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주 명리학은 통계학인가?
흔히들 사주 명리학은 통계학이 아닌가 하는 얘기가 있다. 과연 그럴까?
이런 말이 도는 것은 명리학이 전혀 터무니 없는 것 같지는 않고 그렇다고 미래를 예측하는 과학이라고 말하자니 그건 또 그렇기 때문이다. 모든 신비학이 그런 것이 전혀 터무니 없다면 인간이 바보가 아닌 이상 지금까지 이어져 올 수 없었을 것이 분명하다. 이 지점이 미신과 신비학이 갈라지는 곳이다.
자, 그럼 명리학은 통계학인가? 그 대답은 간단히 말해서 ‘아니다’이다. 왜 아닌가 하는 점을 이제부터 차근히 이야기하고자 한다. 명리학자들은 명리학을 술수학(術數學), 줄여서 술학(術學)이라고 부른다. 술수란 수를 다루는 기술이란 뜻이다. 여기서 그런데 중국의 수(數)라는 말은 사실 영어의 수(number)와는 그 뜻이 다르다. 사실 영어 어휘를 우리말로 바꾼 말중에는 원뜻이 같지 않은 것이 더 많고 일반적인데 그것은 가장 근접한 우리말을 그 대용어로서 사용할 수밖에 없는 탓이다.
한자어 수(數)는 우리말 속에 너무도 깊게 자리잡고 있다. 예로 ‘할 수 있다’ ‘그럴 수 가’ ‘있을 수 없는 일’ 등등의 문장 속에 자리잡고 있는 ‘수’가 사실은 한자어(數)다. 우리말 속에 너무도 많이 들어가는 탓에 아예 그것이 한자어임을 우리는 까맣게 잊고 산다.
여기서 사용되는 ‘수’란 어휘는 가능성(probability) 내지는 경우(case)를 의미한다. 즉 ‘할 수 있다’는 ‘할 가능성이 있다’는 말이고 나머지도 마찬가지이다. 독자분들께서 직접 대입시켜 보라. 이로써 이미 우리는 한자어 수(數)가 영어의 수(number)와는 그 뜻이 다르다는 것을 확인하고 있다. 가능성 또는 경우란 어휘는 이미 통계학적인 냄새를 풍겨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명리학은 결코 통계학이 아니다. 명리학은 한 사람의 운명이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거쳐가게 될 시공간(time-space)을 음양 오행이라는 일종의 부호(code)로 나타낸 다음 그것을 해석하고 추리하는 나름의 강력하고도 엄밀한 논리 구조를 지니고 있기에 통계학이 아닌 것이다.
따라서 명리학은 자체의 논리와 이론에 바탕하여 어느 한 사람이 어느 시공간에 가서는 이렇게 될 것이다 라고 해석하는 것이지, 무슨 방대한 표본 집단을 분석한 결과 이렇게 되었으니 이렇게 될 것이다 라고 해석하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통계적인 과정을 거치기에는 기술적인 한계가 있다. 명리학에 근거하여 산출되는 인간의 사주 팔자 유형은 정확히 말해서 1백3만8천6백 개에 달한다. 이 많은 경우의 수를 가지고 그것도 인간의 복잡다단한 인생사를 무슨 수로 표본 추출하여 유의미(meaningful)한 결과를 도출해 낼 수 있겠는가?
가령 이혼하는 팔자 유형을 알아내기 위해 10만쌍의 커플을 조사한다고 할 때, 시작부터 이미 불가능한 것이 이혼이란 시대 사조에 따라 발생 빈도가 달라지는 탓이다. 또 부자가 되는 사주를 알아내기 위해 표본을 만들었다 해도 개인의 프라이버시에 속하는 재산을 무슨 수로 조사해서 결과를 얻어낼 수 있겠는가? 하지만 명리학은 그런 통계적인 추출과정을 거치지 않고 자체의 논리를 통해 아주 용이하게 갈등이 많은 커플(이혼 자체는 시대에 따라 빈도가 다른 탓에)들을 알아내고 부자가 될 사람을 가려낸다. 따라서 이런 의미에서 명리학은 분명 통계학이 아니다.
그리고 명리학은 한 사람의 운명이 차지하게 될 시공간을 펼쳐 놓고 예측하지만 그 예측은 100 % 그렇게 된다고 단정짓지는 않는다. 사주 명리학은 앞서도 말했듯이 인간의 유형을 백만 가지도 넘게 분류하고 있는 인류사상 최고의 운명 예측학이지만 인간의 운명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알 수 없어서 그렇지, 무수히 많다.
바닷가에 태어난 자와 산 속에서 태어난 자, 유럽에서 태어난 사람과 동남아에서 태어난 사람은 사주가 같다 하더라도 실제 살아가는 모습은 적쟎이 다를 수밖에 없다. 사주 명리학자가 알 수 있는 것은 그 사람의 사주 밖에 없지만 그 모든 환경 요인들이 음양 오행의 기운을 띠고 그 사람의 운명에 작용하기에 운명의 예단에 있어 100 % 라는 것은 없는 것이다.