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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 1,284건
   
동명이인
초인 2017-09-30 (토) 08:24 조회 : 1805

정숙희 기자의 주방일기 동명이인
 
건강냄비 판매회사인 파트너스에 ‘정숙희’란 이름을 가진 여성이 있다.
세일즈 에이전트들을 교육하고 자문하는 교육이사인 그녀는 58년 개띠생으로 나이도 나와 같고 미모 또한 상당한 수준이어서 누가 나와 헷갈린다 해도 크게 기분 나쁘지 않을 인물이다.
뿐만 아니라 퇴근 후 반드시 집에서 저녁식사를 준비하는 것, 매일 아침 남편과 두 딸의 도시락을 정성껏 싸주는 일 등이 나와 비슷하다고 주위에서 칭송을 듣는가 하면(내가 그동안 너무 많은 거짓말을 했던 것이다), 그녀 역시 친정에 여자 형제가 많기 때문에 주방일기에 가끔 등장하는 우리 자매들 이야기를 읽노라면 많은 공감을 느낀다고 하였다.
모르는 사람들은 그녀를 보고 ‘우리 교회 정집사가 정기자인가’ 하기도 하고. 처음 만나는 고객들은 ‘혹시 한국일보…?’하면서 묻는다고 한다. 이 분이 나와 다른 점 한가지는 정숙희가 원래 성명이 아니라는 것, 처녀 적 이름은 양숙희였는데 정씨와 결혼하여 정숙희가 되었다는 것이다. 어쨌든 우리는 조만간 둘이 만나 특별한 회포를 풀기로 하였다.
자기와 똑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에 대해서는 누구라도 남다른 느낌을 갖게될 것이다. 아마 그래서 영화감독 그레이스 리는 미전국을 다니며 자신과 이름이 똑같은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삶을 엮은 ‘그레이스 리 프로젝트’를 만들었고, 얼마전 미국의 한 제작자가 조지 부시 대통령과 똑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들의 인터뷰를 모아 다큐멘터리를 만들어 화제가 되기도 했던 것이다.
도대체 세상에는 얼마나 많은 정숙희가 있는 것일까? 갑자기 궁금해져서 인터넷 검색 사이트에 ‘정숙희’란 세글자를 넣고 찾아보았다.
놀라운 것은 또 다른 ‘정숙희 기자’가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녀는 한국의 TV가이드 전자매체인 이피지의 연예기자로 활발하게 기사를 쓰고 있는데 자세한 인적사항은 알 수 없지만 30대의 여기자가 아닐까 추측되었다.
그 외에도 수많은 정숙희가 있었다. ‘정숙희 무용단’을 이끄는 현대무용가, ‘정숙희 헤어갤러리’를 운영하는 미용사, 경남정보대학 피부미용과 교수, 전북 미술대전 초대작가인 동양화가, 국세청 홈택스 로고 공모 담당자, 원폭2세 환우회 회장, 광명중앙교회 유치부 교사, 소프트뱅크리서치&컨설팅의 연구원, 공예가, 서면요리학원장, 안동대학교 체육학과 부교수, 삼성생명 팀장, 역학에 빠진 45세 주부, 카드빚을 갚지 못해 ‘신불자’가 되었다가 재기한 여성, 여러 권의 책을 낸 작가와 번역가…
이들의 면면을 살피면서 이 모든 사람이 어떤 연유로 정숙희란 이름을 갖게됐는지 궁금해졌다.
나는 자라는 동안 아버지가 지어주신 나의 이름 맑을 숙(淑) 계집 희(姬), 숙희를 무척이나 싫어했다. 너무 흔하고 촌스러웠기 때문이다. 바로 위의 언니 선희나, 동생 진희만 해도 좀 나은데 숙희는 정말 한심했다. 국민학교 3학년 때 우리 반에는 3명의 숙희가 있었을 정도니.
우리 아버지는 딸 여섯의 이름을 수자, 은자, 복자, 선희, 숙희, 진희로 지으셨는데 선견지명이 있어서라거나 미리 딸 여섯을 낳겠다는 계획을 하시고 셋씩 돌림자로 지으신 것이 결코 아니었다. 딸이 달갑지 않으셨던 아버지는 그저 하나씩 나올 때마다 생각나는 대로 지으셨는데 그것이 우연히 셋셋 씩 맞아떨어진 것뿐이라고 언니들은 증언하고 있다.
나만큼이나 자기 이름에 시달린 사람은 셋째언니인 복자언니였다. 내가 어릴 적 이화여고에 다니던 언니를 만나러 학교에 찾아가면 장난기 많은 수위 아저씨가 언니 교실이 있는 건물 쪽을 향해 다음과 같이 목놓아 소리질렀다.
“정복자아~ 정복자를 정복하자. 정복자아~ 들들 복자, 콩 복자아~ 정복자아~”
그러면 당황한 언니가 창피한 얼굴로 황급히 달려나오곤 했던 것을 기억한다. 그런 언니는 이제껏 동명이인을 만나본 적이 없다고 했다.
동명이인들 간에는 어떤 공통점이 있을까? 사람의 인생에서 이름이 매우 중요하다고 하고, 어제나 오늘이나 작명소가 성행하는 것을 보면 이름이 운명에 미치는 영향은 크다고 봐야할 것이다. 만일 그렇다면 동명이인들의 삶에는 분명 무언가 공통점이 있어야하지 않을까? 하지만 위에 열거한 다양한 정숙희들은 적어도 직업만을 놓고 본다면 전혀 그렇지 않으니 그저 자기 할 나름으로 자기 모습대로 살아가는 것이 최선의 인생이라는 것, 그것이 수많은 정숙희들을 찾아보고 내린 나의 결론이다./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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