎만 굴러가도, 문풍지만 떨어도, 달그림자만 보아도 짖는 개를 밤중밤중 야밤중에 우리임이 오시더라도 짖지말라는 임을 그리는 여인의 애틋한 사랑을 담고 있다. "자장자장 자장/ 돌이야 자거라/검둥개야 짖지마라/흰둥개야 짖지마라" 하며 아기 잠재운다. 그러나 어머니의 등에서 고이 잠든 아기의 단잠을 깨우는 것도 멍멍 짖는 개소리다.
개에 대한 표현방식은 시대에 따라서 문헌, 고분 벽화, 설화, 신앙, 그림 등에서 다양하게 나타나지만 한국 문화에 나타난 개는 충성과 의리의 충복, 심부름꾼, 안내자, 지킴이, 조상의 환생, 인간의 동반자 등의 상징적 의미와 함께 비천함의 대표격으로 등장한다.
 
 예로부터 개는 집지키기, 사냥, 맹인 안내, 수호신 등의 역할뿐만 아니라, 잡귀와 병도깨비, 요귀 등 재앙을 물리치고 집안의 행복을 지키는 능력이 있다고 전해진다. 특히 흰개는 전염병, 병도깨비, 잡귀를 물리치는 등 벽사(壁邪)능력 뿐만 아니라 집안에 좋은 일이 있게 하고, 미리 재난을 경고하고 예방해 준다고 믿어왔다.
 

12) 돼지[亥]
 
우리 나라는 예로부터 집집마다 돼지를 길렀고 어쩌다 돼지꿈을 꾸면 재수 좋은 꿈을 꾸었다고 기뻐했다. 장사하는 사람들은 돼지가 새끼들을 품에 안고 젖을 빨리는 사진을 걸어 놓고 일이 잘되기를 빌기도 했다. 상점에는 새해 첫 돼지날[上亥日]에 문을 열면 한해 동안 장사가 잘된다는 속신도 있다.
죽어서도 돼지혈(穴)에 묘를 쓰면 부자가 된다고 믿어왔다.이처럼 한국 사람들은 예로부터 돼지를 부(富)와 복(福)의 상징으로, 돼지꿈을 재운(財運)과 행운(幸運)의 상징으로 여겨 왔다. 많은 사람들이 돼지해를 맞으면서 무언가 행운과 재운이 따를 것으로 믿는 것도 이 때문이다.
돼지는 기후, 풍토에 대한 적응력이 강하여 전세계적으로 분포되어 있다. 돼지는 그 조상인 멧돼지 때부터 후각이 발달되어서 사료 사육자 새끼 대소변 등을 구별할 수 있다.
 
코끝에는 연골판이 있고 촉각이 발달되어 있어서 땅을 파면서 풀뿌리. 벌레 등 먹이를 얻는 데 편리하게 되어 있다. 특히 멧돼지는 '먹성'과 '야성'의 화신으로 냄새 맡는 데는 귀신이다. 몇 리 밖 엽총의 화약 냄새까지 식별해 낼 정도이다. 멧돼지의 성질은[猪突的]이란 말이 있듯이 대담하고 난폭하고 영리하기가 여우 이상이다.
 
 돼지우리 주변은 항상 습기가 차고 더러운데, 이것은 돼지의 땀샘이 발달하지 못하여 체내의 모든 수분이 소변으로 배설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배설 장소를 따로 만들어 주면 배설물이 있는 곳의 냄새를 맡고 그 장소에서만 배설하며, 누울 곳은 항상 깨끗하게 유지한다. 보통 돼지우리는 지저분한 것의 대명사로 여기고 있지만 실은 소나 닭보다 더 깨끗한 동물이다.
 
 석기 시대 동물상(動物相), 조개더미[貝塚], 토우(土偶), 토기(土器) 등 고고 출토 유물에서 돼지의 조상 격인 멧돼지 뼈와 이빨이 다수 출토되고 있고, 표현된 것으로 보아 가축으로 길들여지기 이전에 야생의 멧돼지가 한반도 전역에 자생하고 있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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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 평안북도 삭주 출생
청주대 법대 졸업
사주첩경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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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3년 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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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역학인총회 총재
前 한국 역학계의 태두(泰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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