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소설가. 챨스 디킨스(Dickens, Charles)
79 69 59 49 39 29 19 09 -- 水 木 金 金 / 水
庚 己 戊 丁 丙 乙 甲 癸 --- 壬 癸 壬 壬 / 癸 : 59세 乾命
戌 酉 申 未 午 巳 辰 卯 --- 戌 丑 寅 申 / 巳
=> 水木이 강하여 설모극(洩侮克)하는 火土金이 희신이다.
* 59세 戊申대운 庚午年 壬午月 丙子日 - 1870년 06월 09일 사망함.
=> 戊申대운 水氣가 강한 운에 사망했다.
* 06세 壬寅대운 丁丑年 - 1817년 가족은 캐담(Chatham)으로 이사했다.
* 11세 癸卯대운 壬午年 - 1822년 가족은 다시 런던의 캄덴으로 이사했다.
* 13세 癸卯대운 甲申年 - 1824년 부친이 채무 관계로 감옥에 수감되어 런던의 한 구두약 공장에서 하루에 10시간의 노동을 하게 된다.
* 16세 癸卯대운 丁亥年 - 1827년 변호사 사무실에서 사환을 했음.
* 17세 癸卯대운 戊子年 - 1828년 법원의 속기사를 거쳐서 신문사 속기 기자가 됨.
* 23세 甲辰대운 甲午年 - 1834년 <아침 신문>의 의회 담당 기자가 되어 처음으로 ‘보즈’라는 필명으로 런던의 삶에 대한 여러 편의 글을 발표했음.
=> 甲午年은 火旺한 해이다.
* 24세 甲辰대운 乙未年 - 1835년 조지 호가스가 편집인인 <저녁 신문>에 <런던의 풍경> 등 여러 글을 기고했다.
* 25세 甲辰대운 丙申年 - 1836년 Catherine Hogarth과(당시 20세, 만나이) 결혼함.
=> 본명은 丙火가 희신이다.
* 26세 甲辰대운 丁酉年 - 1837년 처제 메리가 갑자기 사망함.
* 28세 甲辰대운 己亥年 - 1839년 <올리버 트위스트>가 히트하여 유명인사가 되어 부자 생활을 시작함.
=> 戊戌年은 호년이다.
* 46세 丙午대운 丁巳年 - 1857년 여배우 엘렌 터넌과 사랑에 빠지면서 그의 결혼생활은 결국 파경을 맞는다. 그는 가정에 대한 실망과 영국사회에 대한 비관으로 고립된 생활을 함,
=> 丁壬合은 음난지합이다. 丙午대운은 최고의 황금기 운이다.
* 47세 丙午대운 戊午年 - 1858년부터 작품 순회 낭독회를 시작한다. 건강을 해치면서도 쉬지 않고 낭독회를 계속함.
* 58세 丁未대운 己巳年 - 1869년에 여러 번 쓰러졌고, 발을 절었으며, 몸의 왼쪽에 마비현상을 겪었다. 그는 전에서부터 끊임없이 신경통, 심한 류마티즘, 심장병을 앓았다.
=> 丁未대운은 丁壬合과 丑未沖이 변수로 작용한다.
* 59세 戊申대운 庚午年 - 1870년 06월 08일 갯즈힐에 있는 자신의 서재에서 쓰러져 다음날(6월 9일) 18시 10분에 세상을 떠났다.
찰스 존 허펌 디킨스(Charles John Huffam Dickens, 1812년 2월 7일 - 1870년 6월 9일)는 빅토리아 시대에 활동한 영국 소설가이다.
화가 시모어의 만화를 위해 쓰기 시작한 희곡 소설 <픽위크 클럽>을 분책(分冊)으로 출판하여 일약 유명해졌다. 그는 특히 가난한 사람에 대한 깊은 동정을 보이고, 사회의 악습에 반격을 가하면서, 사회에 대한 실제의 일들의 묘사를 이야기 형식으로 완성했다. 후기 소설에는 초기의 넘치는 풍자는 약해졌으나, 구성의 치밀함과 사회 비평의 심화는 주목할 만하다. 그의 작품으로 자전적 요소가 짙은 <데이비드 커퍼필드> <위대한 유산> 등을 비롯 <올리버 트위스트> <크리스마스 캐럴> <두 도시의 이야기> 등이 있다. [1]
[편집] 생애
찰스는 영국의 포츠머스에서 해군 경리국의 하급 관리였던 존 디킨스와 그의 아내 엘리자베스 배로의 슬하의 여덟 아이중 둘째아들로 태어났다. 찰스가 다섯 살일 때, 가족은 캐담(Chatham)으로 이사했다. 그리고 그가 열 살일 때, 가족은 다시 런던의 캄덴으로 이사했다.
사립학교에서 약간의 교육을 받기는 했지만, 아버지가 채무 관계로 수감되어, 그는 12살 때 런던의 한 구두약 공장에서 하루에 10시간의 노동을 하게 된다. 경제관념이 부족한 존 디킨스로 인해 가세가 점점 기울어 디킨스는 돈을 벌기 위해 구두약 공장에 견습공으로 취직하여 형편없는 환경에서 일을 해야만 했다. 이 경험은 그에게 큰 상처를 남겼으며, 자서전적인 소설인 ≪데이비드 코퍼필드≫(1849∼1850)에는 중산층에 속한다고 생각했던 어린 찰스가 노동자로 전락하여 느끼는 고통스러운 좌절감이 잘 나타나 있다. [2]
찰스는 중학 과정의 학교를 2년 정도 다니다가 15세 때 변호사 사무실에서 사환을 했으며 다음해 1828년 법원의 속기사를 거쳐서 신문사 속기 기자가 되었다. 이후 그는 여러 신문사에 글을 기고하게 되는데, 1834년 <아침 신문>의 의회 담당 기자가 되어 처음으로 ‘보즈’라는 필명으로 런던의 삶에 대한 여러 편의 글을 발표했고, 1835년 조지 호가스가 편집인인 <저녁 신문>에 <런던의 풍경> 등 여러 글을 기고했다. 디킨스는 조지 호가스와 인연을 맺으면서 그의 딸인 캐서린과 결혼하게 되고, 처제인 메리를 데리고 첼시에 정착하는데, 메리가 1837년에 갑작스러운 병으로 죽자 엄청난 충격을 받는다. 순수했던 메리에 대한 그리움은 나중에 ≪골동품 가게≫(1840∼1841)에서 어린 넬로 재현된다.
소설의 인기로 많은 돈을 벌게 된 디킨스는 가정적으로는 별로 행복하지 못했다. 결국 거듭된 과로로 인해 ≪에드윈 드루드의 수수께끼≫를 완성하지 못하고, 1870년 6월 9일 58세의 나이로 개즈 힐에서 숨을 거둔다. 이후 디킨스는 웨스트민스터 사원의 시인의 묘역에 안장되었다.
디킨스는 1870년에 죽었다. 그리고 성공회 교회인 웨스트민스터 대성당의 시인들의 묘역에 안장되었다. 그의 묘비에는 다음과 같이 씌어 있다.
He was a sympathiser to the poor, the suffering, and the oppressed; and by his death, one of England's greatest writers is lost to the world.
그는 가난하고 고통 받고 박해 받는 자들의 동정자였으며 그의 죽음으로 인해 세상은 영국의 가장 훌륭한 작가중 하나를 잃었다.
디킨스가 세상을 떠났다는 말을 듣고 노동자들은 주막에서 “우리의 친구가 죽었다”고 울부짖었다 한다. 디킨스의 사망 소식에 당시 신문과 잡지들은 며칠 동안 그의 일대기로 지면을 도배하다시피 했다. 한 신문의 부고는 디킨스의 소설이 갖는 시대적 의미를 보여준다.
디킨스가 써서 유통한 소설은 정말 그날의 토픽이었다. 그의 소설은 정치나 뉴스와 거의 흡사하게 보였다. 마치 그게 문학에 속한 것이 아니라 사회적 사건인 것처럼.
[편집] 소설 작품
그의 작품 중에서 가장 잘 알려진 것들을 몇 든다면, 《위대한 유산》, 《데이비드 코퍼필드》, 《올리버 트위스트》, 《니콜라스 니클비》, 《크리스마스 캐럴》 등이 있다. 그의 사후에 출판된 책으로는 《주 예수의 생애》가 있는데, 예수 그리스도를 신앙의 대상이 아닌, 본받음의 대상으로 따르려고 하고 있다. 그의 자녀들에게 그리스도에 대해 쉽게 설명하기 위해서 쓴 책이기 때문이다. 《데이비드 코퍼필드》는 논쟁의 여지는 있지만, 그의 대표적인 소설이며 자서전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다. 《Little Dorrit》은 신랄한 풍자로 이루어진 명작이다.
디킨스의 소설들은 사회적인 기록을 작품으로 옮긴 것들이었다. 그는 빅토리아 시대의 빈곤과 사회 계층에 대한 신랄한 비평가였다.
디킨스는 세상에서 탈출하는 한 수단으로 연극에 매료되었고, 이러한 연극과 연극인에 대한 그의 태도는 그의 작품 《니콜라스 니클비》에 녹아 있다. 디킨즈 자신도 자신의 작품의 장면들을 대중들 앞에서 매우 자주 낭독하여 연출가로서의 역량을 보여 주었다. 그는 공연 투어를 통해 영국 전역과 미국을 널리 여행했다.
디킨스의 작품 스타일은 현란하고 시적이다. 영국 귀족주의의 속물근성에 대한 그의 풍자 — 그는 그의 작품 속에서 그러한 인물을 “고귀한 냉장고”라고 부른 바 있다 — 는 사악할 정도로 익살맞다. 그의 소설속에 나오는 인물 중의 몇몇은 괴기스럽기까지 하여, 그의 작품중에는 유령이 등장하거나, 유령 이야기가 나열되는 작품들이 있다.
그와 동시대 작가 중 몇몇과 마찬가지로, 오늘날의 관점에서 볼 때 그의 작품들 중 몇 가지는 반유대주의로 비판되고 있다. 예를 들어, 《올리버 트위스트》의 패긴이라는 인물은 메부리코와 탐욕스러운 눈을 가진 전형적인 유대인으로 묘사되어 있다. 물론 디킨즈가 홀로코스트가 일어나기 이전의 사회에 살았음은 기억해두어야 한다. 그리고 단지 드라마틱한 효과를 위해서 그러한 인물을 설정했다는 것에도 일견 타당성이 있다.
그의 전 작품을 통해, 디킨즈는 보통 사람들에 대한 공감을 유지하고, 상류사회에 대한 회의를 간직하고 있었다.
디킨스의 탁월성은 대중성과 사회 현안에 대한 성찰에 있다. 디킨스의 인생에서 가장 흥미로운 것은 대중과의 연애였다. 그는 평생 대중과 연애하듯이 그들에게 충심을 다했고 그의 모든 일이 대중의 관심을 받았다. 그는 생애 마지막 10년 동안 소설 낭독을 위해 영국 곳곳과 미국을 여행했다. 가는 곳마다 대대적인 성공이었고 대중들의 눈물 어린 환대와 지역 유지의 영접을 받았다. 그의 낭송 여행은 개인적 이벤트로 생각되지 않았고 처음부터 끝까지 공적이며 국제적인 행사로 받아들여졌다. 디킨스에 대한 대중의 사랑은 평생 변함이 없었다. 그는 사람들의 마음에 호소하여 경탄을 받은 정도가 아니라 사랑을 받았고 친구로 여겨졌다. 디킨스는 마치 현대의 최고 할리우드 스타가 누리는 만큼의 대중적 인기를 소설가로서 누렸고, 현대 주요 일간지가 사회 현안에 미치는 영향만큼이나 그의 의견은 사회에 큰 영향을 미쳤다. 찰스 디킨스는 다시 말해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작가 중 하나이다.
[편집] 주요 작품 목록
《보즈의 스케치》Sketches by Boz (1836)
《픽윅 보고서》(1836)
《올리버 트위스트(Oliver Twist)》(1837-1839)
《Nicholas Nickleby》(1838-1839)
《The Old Curiosity Shop》(1840-1841)
《Barnaby Rudge》(1841)
《크리스마스 캐럴(A Christmas Carol)》(1843)
《Martin Chuzzlewit》(1843-1844)
《돔비와 아들》Dombey and Son (1846-1848)
《데이비드 코퍼필드(David Copperfield)》(1849-1850)
《A Child's History of England》(1851-1853)
《황폐한 집》Bleak House (1852-1853)
《어려운 시절(Hard Times)》(1854)
《작은 도릿》Little Dorrit (1855-1857)
《두 도시 이야기》(1859)
《위대한 유산》(1860-1861)
《우리 서로의 친구》Our Mutual Friend (1864-1865)
《The Mystery of Edwin Drood》(1870)
작가 : 챨스 디킨스 (1812~1870)
어린 시절은 아버지의 빚 때문에 아주 힘든 생활을 했으며, 열다섯 살 때부터 변호사 사무실 사환을 거쳐 법정 출입 기자, 의회 출입 기자 생활을 했다. 그 덕분에 의회와 정당에 대한 비판적인 안목을 갖게 되었고, 사회 제도에도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의 작품은 런던과 템즈 강, 주변 농촌을 배경으로 다양한 인간형과 삶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보여주었으며, 이는 대중의 큰 호응을 불러일으켰다. 이후 그는 세계적인 소설가로 성장하여 경제적으로 큰 부를 누리게 되었고, 정신적으로도 중산층의 가치관을 가지게 되었다.
그는 '가정이야기'라는 잡지를 발행할 만큼 가정의 소중함을 예찬하는 소설가였으나, 정작 자신의 가정은 순탄치 않았다. 아내 캐서린과는 늘 불화에 시달렸다.
1857년 여배우 엘렌 터넌과 사랑에 빠지면서 그의 결혼생활은 결국 파경을 맞는다. 그는 가정에 대한 실망과 영국사회에 대한 비관으로 고립된 생활을 하다가, 1858년부터 작품 순회 낭독회를 시작한다.
건강을 해치면서도 쉬지않고 낭독회를 계속하던 그는 1870년 6월 8일 갯즈힐에 잇는 자신의 서재에서 쓰러져 다음날 세상을 떠났다.
출처 : 명리마을 - cafe.daum.net/sajusaju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