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택돈 전 변호사, 전 국회의원, 전 판사
생몰 1935년 1월 27일(경기 안산시) ~ 2012년 5월 7일 (향년 77세) | 돼지띠, 물병자리 학력 서울대학교외 1건
양 력: 1935년 3월 2일
음/평: 1935년 1월 27일 남자
시 일 월 년
@ 丁 戊 乙
@ 丑 寅 亥
己 庚 辛 壬 癸 甲 乙 丙 丁 대운: 역행
巳 午 未 申 酉 戌 亥 子 丑
88 78 68 58 48 38 28 18 8.7
대운 시작: 8세 7월 31일
현재 나이: 78 세 (2012년 임진년)
현재 대운: 未
‘4선’ 이택돈 前 국회의원 별세 2012.05.09
제 8·9·10·12대 국회의원을 지낸 이택돈 전 의원이 7일 밤 숙환으로 별세했다고 헌정회가 9일 밝혔다. 77세. 고인은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제8회 사법고시를 거쳐 판사를 역임한 뒤 변호사로 활동하다 1971년 신민당 후보로 국회의원에 당선돼 정계에 진출했다. 김대중 내란 음모 사건에 연루돼 옥살이를 하기도 했지만, 1985년 통일민주당 창당 방해 사건(일명 용팔이 사건)을 주도해 논란을 낳기도 했다.
4선 국회의원을 지낸 이택돈 전 의원(사진)이 7일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77세. 경기 시흥 출신으로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고인은 1971년 8대 총선에서 고향에서 당선되며 정계에 입문했다. 이후 3선(8, 9, 10대)을 하는 동안 김영삼 총재 밑에서 당 대변인과 정책심의회(현재의 정책위) 의장으로 활동했다.
10·26사태 이후 김영삼계에서 김대중계로 변신했지만 5·18 민주화운동 이후 신군부에 의해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에 연루됐다는 혐의로 옥살이를 했다. 2007년 이 사건의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이에 앞서 고인은 1985년 12대 총선에서 당선돼 신민당 사무총장을 지냈으며 양김(김대중-김영삼)이 신민당을 깨고 통일민주당을 창당하자 이에 반대하며 창당방해사건(일명 용팔이 사건)을 주도했다. 이 혐의로 김영삼 정권 시절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8·9·10·12대 국회의원을 지낸 이택돈(77)씨가 7일 지병으로 별세했다. 이 전 의원은 인천고·서울대 법대를 나와 제8회 고등고시에 합격한 뒤 서울고법 판사와 대법원 재판연구관을 거쳐 1971년 8대 총선 때 고향인 경기 시흥에서 당선됐다. 이후 신민당 정책연구실장, 대변인, 법제위원장, 사무총장, 원내총무, 부총재를 지냈다. 한일의원연맹 부회장도 역임했다.
그는 "열여섯 살 때 6·25사변이 일어나 논바닥에 파랗게 얼어 죽고 버려진 아이를 보고 '모든 게 정치의 잘못'이라고 생각되어 정치의 뜻을 굳혔다"며 정치에 이르는 가장 효과적이고 빠른 길로 법조인을 택했다고 밝혔다. 그는 탈계보를 강조한 정치인이었으며 자유민주주의동우회 등을 조직하기도 했다. 이 전 의원은 1980년 '김대중 내란 음모사건'과 관련해 계엄법 위반 등의 혐의로 구속돼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으나 2007년 재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당시 그는 현역 의원 신분으로 계엄사령부 합수부에 연행돼 고문을 당하고 수사관들의 강요 때문에 의원직을 사퇴했다. 이 전 의원은 이후 당시 함께 탄압을 받았던 이신범 전 한나라당 의원과 함께 "불법 구속과 재판으로 피해를 입었다"며 전두환 전 대통령 등을 상대로 20억원의 손해배상을 청구, 항소심에서 3억원 배상 판결을 받았다. 이 전 의원은 1987년에는 통일민주당 창당 방해사건(일명 '용팔이사건')에 연루돼 징역 1년6월을 선고받았다. 유족은 부인 김난규씨와 1녀2남.
출처 : 사주명리 - cafe.daum.net/sajusaju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