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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그가 젊은 세대에게 전하는 여섯 가지 조언
종피호피요 2018-08-25 (토) 20:20 조회 : 1901

- 삶에 대한 태도와 원칙은 무엇입니까?

제가 삶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정직, 성실 그리고 끊임없이 공부하는 자세, 이렇게 세 가지입니다. 단어로만 봤을 때 얼핏 구태의연해 보이기까지 하는 이 세 가지를 일일이 설명할 필요는 없겠죠?

분명한 것은 이러한 개인적인 가치관들이 CEO로서의 행동기준과 경영철학의 근간이 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이 가치관은 우리 회사의 핵심가치 속에도 녹아 들어 있습니다. 즉, 정직은 고객과의 약속을 반드시 지키는 것에, 성실은 세 가지 핵심가치 모두에, 공부하는 자세는 자신의 발전을 위해서 노력한다는 것에 스며들어 있습니다.

이러한 가치관을 뿌리로 해 제게는 또한 ‘삶의 원칙’과 ‘판단 기준’이라는 현실적 줄기가 있습니다. 살아가는 동안 중심을 잡아줄 삶의 원칙은 내 자신에게만 적용하는 것과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적용하는 것으로 나눌 수 있을 것입니다. 내 자신이 스스로 지키고자 하는 ‘삶의 원칙’을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아요.

첫째, 매 순간에 최선을 다하고, 끊임없이 변화하고 발전하기 위해서 노력한다.
둘째, 높은 목표를 세우고 스스로를 채찍질한다.
셋째, 결과도 중요하지만, 과정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넷째, 스스로를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으며, 외부 평가에 연연하지 않는다.
다섯째, 항상 자신이 모자라다고 생각하며, 조그만 성공에 만족하지 않으며, 방심을 경계한다.
여섯째, 기본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일곱째, 천 마디 말보다 하나의 행동이 더 값지다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지키고자 하는 삶의 원칙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나이, 성별, 학벌 등에 차별을 두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능력이다.
둘째, 다른 사람의 의견을 존중하고, 각자의 다양성을 인정한다.
셋째, ‘너는 누구보다 못하다’는 식으로 다른 사람끼리 비교하지 않는다.
넷째, 다른 사람을 나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이용하지 않는다.
다섯째, 내 스타일을 다른 사람에게 강요하지 않는다.


삶의 원칙 못지않게 ‘판단 기준’ 또한 그 사람의 삶에 있어 무척 중요하죠. 판단기준에 의해 선택을 하게 되고 그러한 선택들 하나하나가 인생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니까요. 어떤 판단을 해야 할 때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기준으로 결정을 합니다.

첫째 기준은 원칙을 지킨다는 것입니다.
매사가 순조롭고 편안할 때는 누구나 원칙을 지킬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원칙을 원칙이게 만드는 힘은 어려운 상황, 손해를 볼 것이 뻔한 상황에서도 지켜냄으로써 생겨난다고 생각합니다. 그처럼 힘든 상황 하에서도 원칙을 지켜간다면, 언젠가는 큰 힘을 발휘하게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둘째 기준은 본질에 충실 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안에 대해 판단을 내려야 할 때 그 사안에 대해 여러 가지 선택이 주어질 경우가 있는데, 본질과 직접 관련이 없는 것은 제외하고 본질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것들만 고려해서 판단을 내린다면 옳은 결정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서 돈, 명예, 주위의 평판 등은 본질이라기보다는 열심히 노력한 후에 얻을 수 있는 결과이기 때문에, 판단을 할 때 고려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결과에 해당하는 것들을 제외하고 나면 고려해야 할 점들이 훨씬 단순해져서 올바른 판단에 한걸음 더 다가갈 수 있는 것이죠.

제가 판단기준으로 삼는 셋째 기준은 장기적인 시각으로 본다는 것입니다.
단기적인 이익이나 승부에 집착하다 보면 당장에는 작은 이익을 볼 수 있을지 몰라도 장기적으로 보면 실패할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생각합니다. 눈앞의 순간적인 이익에 연연하기보다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옳은 쪽으로 판단하고 차근차근 일을 진척시켜 나가는 것이야말로 결국 참된 성공에 이르는 길이라고 믿어요. 성공이라는 것의 본질 자체가 단기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이죠.

처음 회사를 만들 때부터 지금까지, 저는 변함없이 제 자신, 개인보다 전체 조직을 더 중요하게 생각해 왔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생각 자체가 사람들이 모인 조직을 이끄는 리더라면 조직의 크기와 상관없이 필수적으로 가져야 하는 생각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단언하건대, 전체가 잘될 수 있다면 나는 개인적인 이해타산과 상관없이 어떠한 선택도 할 수 있는 마음의 자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말로만 이야기하기 보다는 실제로 행동으로 보여준 때도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러한 행동들 중에는 외부에서 보기에는 놀라운 선택도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러나 그 모든 선택들은 나 나름대로의 기준에서 우리 모두가 잘될 수 있기 위해 필요한 것들이었죠. 그런 마음은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 그렇다면 본인이 생각하는 성공이란 무엇입니까?

제 인생의 성공의 정의는 ‘삶의 흔적을 남기는 것’입니다. 영어 표현으로는 ‘Make a difference’하고 싶네요. 내가 죽고 나서도, 내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을 때와는 다른 것이 이 세상에 남았으면 해요. 크로마뇽인의 벽화처럼, 이름이 남아있지도 않고 누구인지는 알 수 없지만, 사람들의 생각의 변화나 제도, 책, 조직처럼 누군가가 있었다는 흔적이 남기를 바라는 거죠.

영화 ‘스파이더맨을 보면 이런 말이 나옵니다. "With great power comes great responsibility" 그는 파워를 원하진 않았지만 그걸 가지고 있으면 합당한 일을 해야 합니다. 이름이 알려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지만, 열심히 공부하다보니 한 사람 두 사람, 소문 나서 사람들이 보고 있고 기대를 해 책임감도 생겼어요. 제가 원하지 않는 책임감이지만 많은 사람의 기대를 저버리는 일은 해선 안 된다는 생각입니다.








- 젊은 시절 가장 열중했던 일은 무엇입니까?

공부 양이 많았던 의대생이다보니 공부에 열중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20대 시절에는 이런 고민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개인이 사회 속에서 얻을 수 있는 여러 이익들이 결코 자기 혼자만의 힘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선조로부터 내려온 지혜와 동시대에 산업 현장에서 열심히 일하시는 분들의 노력이 모여서 만들어진 것인데, 당시 저는 학생이었기 때문에 주어진 공부만 성실히 해내면 그러한 혜택들을 비교적 쉽게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회에 항상 빚진 마음이 들었고, 어떻게 하면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제가 받은 혜택의 일부라도 돌려드릴 수 있을까 하는 것들이 고민으로 자리잡았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고민을 해결할 방법을 찾다가 의료봉사를 시작하게 되었는데요. 당시 구로동 공단이나 무의촌 주변에서 무료 진료를 실시하면서 사회구성원으로서의 역할에 대한 많은 생각들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경험들이 나중에 컴퓨터 바이러스 백신 프로그램을 무료로 배포할 수 있도록 만들어준 생각의 기초가 된 것 같습니다.

- 젊은 날에 지녔던 초심을 일관되게 지켜왔다고 생각하십니까?

살아가면서 내 스스로가 만든 삶의 원칙들을 100% 지켜냈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늘 충실히 지키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것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어요. 또한 앞서 이야기했듯 제 판단 기준 첫 번째는 ‘원칙을 지킨다’ 입니다. 물론 어려운 상황도 많았지만 오히려 이러한 상황이 원칙이 더 필요한 순간이죠. 힘든 상황, 손해 볼 것이 뻔한 상황 하에서도 원칙을 지켜간다면, 그것이 언젠가는 큰 힘을 발휘하게 될 것이라고 믿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 자신이 가장 자랑스러웠던 순간은 언제였습니까?

처음 백신을 개발한 후 의대 교수로서, 군의관으로서 일하며 틈틈이 시간을 쪼개 백신 개발을 계속했습니다. 박사 학위를 받고 군의관 복무를 마친 뒤에 컴퓨터와 의학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시점이 되어 깊은 고민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거듭된 고민을 해결해 줄 실마리는 ‘내가 이때까지 살아왔던 삶은 남이 보기 좋은 삶이었다’라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풀렸습니다. 서울대 의대 졸업, 20대 의학 박사, 20대 의대 교수로 이어지던 순탄한 과정은 남이 보기에는 좋았을지 모르지만 컴퓨터를 하면서 느낄 수 있었던 자부심, 보람, 사명감, 성취감 등을 주지는 못했죠. 살아온 시간보다는 살아갈 날이 더 많은 시점에서, 지금까지 쌓아온 것에 연연하기보다는 앞으로 더 보람을 느낄 수 있고, 해 나갈 일이 많은 쪽을 선택하는 것이 올바르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국 14년간 공부해서 박사 학위까지 받았던 의학을 포기하기로 결심하고 안철수 연구소를 설립하게 되었죠. 많은 고민을 했지만

- 자신이 가장 부끄러웠던 순간은 언제였습니까?

세상에는 똑똑한 사람이 너무 많고 노력하는 사람들도 많죠. MBA과정을 40대 중반에 밟게 됐는데 편하게 청강생이나 연구원으로 갈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27년 동안 공부를 했지만 마음 편하게 하는 공부는 남는 게 없더라고요. 그래서 인터뷰를 거쳐 학위과정을 선택했어요. 과제, 프로젝트, 시험 등 고생을 하며 공부할 때가 남는 것이 많기 때문이었죠.

‘No pain, no gain’ 남들은 속일 수 있어도 자신은 못 속입니다. 공부할 때 편하다고 생각하면 나에게는 위험신호에요. 회사경영만 10년 해서 많은 부분을 알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어떤 부분은 부끄러울 정도로 부족하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경험만으로는 채울 수 없는 부분이 있었죠.

- 본인에게 부모님이란 어떤 의미입니까?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말씀을 많이 하시지는 않았습니다. 어렸을 때 아버지가 신문에 난 적이 있는데 신문배달 하는 소년이 교통사고를 당해서 무료진료를 해주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올해 여든이신 데 환자 볼 때 말고는 계속 책만 읽으셨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아버님께선 50대 중반의 나이에 가정전문의 시험을 쳐서 합격을 하기도 하셨죠. 제가 뒤늦게 공부하러 갈 수 있었던 것도 그런 영향을 받은 것 아닌가 싶어요.

어머니께서는 저에게 늘 존댓말을 쓰셨어요. 고등학교 때, 급한 일로 택시를 타게 되어 어머니가 택시를 잡아주셨는데 차가 떠나자마자 기사가 내게 물었어요. “형수님이신가요?” 제가 어머니라고 대답하자 그는 깜짝 놀라면서 “학생은 훌륭한 어머니를 두었으니 나중에 그 은혜를 잊지 않고 잘 모셔야 한다.”고 했어요. 늘 듣던 말이라서 그랬는지 그날도 “다녀오세요.” 하는 말에 그냥 “예” 하고 대답했던 것인데 택시기사가 그 점을 새삼스럽게 일깨워준 것이었죠. 그런 영향으로 군 대위로 복무하던 시절에는 하급자들에게 반말이 나오지 않아 애를 먹기도 했습니다. 배려는 생활 속에서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날 수 있어요. 제가 생각하는 배려의 모습은 이렇게 부모님께 배운 것들이죠.

저는 어릴 적부터 기계나 전자 부품 만지는 것을 무척 좋아했어요. 적성만 생각하면 공대에 가는 것도 괜찮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고등학교 때 제 스스로 의과 대학에 가기로 결심했습니다. 부모님이 내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서 말씀은 안 하시지만 의대 진학을 바라신다는 것을 짐작하고 있었어요. 부모님께서 내게 얼마나 많은 것을 무조건적으로 베풀어주셨는지를 생각하면서 그런 결정을 내렸던 것입니다.

- 인생에서 돈이란 무엇입니까?

정보보안 분야는 특히 사명감과 책임감을 가지고 철학적으로 무장하지 않고 단순히 돈벌이로만 접근하면 사회악이 될 수도 있습니다. 보안 문제는 누가 책임지고 대응할 수 있는지, 그런 조직이 있는지가 근본적인 질문이 돼야 합니다. 지난 1999년 CIH 바이러스 사태, 2003년 인터넷 대란, 2009년 디도스 공격 때 안철수연구소가 자체 인력을 투입해 혼란을 막은 바 있죠. 외국에서 엔진만 갖고 와서, 또는 돈벌이만 생각하고는 그 같은 일을 제대로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 젊은 날, 가장 힘들었던 경험은 무엇입니까?

의대 본과 일 학년 과정이 끝난 겨울 방학 때에 저는 부산에 내려가서 하고 싶은 일들을 하며 실컷 놀았습니다. 정처없이 기차를 타고 낙동강 변의 아무 역에나 내려 낚시를 하기도 하고 바둑 책이나 영화를 보면서 휴식을 취했습니다.

부산에서 길지 않은 겨울 방학을 보내고 서울에 올라가야 하던 참이었습니다. 그때 갑자기 지긋지긋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동안 잘 참고 있었는데 불쑥 그런 감정이 치솟아 오른 것이죠. 도저히 서울로 갈 마음이 나질 않았습니다.

의대생들에게는 성적이 평생 지고 다닐 멍에가 됩니다. 레지던트 시험에도 학부 때의 성적이 그 중요한 지표가 돼죠. 반에서 어느 정도 이상은 되어야 자기가 원하는 과를 갈 수 있게 돼 있습니다. 대학 입시를 앞둔 수험생과도 같은 처지인 것이죠.

말하기로는 십등 안에는 들어야 자기 원하는 과를 선택할 수 있다고들 했어요. 그 등수 안에 들기 위해서 비인간적인 생활을 계속해야 한다는 것이 싫었죠.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 성적을 따야 했기에 걱정이 되어 겨울 방학 끝나기 일주일 전에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미리 가서 공부를 해야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숙을 하던 방에 발을 디딘 순간 혼자가 된 기분이었습니다. 방에 오도카니 앉아 있는데 늪에 빠지는 듯한 두려움이 엄습해 왔습니다. 제 주위에는 친구도 없어서 고민을 털어놓고 말할 사람도 없었어요. 더구나 부모님들은 멀리 계셨으므로 내가 어떤 생활을 하는지도 모르실 것이라 생각하니 마음이 더 답답해져 왔습니다. ‘성적이 잘 나온 걸 보고 서울 생활에 잘 견디고 있는 줄로만 아시겠지.’ 그렇게 생각하니 부모와 자식 간에 공유할 수 있는 부분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실감할 수 있었어요.

아마도 그때가 내 평생 가장 어려운 시기였던 것 같습니다. 마음은 점점 정처를 모르고 떠돌아 다녔어요. 방황이란 말이 처음으로 실감되었는데 한번도 겪어보지 못한 느낌이라 어떻게 처리해야 좋을지 난감하기만 했습니다. 그때 든 솔직한 심정으로는 학교에 다니기 싫었습니다. 어쩔 줄 몰라 쩔쩔 매다가 어머니께 장거리 전화를 드렸습니다. 저는 울면서 말했어요. “어머니, 공부가 너무 힘이 듭니다.”

깜짝 놀라신 어머니께서는 곧바로 비행기를 타고 올라오셨습니다. 그날로 어머니와 함께 기차를 타고 부산으로 내려가셨어요. 기차를 타고 가는 중에도 저는 계속 울었습니다. 어머니께서 걱정하지 말라고 달래주셨지만 무슨 이야기를 하더라도 눈물부터 먼저 나왔어요.

아버지께서는 걱정스런 마음에 저를 잘 아는 정신과 의사한테 보내셨어요. 그 의사 선생님께 제 이야기를 털어놓았죠. 그러나 결국은 제가 해결해야 할 문제였습니다. 그 선생님의 이야기는 나의 고민과는 거리가 있는 조언이었죠.

선생님은 의과대학 공부만 하다 보니 시야가 너무 좁아져서 그러는 것이니까 이제는 서클에도 들고 친구도 사귀고 놀러도 다니고 그래 보라고 하셨어요. 그러나 그 길은 바로 성적과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그렇게 하면 당연히 성적이 떨어지게 돼 있는데 어떻게 그 길을 택할 수 있겠어요?

부산에서 며칠을 보내고 마음을 달랜 나는 부모님의 걱정을 뒤로하며 서울에 올라왔습니다. 의과대학 생활을 계속하기 위해서는 나에 대한 스스로의 구속과 기대를 어느 정도 풀 수 밖에는 없었던 것입니다.








- 첫사랑이란?

의과대학 생활에 잘 적응하기 위해서 들어갔던 서클에서 내 인생을 바꾸는 사건이 생겼습니다. 들어간 지 일년쯤 되어 지금의 아내가 된 한 여학생을 만났던 것이죠.

의과대학생들은 흔히 본과 이 학년 때 서클엘 많이 들어가게 됩니다. 본과 일 학년 올라갈 때는 전투를 치르는 심정으로 또는 수도자처럼 모든 속세와의 인연을 끊는 결심이라도 하지 않으면 안돼요. 그렇게 긴장하며 살다가 일 년쯤 시간이 흐르면 대개는 그 생활에 적응하게 됩니다. 거기서 적응하지 못한다는 것은 자포자기나 낙오를 의미하구요. 그런데 이상한 것은 흔히 성적이 나쁜 사람보다 좋은 사람이 더 깊은 고민에 빠진다는 것입니다. 심하면 휴학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중상 정도의 성적을 거둔 학생들이 더 잘하고는 싶은데 몸은 따라가지 않아서 괴로워하는 경우가 많은 것이죠.

그 여학생도 그런 적응 기간이 끝나갈 무렵인 본과 이 학년 올라갈 때 서클에 들어왔습니다. 카톨릭 신자였으므로 자연스럽게 그 서클엘 들어오게 된 모양이었습니다. 나는 그 여학생보다 한 학년이 높아서 삼 학년이 되었을 때였어요.

아내에겐 이미 고백한 이야기지만 이상하게도 처음부터 그 여학생에게 마음이 끌렸습니다. 그래서 깊은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들어보니 그 여학생도 나에게 마음이 끌렸다고 하더군요.

진료 서클이었으므로 그 활동 내용을 놓고 우리끼리 세미나를 자주 열었습니다. 예를 들어 고혈압 환자가 있다고 치고 그 환자를 어떻게 진단하고 처치할 것인가에 대해 미리 공부해 두는 것이죠. 그런 세미나가 있을 때마다 가만히 살펴보면 그 여학생은 무척 열심히 경청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여름 진료를 가기 얼마 전의 일이었습니다.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다 나와서 커피를 뽑아들고 혼자서 한잔 하려는데 저만치에 그 여학생이 보였습니다. 친구들과 따로 떨어져 혼자 앉아 있는 모습을 보고 다가가서 말을 걸었어요. 가만히 보면 그 여학생은 늘 혼자인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유난히 내 눈길을 더 끌었는지도 모르겠네요. 내성적인 성격이라면 누구 못지 않은 나였지만 본과 이 학년 올라가서부터는 노선을 바꿔서 남들하고 많이 어울려 다니려고 노력하던 중이었으므로 그 여학생은 아마도 나의 본성을 눈치채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어요. 그때 나를 본 사람들은 내가 무척 활동적인 사람인 줄 알았을 거에요. 그러나 혼자 있기 좋아하는 제 본성이 어디가겠어요. 우리 두 사람은 척 보기에도 무척 닮은꼴이었어요.

같은 서클 후배였으므로 부담없이 다가가서 말을 걸었습니다. 말을 하다 보니 살아온 과정이나 좋아하는 것들이 너무도 비슷했어요. 공부하다 잠깐 쉬러 나왔던 것이 그냥 세 시간 동안 정신없이 이야기를 주고받게 되고 말았어요. 도서관 앞 그 자리에 그대로 앉아서. 더구나 우리는 일 초가 아쉬운 의과대학생들이었는데도 말이죠. 하는 수 없이 다음 날을 기약했습니다. 그 뒤로도 거의 매일마다 만나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무슨 이야기가 그리 많던지 만나면 이야기가 끊어질 줄을 몰랐어요. 그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않았던 이야기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던 것이 사실이었죠. 그러다가 그 여학생과 친해지게 되었습니다. 내 눈에는 남자도 들어오기 힘든 서울 의대에 여자가 들어와서 배겨내는 것이 장하게만 보였어요.

알고 나서 봐도 두 사람은 무척 닮은꼴이었습니다. 의과대학 다니면서 추리소설을 즐겨 읽는 것부터 시작해서 혼자서 책읽기를 좋아하며 자란 것이 우선 비슷했습니다.

두 사람의 가치관이 비슷해서였을까 우리는 서로에게 참 편한 데이트 상대가 될 수 있었습니다. 의과대학생들은 일상 대화에도 의학용어가 섞인 말을 많이 하게 됩니다. 그래서 고등학교 동기들과 만나 이야기할 때 내 말을 잘 못 알아듣는 수가 생기기도 했습니다. 나도 모르게 그런 말들이 불쑥 나왔기 때문이죠. 그래서 컴퓨터 쪽 사람들을 만날 때는 의도적으로 의학용어를 쓰지 않도록 스스로 조심하고 있어요. 그러나 그 여학생을 만나서는 공통 화제도 많은 데다 서로 사용하는 의학용어를 잘 이해할 수 있어서 아주 편했어요. 가족들 중에 누가 아프기라도 하면 어렵게 설명할 필요없이 말이 척척 통하곤 했죠.

의과대학교 삼 학년때는 학기제가 아닌 학년제로 학점을 주기 때문에 일년 걸 몰아서 두 달 동안 시험을 다 봅니다. 장거리 경주라서 시험 하나 끝나도 쉴 틈이 없이 곧바로 다른 과목 공부를 해야 하므로 정말로 인간의 한계를 경험할 수 있는 드문 기회라고 할 수 있어요. 저야 그 고비를 어떻게든 넘겼지만 그 여학생이 겪을 때에는 너무 안타까워 보였습니다. 그뿐 아니라 힘들게 레지던트 생활을 해나가는 것을 보고도 크게 도와줄 수 없어 미안했죠. 레지던트 때에는 이미 우리가 혼인을 하고 아이까지 있었던 때라 아내에게는 무리가 될 수밖에 없었어요.

그러나 그 지독한 과정을 무사히 다 끝내고 나서 사회 생활을 시작한 아내는 아주 사람이 달라 보였습니다. 제가 학교 생활에 잘 견디는 체질인데 반해 아내는 사회 생활 체질이었다. 늠름하게 직장을 다니며 어느 자리에서건 꼭 필요한 사람이 되어 있는 아내를 보면서 저는 자랑스럽기도 하고 뜻밖이라 놀라기도 했습니다. 부모님의 보호 속에서만 자라서 그런지 공부밖에 할 줄 몰랐던 저는 특히 대인 관계에서는 아내에게 배워야 할 점이 많습니다.

- 타임머신이 있다면, 과거로 돌아가 가장 바꾸고 싶은 순간은 언제입니까?

후회는 하지 않는 편입니다. 아주 어릴 적부터 아버님을 바라보면서 나도 나이가 들면 아버님처럼 백발이 성성하고 흰 가운을 입은 의사가 될 것이라고 굳게 믿었습니다. 그러나 최선을 다해서 살다보니 오히려 의사를 그만두어야 하는 상황이 오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매순간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산다면 그 이후에 할 일이 정해진다는 신념으로 살게 되었습니다.




- 자신의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친 스승이 있다면 누구입니까?

‘우리는 우리가 읽은 것으로 만들어진다’는 독일의 유명한 문호 마틴 발저의 말처럼, 책은 우리 인간이 ‘어떤’ 것을 이루고 ‘무엇’인가가 되는 데 가장 유익한 길잡이라고 생각합니다. 존경하는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몇 사람에 한정되지 않고 다양한 관점에서 존경할 만한 사람이 많습니다. CEO로서 롤 모델 중 한 분은 인텔사의 전 CEO였던 앤디 그로브였습니다.

또한 교수로서 롤 모델 중 한 분은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의 랜 로디쉬 교수입니다. 그는 현업에서 학생들의 창업을 도와준 케이스가 몇 백 건이나 될 정도며, 마케팅 분야에서 학문적으로도 유명한 분이죠. 학생들이 제시하는 사업계획이 마음에 들면 그 자리에서 도전해보라며 격려하고 창업자금을 직접 투자하기도 하는 등 많은 사람의 귀감이 되고 있습니다.

- 내 인생에 영향을 준 책 또는 젊은이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 있다면.

일본인 수학자 히로나카 헤이스케가 쓴 <학문의 즐거움>이란 책의 한 구절을 생활 신조로 삼고 있습니다. 그는 수학의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필즈 상을 받은 바 있는 저명한 학자입니다. 그 책을 보면 한 평범한 사람이 노력을 거듭한 끝에 원래 천재였던 사람보다 더 빛나는 업적을 남길 수 있었던 이야기를 읽을 수 있어요. 그 책은 제 정신에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그 책의 내용에 ‘어떤 문제에 부딪히면 나는 미리 남보다 시간을 두세 곱절 더 투자할 각오를 한다. 그것이야말로 평범한 두뇌를 지닌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라는 구절을 읽었을 때에는 저의 갈 길을 한 줄기 빛이 인도하는 듯한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후 남보다 더 노력하고자 했습니다. 항상 노력하고 남에게 도움이 되는 삶은 아름답다고 생각합니다.

한 가지 유의할 것은 과거에는 한 사람의 천재가 다양한 일을 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다는 점입니다. 다른 분야에 대한 상식과 포용력을 갖춰야 합니다. 자기 분야만 알고 다른 분야 사람과는 협조도 이해도 안 된다면 아무런 성과도 낼 수 없는 사람이죠.








- 마지막으로, 어떻게 살면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 수 있을지 젊은 세대에게 한 말씀 들려주십시오.

현대 사회는 10년 후를 내다볼 수 없을 정도로 급변하고 있습니다. 10년 전 인기 있었던 직업도 현재에는 다른 직업이 각광받고 있죠. 그렇기 때문에, 어린 시절에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 대한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를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자기 나름대로 방향을 잡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조언 여섯 가지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첫째는 ‘자신에게는 엄하고 다른 사람에게는 관대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닙니다. 사실 자신에게는 관대하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엄하기 쉬운 것이 인지상정이지 않겠어요? 그렇지만 어떻게 보면 그런 태도가 많은 사람들이 발전 없이 제자리에만 머무르게 하는 이유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둘째는 ‘다른 사람과 비교하면서 살지 말라’는 것입니다.
특히 다른 사람의 내적인 능력과의 비교가 아닌, 외적인 모습만의 비교는 삶을 불행하게 할 뿐입니다. 세상에는 잘난 사람이 많죠. 말 잘 하는 사람, 재산이 많은 사람, 그리고 지위가 높은 사람, 이렇게 외적으로 보이는 모습들은 일종의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의 내적인 능력과 비교하는 것은 자신의 발전에 자극이 될 수도 있지만, 결과로 나타나는 외적인 부분들만 가지고 비교를 한다면 여러 가지 부작용이 생길 수 있습니다. 특히 멀리 있는 사람이 아니라 같이 일하는 주변 사람들의 외적인 모습과 비교하는 것은 불행한 삶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셋째는 ‘매사에 긍정적으로 생각하면서 살라’입니다.
긍정적인 시각으로 사물과 현상을 해석하는 사람들은 스스로가 즐거울 뿐만 아니라 주변까지 밝게 만듭니다. 반면에 부정적이고 방어적인 사람들은 다른 사람이나 주변 상황에 대해서 불평하고 절망하면서 주위 사람들을 긴장시키고 조직 전체에 나쁜 영향을 미칩니다.

외부적인 환경이 나쁘다고 해서 그 환경을 탓하고 불평하는 것만으로는 상황을 바꿀 수도 없을 뿐더러 자신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극복하려는 노력도 하지 않고 그렇다고 주어진 일에도 최선을 다하지 않다보면, 결국 자기 인생만 낭비하는 결과를 초래할 뿐이죠. 따라서 부정적이고 방어적으로 살기보다는 자기 자신을 바꾸거나 환경을 바꾸도록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며, 그러한 삶이 가치 있는 삶입니다.

넷째는 ‘매순간을 열심히 살아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여러 가지 많은 어려움을 겪습니다. 매 순간 어려움에 닥쳤을 때, 쉽게 포기하기보다는 바로 지금이, 내 한계를 시험하는 순간이라는 마음으로 노력하는 것이 중요해요. 쉽게 포기해버린다면 바로 거기가 자신의 인생에서 평생 다시는 넘지 못할 한계가 되는 것이죠. 매 순간이 자신의 한계를 만들어가는 때라는 것을 명심하고, 스스로의 한계를 높이기 위해서 노력해야 합니다.

다섯째, ‘미래의 계획을 세우라’는 것입니다. 자신의 30대, 40대, 50대, 60대의 모습을 스스로 그려보세요.
‘계획 없는 삶은 꿈이 없는 삶이고, 꿈이 없는 삶은 불행한 삶이다’는 말이 있습니다. 꿈이라는 것은 꿈 그 자체에 의미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떠한 꿈이 이루어질 수 있느냐 없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인생에 방향성을 제시함으로써 활력을 주고 발전적으로 살아가게 하는 것이 꿈이 가지는 의미에요. 그리고 만약 노력 끝에 현실로 이루어질 수 있다면 더욱 좋은 게 아니겠습니까.

여섯째는 ‘각자 자신에게 맞는 삶의 철학, 즉 원칙을 가져라’는 것입니다.
원칙을 정하는 것이 엄청난 일이라고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삶을 되돌아보고 그 삶 속에서, 행동에서 일관성을 찾으면 그것이 바로 자기 나름대로의 삶의 원칙이 되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 일관성을 인식하는 것이죠. 스스로 인식함으로써 자기 자신의 무게중심이 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처음부터 완벽한 원칙을 세워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힐 필요는 없습니다. 실천해 나가면서 수정하고 보강해나가면 되기 때문이죠. 반면에 그런 원칙조차 없다면 삶을 살아가는 동안 흔들리고 우왕좌왕하다가 좌절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습니다. 보통 종교를 가진 사람들이 시련을 이겨내는 힘이 크다고 하는데 그 이유는 종교에는 나름대로의 가이드라인, 원칙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스스로 자신의 인생을 경영하는 CEO로서 인생의 원칙을 하나하나 정립하고 만들어간다면 그 삶은 의미 있는 삶이 될 겁니다. 그리고 그러한 원칙을 가지고 스스로 자기 인생의 주인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힘들 수는 있더라도 결코 불행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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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주첩경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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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3년 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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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역학인총회 총재
前 한국 역학계의 태두(泰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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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천 김석환 선생 사사
한국역학교육학원 강사역임
MBC 문화센터 강사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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